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이용재
이용재
또 한 명의 선수가 그라운드를 떠난다. 바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금메달의 주역 이용재. 프랑스 FC낭트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이후 여러 J리그 구단을 거쳤다. 2022년에는 인천과 전남에서 활약하며 K리그에도 이름을 남겼다. 지난해 J3리그 기후FC를 끝으로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특히 지난 2014 아시안게임 당시 16강 홍콩전 선제골의 주인공이자 북한을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터진 유일한 골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름은 축구 팬들 사이에 많이 알려져 있다.
다음은 지난 3일, 충남 천안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힘들었지만 소중했던 유럽에서의 시간들"
- 요즘 근황과 은퇴를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결혼 생활 중 처음으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축구 레슨도 병행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부상 횟수가 늘어나고 긴 재활 기간을 거치다 보니 저에게도 은퇴의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매년 계속된 부상 때문에 몸도 예전 같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
- 남들보다 다소 축구를 늦게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초등학생 때는 그저 축구를 좋아하고 동네에서 축구 좀 하는 아이로만 유명했어요. 5학년 때 천안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제안을 받았지만, 그때는 부모님의 반대로 축구를 본격적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진학 시기에 천안중학교 축구부에서 다시 한 번 제안을 받고 그제야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축구를 꼭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지만요(웃음)."
- 이용재 선수 하면 왓포드에서의 유소년 선수 커리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당시 한국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서 제가 한 살 위 형들과 함께 뛰는 막내로 선발됐어요. 그때의 좋은 경험 덕분에 대한축구협회에서 진행한 유학 프로그램에도 합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좋은 기회를 얻은 2007년은 제게 유독 특별한 한 해였어요.
영국에서는 민상기, 백성동 선수와 함께 서로 의지하며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홈스테이를 하며 영국 가족과 지내는 경험도 하고 영어 수업도 받았죠. 특히 왓포드 현지 유스 선수들과 경쟁하며 훈련도 함께했는데 어린 선수들이 그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던 모습이 아직도 인상적입니다. 유럽은 정말 어릴 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강조하는 것 같아요."
▲낭트 시절, '강남스타일' 세리머니를 펼친 이용재
이용재
- 프랑스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어요. 프랑스 무대 입성 과정도 궁금하네요.
"사실 저의 첫 프로 계약을 왓포드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그 당시 영국에는 워크퍼밋이라는 룰이 있었고 국가대표 출전 수가 충족되지 못해서 영국 이외의 구단을 찾는 방법밖에 없었죠. 때마침 프랑스 FC낭트에서 테스트 제의를 보냈고, 테스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저의 첫 프로 계약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때는 고등학생 1학년 때부터 2년 동안 영국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너무 뿌듯하고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어요."
- 당시 뛰었던 두 개의 프랑스 구단(FC낭트, 레드스타FC)이 공교롭게도 현재 모두 한 단계 높은 디비전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요.
"아직도 낭트에서의 네 번째 시즌 때 승격을 확정 지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모든 팬들이 경기장 그라운드로 들어오고 축하하며 서로를 안아준 그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짜릿했던 것 같아요. 유럽 어디든 비슷하겠지만 프랑스도 축구의 열정이 그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이후에 뛴 레드스타는 파리를 연고로 하는 구단인데, 아무래도 다수의 파리 시민들이 PSG를 응원하기 때문에 팬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곳에서도 열정만큼은 정말 최고라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 J리그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습니다. 일본 프로 축구가 성공한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일본은 이미 예전부터 미래를 위해 유소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준비해 왔어요. 그것이 요즘 들어 일본에서 계속 좋은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같은 맥락에서 일본은 국제 대회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나라가 됐죠. 이에 자연스럽게 인기를 얻고 기업 투자가 활성화되며 자국 리그 흥행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15년 타지 생활... 한국에 대한 그리움 늘 있었다"
▲인천에서 '늦깍이 K리거'로 재출발한 이용재
이용재
- 다소 늦게 K리그에 데뷔했어요. 어떻게 보면 깜짝 이적이었는데요.
"아무래도 그동안 해외에서만 생활을 해왔기도 하고, 30대에 접어들면서 K리그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 당시 인천유나이티드에 있던 (오)재석이 형이 인천에 와 볼 생각이 있는지 제안을 해주셨고 곧바로 조성환 감독님과 연결이 돼 이적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 한국에선 이미 베테랑 선수였지만 동시에 'K리그 새내기'라고도 볼 수 있었겠는데요. 그동안 이용재 선수가 경험해 온 해외 무대와 문화적인 차이는 없었나요?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늘 용병 신분이었기 때문에 선수들과 가까워지더라도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향수병에 걸리는 선수들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K리그에 와서는 거의 모든 선수들이 한국인이고 친해지기도 편해서 원정 가는 길도 참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K리그 선수들은 피지컬적인 부분이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강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투지나 템포, 체력에서도 밀리지 않죠. 앞으로 우리 선수들이 내면에 잠재된 창의성을 과감히 보여주는 플레이를 한다면 리그의 수준이 더욱더 높아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요."
- 유럽 생활 중 아쉬운 부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 유소년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중학생 때 축구를 시작했음에도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선수에게 한 번쯤은 오는 그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 기회가 일 년에 한 번 올 수도 있고, 평생 단 한 번만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 기회를 반드시 잡기 위해 항상 준비된 사람이 돼야 합니다."
"많은 순간있었지만... 잊을 수 없는 그날"
▲멘탈이 강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용재멘탈이 강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용재
이용재
-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프로 생활 16년 동안 유럽, 일본, 한국과 대표팀 등에서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기억 남는 순간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만을 꼽는다면 2014년 금메달을 딴 인천 아시안게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단지 군대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그 대회는 7년 동안 유럽에서 활동하며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던 제게 일본이란 새 도전을 앞두고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제가 지금 거주하는 곳이 천안이다 보니 천안과 아산에서 축구 개인 레슨을 진행하고 있어요. 물론 이제 막 시작했기에 부족한 점도 많겠지만 다양하고 특별한 저의 경험을 잘 접목해서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유럽이나 일본 또는 K리거나 대표팀을 꿈꾸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저의 경험을 아낌 없이 공유하는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
- 끝으로, 축구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그동안 선수 생활을 하며 많은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해외에서만 16년을 보낸 것이 제게 큰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곳에서든 멘탈이 강했던 선수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성장하고 있는 선수들을 만나면 멘탈적인 부분을 더 강하게 단련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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