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웃음을 업으로 삼고 그를 자아내는 작업에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은 그 본질을 꿰뚫기 위하여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렇게 드러난 몇 가지, 인간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로부터, 또 권위가 무너지는 모습에서, 때로는 누군가를 속이고 놀리는 행위로부터 즐거움을 얻는다. 코미디는 이 같은 웃음의 여러 특성을 절묘하게 조합해 관객을 웃도록 한다.
한국에서 코미디는 말 그대로 우습게 취급되는 장르다. 모두가 코미디를 간편하게 즐기는 시대에도 정통 코미디가 주류 콘텐츠 산업에서 저물어가는 모습을 보면 그 흐름을 알 수가 있다. 방송사마다 자사 코미디언을 공채로 선발하고 간판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던 왕년의 코미디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코미디 프로그램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그나마 명맥을 지키고 있는 프로그램 역시 그 시청률을 담보하기 어렵다.
점차 가볍고 접근성 쉬운 곳으로 밀려나는 코미디는 진지한 자세로 적절한 대가를 치르고 마주할 만한 무엇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코미디 영화 또한 마찬가지. 대중영화에 코미디를 섞은 작품은 흔히 발견되지만 코미디를 전격적으로 내세운 작품을 찾아보기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보기 드문 한국 코미디
▲영화 <히트맨>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히트맨>은 근래 보기 드문 코미디영화다. 그것도 흥행해 5년 만에 2편째를 선보인 성공적 시리즈다. 최원섭이 연출하고 권상우·정준호·이이경·황우슬혜 등이 출연했는데, 그 면면을 보자면 대단한 상업영화들 사이에서 경제적이란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주목할 만한 감독도, 최근작이 인상적인 배우도 없는, 올망졸망한 이들의 합작품이란 뜻이 되겠다.
그러나 첫 편은 급속히 쪼그라들고 있는 극장환경 가운데서도 240만 명에 이르는 관객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대단한 수익을 거두진 못했대도 근래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을 얼마 찾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후속작에 대한 기대가 일기 충분한 성적이다. 결국 영화는 추진력 있는 제작진에 의해 2편 제작으로 이어졌고, 비슷한 규모로 만들어진 작품이 나름 입소문을 타며 순항 중에 있는 것이다.
그를 가능케 한 첫 편 <히트맨>은 어딘지 익숙한 설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모아 비밀 요원 '방패연'으로 기르는 국정원의 이른바 '방패연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주인공 준(권상우 분)은 역대 방패연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단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악마교관이라 불리는 천덕규(정준호 분)의 지도 아래 어떤 임무도 완수해낼 수 있는 인간병기로 거듭난다.
그러나 영화는 여느 첩보물과는 분위기를 달리한다. 준은 국정원 요원 생활을 몸에 맞지 않게 여기고 본래 꿈인 웹툰 작가를 하고자 한다. 국가의 자산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일류 요원이 은퇴해 웹툰작가로 지낼 수 있을 리 만무한 일. 준은 작전 중 제가 죽은 것으로 꾸며 제2의 인생을 몰래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그에겐 아내와 딸이 생겼고, 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삼류 웹툰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히트맨>은 자기가 꿈꿔온 웹툰작가 일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아 고전하는 평범한 가장 준의 모습을 그린다. 말이 평범이지, 회사원이 아닌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평범함, 그러니까 월 50만 원도 되지 않는 수입으로 언젠가는 대박을 터뜨리고 말리라는 꿈만 있는 인생인 것이다. 무능력한 가장으로 아내에겐 구박을 받고 딸에게도 영 면이 서지 않는 그다. 그리하여 어느날인가 술에 잔뜩 취해 남다른 사연을 작품으로 풀어내기에 이른다. 바로 방패연 프로젝트다.
방패연 프로젝트가 세상에 공개되자 그는 일약 웹툰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실감나는 이야기는 어디 흉내만 낸 첩보물이 비빌 것이 못됐고, 입소문을 타며 수많은 웹툰 가운데 최고 인기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탄탄대로를 달릴 판이지만, 준은 이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이 그린 작품이 평온을 깨뜨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대로 멈추기엔 아까운 시리즈
▲영화 <히트맨>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로부터 영화는 국정원은 물론, 만화 속 악당으로 등장하는 테러리스트 제이슨(조운 분)이 준을 쫓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특히 제이슨은 과거 국정원의 손에 동생을 잃고 자신까지 화상으로 중상을 입었던 터라 그 원한이 보통이 아니다. 제이슨은 마침내 준의 신상을 파악하고 그 아내까지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서사가 새로운 작품은 아니다. 차라리 그렇고 그런 첩보물이며 액션영화에서 흔히 보던 틀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보아야 옳을 테다. 손을 씻고 새 삶을 찾으려는 전직 첩보요원의 이야기, 끝내 가족이 족쇄가 돼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하는 상황, 그 위기를 타개하는 최후의 결전까지가 하나하나 그렇다.
얼핏 단순한 설정과 전개지만 영화는 코미디의 본질적 특성을 적절히 활용해 관객에게 재미를 준다. 선과 악, 상사와 부하직원의 고정적 틀을 흔들어 놓고 국정원이란 국가기관, 또 정부요원에게 주어지는 전형적 이미지마저 자유롭게 비꼬고 희롱한다. 쉬이 예상할 수 없는 선택들이 타율 높은 웃음으로 이어지며 관객은 <키드맨>을 대단치는 않을지라도 편안히 웃을 수 있는 썩 괜찮은 코미디로 마주한다. 바로 그것이 코미디 영화가 죄다 죽을 쑤는 시대에 손익분기점을 넘겨 속편을 나오도록 한 비결일 테다.
여기에 더하여 권상우와 정준호, 두 배우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이 오래 쌓아온 필모그래피는 정극에 한해서 보자면 어딘지 무게감이 떨어지고 엉성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코미디에 한하자면 이들 만한 배우를 찾기도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정준호의 <두사부일체> 시리즈와 <가문의 영광> 시리즈는 코미디가 한국영화의 주요 장르로 살아남아 있을 적의 대표적 작품들이다. 진지한 작품을 여럿 찍어온 권상우지만 그 또한 <동갑내기 과외하기>보다 빛나는 대표작을 빚어내진 못했다. 반대로 말하면 이들은 한국영화 역사 가운데 코미디가 가장 빛나던 시절, 즉 2000년대 초중반 뚜렷한 대표작을 낸 몇 안 되는 주연급 배우들이다.
그렇게 영화는 가장 적절한 배우들로 꽤나 신경 써 만든 이야기를 능숙하게 풀어간다. <히트맨>의 성공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해도 좋겠다.
▲영화 <히트맨>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왜 자꾸 웃음이 나지... '히트맨2' 성공 비결, 여기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