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원경>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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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방원은 인생의 주요 순간마다 왕후를 비롯한 여성들에게 크게 의존했다. 그는 이복동생 이방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긴 뒤에는 작은어머니인 신덕왕후 강씨와 사이가 틀어졌지만, 그전에는 강씨를 친어머니처럼 대했다. 그는 강씨의 보호하에 개경에서 시험공부한 뒤 15세 때인 1382년에 과거시험을 통과했다.
이방원은 정치 문제에서도 강씨의 말을 잘 따랐다. 그가 정몽주를 죽이겠다고 결심한 것도 작은어머니 때문이었다.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변을 당한 것은 1392년 4월 26일(음력 4월 4일)이다. 상식적인 경우라면, 이때 이방원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없었다. 전년도 하반기부터 친어머니 삼년상으로 함경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공부하고 15세에 급제한 엘리트 선비가 부모 삼년상 중에 살상을 범하기는 쉽지 않았다.
<태조실록> 서두에 따르면, 선죽교 사건 직전에 강씨의 사위인 이제가 삼년상 중인 이방원을 찾아갔다. 이제의 방문은 강씨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이 시기는 이성계가 낙마 사고로 요양 중인 틈을 타 정몽주가 이성계 라인을 숙청하고 있을 때다. 이제의 방문을 받은 이방원은 얼른 짐을 싸 개경으로 남하했다. 삼년상 중에 신속히 움직인 건 그 자신의 판단도 있지만, 강씨의 영향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정몽주는 토지개혁과 신왕조 창업에 반발하며 이성계와 척을 졌지만, 그전까지는 이성계의 쿠데타를 도운 핵심 동지였다. 그런 정몽주가 피살되자 누구보다 이성계가 충격을 크게 받았다. <태조실록> 서두에 따르면, 강씨가 있는 자리에서 이성계는 "세상 사람들이 내가 정말로 이 일을 몰랐다고 하겠느냐"라며 이방원을 질책했다.
두 부자가 언쟁하는 동안에 강씨는 침묵했다. <태조실록>은 "태조의 노기가 대단하자, 강비(康妃)는 옆에서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고 알려준다. 아버지의 꾸중을 듣던 이방원이 그런 강씨를 돌아보며 던진 한마디가 있다. "어머니는 어째서 해명하는 말씀을 해주시지 않습니까"라는 말이었다. 정몽주 암살을 사실상 사주한 장본인이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그런 말을 했던 듯하다.
그러자 강씨는 이성계를 바라보며 "공께서는 항상 대장부로 자처하셨는데, 어찌 이런 일로 놀라고 두려워하십니까"라며 이방원을 편든다. 이방원을 움직여 선죽교 사건을 일으킨 배후에 신덕왕후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여성들의 판단과 조력에 의존하는 이방원의 모습은 <원경>에서 묘사된 것처럼 제1차 왕자의 난 때도 나타났다. 이때는 부인 민씨와 처가의 도움에 힘입어 아버지와 정도전을 몰락시킨 것이다.
이방원과 후궁의 관계에서도 여성의 능력을 중시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원경>에 권선(연시우 분)이라는 후궁이 나온다. 이방원의 후궁 중에도 권의빈(의빈 권씨)이 있었다. 태종 2년 3월 7일 자(1402.4.9.) <태종실록>에 따르면, 원경왕후의 반발을 무릅쓰고 권씨를 후궁으로 들일 때에 이방원이 내세운 명분이 있다. '권씨는 현행(賢行)이 있다'는 구실이었다. 과거에 '현(賢)'은 리더십과 업무능력을 통합적으로 지칭할 때 쓰였다.
결국 '권씨는 현행이 있다'는 이방원의 말은 인격보다는 리더십 혹은 능력을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첩이 들어온다고 반발하는 부인을 설득하고자, '권씨는 현명하다'는 뜻으로 '현행'을 언급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권씨는 리더십이나 능력이 있다'는 의미로 그 말을 했다고 보는 게 상식에 맞다.
관계 틀어지면 가혹한 이방원
▲드라마 <원경> 속 한 장면tvN
여성의 조언에 귀 기울였던 이방원이지만, 관계가 틀어지면 가혹해졌다. 강씨·민씨·심씨의 혈족이나 친정을 철저히 짓누른 식이다.
이방원은 신덕왕후 강씨와 사이가 좋았지만, 건국 한 달 만인 1392년 9월 7일(음력 8월 20일)에 강씨가 정도전과 손잡고 이복동생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어머니에 대한 태도를 달리했다.
6년 뒤 왕자의 난 때 강씨의 아들들을 죽이고,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인 1409년에 강씨의 무덤인 정릉을 도성 밖으로 내보냈다. 그 뒤 강씨를 아버지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이 아닌 첩으로 격하시켰다. 강씨가 왕후의 지위를 회복한 것은 사후 273년 뒤인 1669년이다. 숙종의 아버지인 현종 때의 일이다.
원경왕후 민씨와 처가의 도움으로 1400년에 왕이 된 이방원은 정치 쇼나 다름없는 1406년의 양위파동 때 처남들이 세자를 끼고 욕심을 부렸다는 이유로 적대하기 시작했다. 그 뒤 민씨의 남동생인 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회를 죽음으로 내몰며 처가를 몰락시켰다.
작은어머니와 부인을 겪은 이방원은 며느리인 소헌왕후 심씨에 대해서는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난 1418년 연말부터 사돈집을 박해했다. 사돈집이 상왕의 군사권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왕후 심씨의 아버지인 심온과 작은아버지인 심정을 죽였다. 큰아버지 심도생과 또 다른 작은아버지인 심징에게는 유배형을 내렸다. 이 형제들의 아들들 일부도 귀양을 보냈다. 가문이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방원은 가장 가까운 여성들의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세상을 떠났다. 여성에게 많이 의존하면서도 여성과의 권력투쟁은 한층 가혹하게 전개했다. 그래서 이방원 집권기의 정국 상황을 살펴볼 때는 그와 남성들의 관계뿐 아니라 그와 여성들의 관계도 비중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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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