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여자부 후반기의 특징은 한 마디로 '하위권의 반란'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14연패)를 포함해 1승17패로 전반기를 마감했던 최하위 GS칼텍스 KIXX는 후반기 7경기에서 4승을 따내며 극적인 반등에 성공했다. 물론 4경기에 결장하고도 득점 1위(649점)로 올라선 외국인 선수 지젤 실바의 높은 점유율은 고민이지만 GS칼텍스의 후반기 성적은 놀라운 반전임에 분명하다.

'FA 최대어' 강소휘를 영입하고도 시즌 개막 후 13경기에서 2승11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던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역시 이후 12경기에서 6승6패를 기록하며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신인 김다은 세터가 예상보다 빨리 프로에 적응했고 강소휘 역시 어려운 상황에도 꾸준한 활약을 해줬다. 여기에 아시아쿼터 타나차 쑥솟이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위권 팀들의 선전으로 상위권 팀들을 긴장 시키고 있는 가운데 전반기에 구단 역사상 최다승(6승)을 따냈던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는 최근 5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기세가 한 풀 꺾였다. 특히 연패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좋지 않았던 부분이 한 번에 터지고 있어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금 같은 부진이 이어지면 페퍼저축은행이 이번 시즌 목표로 삼았던 시즌 10승도 마냥 낙관할 수 없다.

주전으로 영입한 이원정 세터의 부상

 이원정 세터는 페퍼저축은행 이적 후 컵대회 포함 28경기 중 12경기에 결장했다.
이원정 세터는 페퍼저축은행 이적 후 컵대회 포함 28경기 중 12경기에 결장했다.한국배구연맹

프로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2021-2022 시즌 3승28패에 그쳤던 페퍼저축은행은 2022년3월 FA시장이 열리자마자 이고은 세터(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를 3년 9억9000만 원을 주고 영입했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이고은이 가세한 2022-2023 시즌에도 개막 10연패를 당하면서 김형실 초대 감독이 중도 사퇴했고 결국 5승31패 승점 14점의 부진한 성적으로 두 시즌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페퍼저축은행은 2023년 FA 박정아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도로공사가 보상 선수로 이고은 세터를 지명하면서 또 한 번 홍역을 치렀다. 주전 세터를 잃을 수 없었던 페퍼저축은행은 이고은을 다시 데려오기 위해 주전 미들블로커 최가은(GS칼텍스)과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도로공사에 내줬다. 그러나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시즌에도 단일 시즌 최다연패(23연패) 불명예 기록을 세우며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장소연 감독이 부임한 페퍼저축은행은 6월 흥국생명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주전 세터를 이고은에서 이원정으로 교체했다. 도로공사 시절과 GS칼텍스 시절 백업 세터로서 두 차례 챔프전 우승을 경험했던 이원정 세터는 흥국생명 이적 후에도 두 시즌 연속 챔프전을 치르면서 주전 세터로서 제법 많은 경력을 쌓고 있었다. 따라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도 세터 교체는 나쁘지 않은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로공사 시절부터 고질적인 손목 부상으로 고전했던 이원정 세터는 페퍼저축은행 이적 후에도 부상으로 컵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고, 정규리그 개막 후에도 부상으로 9경기째 결장하고 있다. 장소연 감독은 이원정을 이번 시즌 주전 세터로 낙점했 지만 최근 결장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반면에 이원정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이고은은 단독 선두 흥국생명의 붙박이 주전 세터로 맹활약하고 있다.

물론 페퍼저축은행에는 2021-2022 시즌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의 프로 4년 차 박사랑 세터가 있지만, 주전 경험이 많지 않아 가끔 기복을 보이곤 한다. 따라서 박사랑 세터가 흔들리면 백업 세터로 교체가 필요한데, 현재 페퍼저축은행의 백업 세터는 지난 시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던 2년 차 박수빈뿐이다. 이원정 세터의 부상으로 팀 전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서브-리시브 무너지면 승리 못한다

 리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는 박정아는 후반기 들어 부진한 경기가 늘어나고 있다.
리그에서 세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는 박정아는 후반기 들어 부진한 경기가 늘어나고 있다.한국배구연맹

랠리포인트제(서브권에 관계없이 득점이 올라가는 시스템)를 채택하고 있는 V리그에서는 안정된 서브 리시브로 세터를 편하게 만들어주고 까다로운 서브로 상대 수비를 흔드는 것이 강 팀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페퍼저축은행은 최하위에 허덕이던 지난 세 시즌 동안 팀 서브와 리시브 부문에서 언제나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들이 매 시즌 고전할 수밖에 없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번 시즌에도 세트당 0.92개의 서브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페퍼저축은행은 팀 서브 부문에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미들블로커 장위가 세트당 0.32개로 서브 5위에 올라있을 뿐 상대의 리시브를 흔들 만한 까다로운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는 곧 상대에게 쉬운 공격을 허용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퍼저축은행은 리시브 효율에서도 25.59%로 7개 구단 중 6위에 그치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국가대표 리베로 한다혜를 영입했지만 상대가 40.45%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다혜 쪽으로 얌전하게 서브를 넣을 리 만무하다. 반면에 한다혜와 함께 서브 리시브에 참여하고 있는 아웃사이드히터 박정아와 이한비의 리시브 효율은 각각 14.95%와 22.68%에 그치고 있다.

팀의 구심점이 돼야 할 박정아가 후반기 들어 위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페퍼저축은행의 고민이다. 4라운드 6경기에서 32.42%의 성공률로 68득점을 기록한 박정아는 지난 1월 31일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5라운드 첫 경기에서 21.88%의 성공률로 9득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물론 페퍼저축은행에는 이예림과 박은서 등이 있지만 박정아는 언제나 꾸준한 활약을 해줘야 할 페퍼저축은행의 '토종 에이스'다.

지난 1월 12일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를 꺾고 창단 첫 3연승을 달릴 때만 해도 목표로 했던 시즌 10승이 수월해 보였던 페퍼저축은행은 최근 5연패를 당하며 큰 위기에 빠졌다. 잔여 11경기를 남겨둔 만큼 시즌 10승은 여전히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지만 시즌 막판 순위 경쟁이 끝난 후에 싱겁게 오르는 10승은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연패가 더 길어지기 전에 페퍼저축은행의 반등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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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V리그여자부 페퍼저축은행AI페퍼스 5연패 이원정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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