영화 <아카디안> 스틸
영화 <아카디안> 스틸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Post-apocalypse', 대개 SF 장르 내에서 현실 세계가 모종의 이유로 종말을 맞이한 후 살아남은 이들이 처한 세상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근대 이전에는 신의 진노에 따른 천벌로 대홍수가 일어나거나 대륙 전체가 소멸하는 유형의 전설이 있었다면, 현대에 와선 공룡의 대멸종처럼 운석이나 소행성 충돌, 혹은 외계인의 침공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면 등 '만약'이라는 다양한 가정이 나온다.

20세기 후반 들어 대중문화 전반에서 이런 종말론과 그 이후의 세계를 가정할 때의 단골소재는 (좀비를 포함한) 바이러스 및 전염병 창궐, 그리고 환경 파괴 문제다. 핵전쟁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동서 냉전 종식 이후 다소 관성화된 반면, 기후 위기와 COVID-19 경험 등으로 인해 새로운 요소가 더 현실성을 얻는 중이다. 블록버스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장르 영화와 결합한 이런 현실적 개연성 활용은 영화적으론 극적 몰입감을, 사회적으론 영화를 넘어 실제 현실의 환기로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으며 끊임없이 다채로운 변주를 선보이고 있다.

<아카디안>은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인지도 높은 배우가 기용된 데 반해 실제 등장인물은 10명 남짓한 소규모 영화다.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영화의 기본 공식에 포함될 요소를 남김없이 구축한, (긍정-부정 양 측면 다 갖춘) 정석적인 해당 장르의 신작으로 제작되었다.

생존 위해 사투하는 아버지와 아들들

 영화 <아카디안> 스틸
영화 <아카디안> 스틸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모종의 계기로 우리가 알던 세계가 붕괴한 지 15년이 지났다. 절멸의 위기에서 피난처를 찾아 떠돌던 '폴'은 우연히 쌍둥이 형제를 구조하고 문명이 파괴된 세상에서 산간지대에 은신해 자급자족하며 친자식처럼 헌신적으로 아이를 키웠다. 어느덧 장성한 '토마스'와 '조셉'과 함께 오늘도 생존을 위해 분투하며 나날을 보낸다. 낮에는 자원을 구하고 농사를 지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마련하고, 밤이 되면 요새처럼 문단속과 빗장을 지른 안전가옥 내에서 외부의 위협을 방어하는 하루하루다.

종말의 원인은 대강 이렇다. 전 지구적 환경파괴로 인해 땅속에서 정체불명의 존재가 지상을 공격한다. 이들은 햇빛에 약해 낮에는 출몰하지 않지만, 해가 지기만 하면 마치 '사신'처럼 불쑥 나타나 인간만을 공격한다. 밤에는 은신처에서 꼼짝하지 않고 쥐 죽은 듯 숨어 지내야 한다. 폴은 두 아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생존방식을 교육하며 절대다수의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생존을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그런 폴의 노심초사를 종종 까먹고 어기곤 한다.

조용한 성격의 조셉은 괴짜 같지만 이것저것 과거 문명의 유산을 연구하며 손재주를 발휘해 아버지를 도우려 하는 야무진 심지의 소유자다. 반면, 혈기 왕성한 토마스는 고립되어 하루하루 생존에 매달리는 일상이 버겁다. 그는 좀 더 넓고 형편이 나은 이웃 농장에 드나들며 딸 '샬롯'에게 마음이 쓰인다. 한창 이성에 호기심이 생기고, 갑갑한 나날에 질려있던 토마스는 집을 벗어난 시간이 마냥 즐겁다. 하지만 해가 지기 전 안전가옥으로 귀가하지 못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폴이 형제에게 시킨 심부름을 조셉에게 떠넘기고 샬롯을 만나러 옆길로 샜던 토마스는 시간에 쫓겨 급히 산길을 달리던 중 움푹 파인 골짜기에 떨어지고 만다.

폴은 조셉만 돌아오자 위험을 무릅쓰고 토마스를 찾아 밤길을 나선다. 아들을 찾는 데는 성공하지만, 어둠에 활개를 치기 시작한 괴물과 부닥치고 만다. 한편, 홀로 집을 지키던 조셉 역시 호시탐탐 침입을 노리던 괴물과 마주한다. 인간을 노리는 존재들 역시 그저 매일 반복되는 실패에 안주하지 않고 교활하게 작전을 세우던 참이다. 과연 이 가족은 위기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제목에 암시된 영화의 메시지

 영화 <아카디안> 스틸
영화 <아카디안> 스틸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영화의 제목 '아카디안 Arcadian'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목가적인 이상향 '아르카디아 Arcadia'에서 유래한다. 비슷한 뜻을 지닌 '엘리시움 Elysium'이 미래의 이상향 혹은 사후세계를 의미한다면, '아르카디아'는 최초의 완벽하고 자연 친화적인 세계, 혹은 번잡한 도시가 아니라 숲이 우거진 조용하고 한적한 산간 구릉 지대를 형상화한 개념에 가깝다. 영화의 제목 '아카디안'은 바로 그런 아르카디아의 주민을 지칭하는 제목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몇 갈래 중의적 의미로 활용된다. 우선 명확하게 해설되지 않지만, 인간이 초래한 환경 파괴에 대자연이 응징하듯 갑자기 발생한 괴생명체의 출몰로 현대 문명이 붕괴했다. 여기에 극소수 생존자만 자급자족의 소규모 공동체로 명맥을 유지하는 현실이 '아르카디아'로 상정된다. 폴도 자식들에게 지나가는 이야기로 언급하듯 지구 생태계 복원을 위한 대자연의 개입으로 인류라는 종은 멸망 위기일지언정 자연환경은 복구 일로라는 자각이다. 지하에서 창궐하는 정체불명의 괴물만 없다면 대낮의 풍경은 그야말로 신화 속 아르카디아 혹은 이상적인 전원생활로 비칠 만하다.

하지만 위기가 심화하자 이 목가적 낙원은 불완전함이 곧바로 드러난다. 물론 현대 문명을 파국으로 이끈 외부의 침략자 괴물이 1차 위험이지만, 이 존재는 어떻게 첨단 과학 문명과 최신 무기를 보유한 인류가 패배했는지 이해하기 힘든 정도로 절대적 강력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전설 속 자연의 정령 혹은 인간과 짐승을 혼합한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부류 작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좀비도 느릿느릿 걸으며 무기를 활용하거나 조직적 작전을 펼칠 수 없는 존재라 일시적 혼란은 불가피해도 체계적으로 대처하면 충분히 진압 가능한 대상이다. 오히려 힘을 합치지 않고 자기만 살길 찾다 자멸하는 어리석은 인간 군상을 보는 게 이런 장르물의 진정한 재미인 셈이다.

영화 속 폴의 가족과 보다 풍족하고 사람도 많은 샬롯 농장의 대비가 결정적이다. 폴과 쌍둥이 형제뿐인 가족과 비교해, 샬롯의 농장은 총기를 갖춘 건장한 일꾼들도 여럿이고 가축도 많이 보유했다. 토마스에게 제공된 식사만 봐도 두 공동체의 물질적 격차를 대번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웃이 곤경에 처했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구원하거나 물자를 나눠줄 마음의 여유는 반비례한다. 토마스가 자신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 같던 이웃집에서 목격한 건 극한의 실용주의(?), 철저한 도구적 선심이다. (샬롯을 제외한) 농장 구성원들이 과거 인간들의 본성을 떨치지 못하고 여전히 척도로 쥐고 있음을 드러내 종말 이후의 시대에 적응하려는 이들과 자기중심적 본능을 온존한 이들의 극명한 대비 효과를 부각시키려 한다.

샬롯의 부모가 철저히 이해타산적으로 대처하는 풍경 vs.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운 위기에서 생면부지의 쌍둥이를 거둬들여 헌신하는 폴의 상반된 태도는 인류 종말 위기에서 흔히 우리가 단정하듯 이기적으로 내 식구만 챙길 수밖에 없다는 선택이 과연 옳은가, 자연의 경고가 인간에게 어떻게 수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고 보는 게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에서 인간이 퇴화하되, 자연과 더불어 살 여지를 남겨줬던 주제의식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더불어 살아야 할 생태계 일원으로서의 분수를 어긴 인간에게 파괴적 경고를 던지긴 했으나, 오롯이 종의 절멸까지는 의도치 않은 대자연의 뜻을 제대로 수용해 공존을 모색하는 실천을 주제의식으로 내세운 이야기인 것이다. 예전의 약육강식 타성에 사로잡힌 이들과 곤궁한 처지에도 약자를 돌보며 나누는 이들 중 과연 대자연의 자비는 누굴 향해 내려질 것인가. 그 은총의 수혜는 제목 그대로 '아카디안'을 지향하는 이들의 몫일 테다.

장르 영화의 매력 증명

 영화 <아카디안> 스틸
영화 <아카디안> 스틸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인류를 위협하는 항거 불능의 초월적 존재와 맞서 생존자들이 벌이는 처절한 사투를 기대한 이들에겐 <아카디안>의 소박한 설정과 사건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SF 액션 스릴러라 지레짐작한 관객 눈 앞에 펼쳐지는 건 한국독립영화 규모라 해도 그리 어긋나 보이지 않는 숲과 농장, 그리고 어두운 탓에 정확히 형상도 확인하기 힘든 괴물에 불과할 따름이다. 벌써 김샜다며 실망하는 원성이 들려오는 기분이다.

분명히 이 작품은 관객을 화들짝 놀라게 할 충격적 이미지도, 시종일관 손에 땀을 흘리며 화면에서 눈을 못 떼게 할 몰입감도 제공하지 않는다. 어디서 본 듯 익숙한 설정들을 솜씨 좋게 조합해 규모로 승부를 보려는 동종 소재 작품들과 차별화하지만, 그렇다고 참신함이 탁월한 것도 아니다. 가족 드라마의 신파를 극대화하기 위해 외부의 괴물을 투입하는 정석에 충실하기만 하다.

아마 본 작품에 이목이 끌린다면 해당 장르의 팬이거나 '폴' 역을 맡은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에 대한 신용이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다. 장르물 애호가라면 고만고만한 유사품 변주로 받아들여질 테고, 배우를 믿고 골랐다면 왕년의 액션 영웅이 아니라 소규모 인디 영화에서 잔잔한 내면 연기를 선보이던 모습과 재회할 만하다. 1990년대 <더 록>이나 <콘에어>, <페이스 오프> 같은 대작으로 잇달아 흥행 보증수표가 되던 배우는 21세기 이후 오랜 부침을 겪으며 잊힐 뻔했지만, 다양한 장르와 독립영화에 도전하며 오랜 침체를 벗어나 왕년 스타에 그치지 않는 재기에 성공하는 중이다. 배우의 그런 속사정을 숙지하고 있다면 다양한 연기폭을 확인하는 기회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법하다.

<아카디안>은 저예산 장르물 한계를 드러내지만, 액션 스펙터클에 한눈팔지 않고 생태 문제를 연결해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소품이다.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제목과 설정, 인물들 행보를 통해 교육적 SF 공포영화로 평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실 잘못은 우리에게 있어' 고민을 품고, '못된 괴물을 마음껏 죽여도 돼' 인간 본위에 매몰되지 않은 이들이라면 의미 있게 볼 만한 장르 영화다.

<작품정보>

아카디안
Arcadian
2024|아일랜드, 미국, 캐나다|SF, 스릴러, 액션
2025.02.13. 개봉|91분 55초|15세 관람가
감독 벤자민 브루어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맥스웰 젠킨스, 제이든 마텔
수입/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아카디안"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아카디안" 포스터영화 포스터 이미지㈜스튜디오 디에이치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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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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