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등 배우 하정우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했던 팬들에겐 반가운 영화가 개봉한다. 명실공히 한국 영화계 한 축으로 보폭을 넓혀온 그가 모처럼 중저예산 영화를 택했기 때문. 오는 5일 개봉하는 <브로큰>은 어쩌면 앞뒤 가리지 않고 오로지 이야기에 캐릭터에 몰입한 하정우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영화 속 하정우는 폭력조직에 몸담았던 민태를 연기했다. 그를 따라 조직에 몸담은 동생(박종환)이 마약중독자로 지내다 행방불명되자, 출소 후 동생을 찾아 동분서주하게 된다. 2016년 영화 <양치기들>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신인 김진황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신예 감독과 비교적 적은 예산의 작품을 택한 것에 하정우는 "<황해>의 구남과 <추격자>의 영민이 생각났다"고 운을 뗐다.

<추격자>와 <황해>의 냄새들

 영화 <브로큰>에서 민태를 연기한 배우 하정우.
영화 <브로큰>에서 민태를 연기한 배우 하정우.(주)바른손이앤에이

처음 제안은 평소 하정우와 친분이 있었던 제작사 대표로부터였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군도: 민란의 시대> 등을 함께한 한재덕 대표와 서울 학동사거리 모처에서 우연히 만난 것. 맥주나 한잔 하자는 말에 앉는 자리에서 지금의 <브로큰> 출연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저보고 일정이 어찌 되냐고 하셔서 <수리남> 촬영을 곧 하고 <피랍> 촬영은 좀 밀릴 거라 말씀드렸다. 그때 한창 코로나19 팬데믹 때였다. 딱 그 사이에 시간이 빈다고 하니 시나리오를 보내주시더라. 바로 읽었다. 거친 매력이 있더라. 민태라는 인물을 보면서 구남도 생각났고, 영남도 떠올랐다. 그만큼 자유로운 캐릭터였다.

한국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멀티캐스팅이 보편화됐고 거대 자본이 들어와서 잘 재단된 작품이 계속 나왔잖나. 캐릭터들이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작품에 출연하던 제겐 <브로큰>이 마치 갈증을 해소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친 대본이었지만 저와 한재덕 대표님이 힘을 합친다면 잘 나올 것 같아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단순히 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한 영화만은 아니었다. 민태는 전과자였고, 동생 또한 마약중독자이자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던 이였다. 동생의 실종 사건이 한 소설가 호령(김남길)의 작품 설정 그대로임을 알게 되면서 민태는 동생의 아내 문영(유다인)과 호령을 의심하며 쫓기 시작하는데, 애초에 전과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에 관객 입장에선 몰입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정우는 "굳이 애써 꾸미지 않아도 되는 캐릭터"로 해석했다고 답했다.

"인물 행동의 개연성이나 행동에 설득력을 따지진 않았다. 크게 보면 폭력적인데 전 그게 영화 안에선 맞다고 믿고 갔다. 물론 감독님께 의견을 내긴 했다. 과거 조직 보스(정만식)를 만나고 옛 부하(정찬)를 마주칠 때 대본엔 싸운다고 돼 있었지만, 맥락상 예전 부하와 굳이 감정을 섞지 않을 것 같더라. 민태의 감정선, 그 일관성에 집중하려 했다. 그게 가장 사실적이기도 하니까.

이 영화가 세트장이 하나도 없다. 다 실제 공간에 찍었다. 그만큼 감독님이 장소 헌팅에 공을 들였더라. 실제 공간이 주는 아우라가 있다. 특유의 생활감, 냄새를 느꼈다. 개인적으론 영화일을 하며 그리웠던 것들이기도 하다. <브로큰>이 팬데믹을 겪고 1년 만에 나온 작품(2020년)이라 그 분위기와 느낌을 담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2019년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지냈다. 하정우가 아닌 인간 김성훈으로 살았던 에너지로 찍은 첫 영화였다."

민태는 왜 그토록 동생을 찾았을까

 영화 <브로큰> 관련 이미지
영화 <브로큰> 관련 이미지바른손이엔에이

알려진 대로 <브로큰>은 감독 개인이 겪은 실제 일을 기반으로 태어난 작품이다. 영화 속 민태가 무기처럼 지니고 다니는 파이프 배관봉 또한 감독이 실제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주로 옮기곤 했던 물건이었다고. 본래 이야기는 문영의 비중이 컸지만, 소설가 호령과 민태의 시선이 반영되며 지금의 결과물이 됐다. 하정우는 감독 고유의 개성이 묻어난 지금의 이야기에 힘을 실었다.

"기술적인 능력은 좋은 스태프와 함께 하면 보완된다. 하지만 이야기만큼은 감독의 고유성이 중요한 것 같다. 그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런 얘길 하는지, 그걸 감독만의 개성으로 풀어내는지가 중요한데, 김진황 감독은 둘 다 가지고 있다. 민태처럼 김 감독님 또한 속을 모르겠는 사람이다. 겉으론 유연한 척하지만(웃음). 안 좋은 게 아니라 궁금증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제가 조직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그런 부류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서로 속고 속이는 전쟁터니까 직접 경험하고 확인하고자 하는 게 민태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만난 사람 중 진짜 무서운 사람은 평소에 화를 절대 내지 않고 눈에 힘조차 주지도 않는다. 마치 파란색의 가스 불꽃처럼 가치가 없는 일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민태가 그렇게 보이길 원했다."

이 대목에서 하정우는 자신이 상상한 민태의 과거를 언급했다. 감독과도 많이 얘기한 부분이라면서 그는 "부모를 일찌감치 여읜 형제가 제대로 된 가정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유일한 교화 수단이 그들 세계에선 폭력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시종일관 영화 안에서 냉정하게 주먹을 휘두르는 민태의 시선이었다.

"사람 구실 못하는 동생이 형을 따라 조폭이 된다고 하니 처음엔 말리다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 설득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동생이 친 사고를 수습하며 대신 교도소에 갔고, 그 사이 조직원들이 동생을 괴롭히다가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고 여긴 거다. 일종의 복수인 셈이다. 굉장히 얕은 사고지만, 그게 민태의 소통방식이었다. 상대가 맞을만하니 폭력을 정당화하는 건데 보통의 기준으로 그를 보면 분명 상식적이지 않은 건 맞다."

"한국영화 너무 뻔해져서 침체? 그건 아닌 것 같고..."

 영화 <브로큰>에서 민태를 연기한 배우 하정우.
영화 <브로큰>에서 민태를 연기한 배우 하정우.(주)바른손이앤에이

하정우는 애초 <브로큰>이 후속편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작품이라 고백했다. 다만,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어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음에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모처럼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인 <로비>가 오는 4월 개봉을 예정하고 있고, 바로 이어 네 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도 개봉 시기를 보고 있으나 시장 상황 자체가 녹록지 않다. 침체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하정우가 눈을 반짝이며 "긴급진단인가?"라는 말과 함께 생각을 밝혔다.

"최근 개봉하는 한국영화를 보며 그 힘이 무엇인지, 난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그런 고민에 <로비>나 <윗집 사람들>이란 작품을 만든 건데 보편적인 영화는 아니다. 얼마나 보실지 모르겠지만 그간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작품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롤러코스터>(하정우의 첫 번째 연출작)는 명작이다(웃음).

아무래도 지금의 침체는 자본이 빠져나간 영향이 크다고 본다. 예측할 수 없는 시장이 됐으니 쉽게 투자하기 어렵게 된 거다. 예전엔 누가 감독이다, 어떤 기획이다 하면 딱 예측이 됐는데 말이다. 한국영화가 너무 뻔해져서? 그건 아닌 것 같다. 신선한 재미는 100년 전부터 반복된 숙제다. 홍보 방법이 급변한 것도 들여다봐야 한다. 예전처럼 일괄적으로 모두에게 알리기 어려워졌다. 각자 SNS 알고리즘에 따라 접하는 정보가 달라졌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이런 영화가 나오는 줄도 아예 모른다."

최근 하정우가 SNS 계정을 만들어 팬들에게 하나하나 댓글을 다는 등 소통하는 것도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선문답처럼 재치 있게 한 줄 답글을 남기는 그의 모습에 팬들이 열광 중이다. '오빠를 만나고 싶은데 어떡하죠?'라는 물음에 '다이소로'라고 반응하는 등 그 엉뚱한 매력을 뽐내는 중.

"전에는 우아하게 팬카페에 1년에 두세번 글 남기고 했는데 그런 시대는 지났다. 팬들이 원하기도 했고, 이젠 직접 소통하는 시대잖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팬들에게 더 보답할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 제 팬마저 제 출연작이 언제 개봉하는지 모를 때가 많더라.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시작하게 됐다.

(영화계) 침체 시기에 일단 손흥민 같은 영웅이 필요해 보인다. 드라마 시장도 어렵다. 최근에야 영화계가 저예산 영화 중심으로 버티고, 뭔가 시도하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그 자체가 건강한 토양이 될 거라 본다. 자라나는 싹, 신인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투자를 안 해주니 되는 대로 자기 돈으로 찍겠다는 움직임도 있다. 그 속에서 분명 영웅과도 같은 작품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하정우 브로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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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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