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에서 많이 쓰이는 '챵량'(敞亮)이라는 중국어 단어를 아시나요. '탁 트이다' 내지는 '시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쓰는,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하얼빈에서 8년 만에 동계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하얼빈으로의 여정을 탁 트일 수 있도록 시원하게 담겠습니다.[기자말]
오는 7일 개막하는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종목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어떤 종목을 꼽을 수 있을까. 가장 긴 호흡으로 경기를 펼치는 아이스하키, 8일과 9일 '메달 밭'이 펼쳐지는 쇼트트랙을 떠오르는 스포츠 팬이 많을 테다.

하지만 '진짜 시작'을 알리는 종목은 따로 있다. 바로 믹스더블 컬링이다. 4일 사전 경기로 예선을 시작하는 믹스더블 컬링은 개막 다음 날인 8일 오전 결승전을 치른다. 이번 대회 대한민국 대표팀의 첫 경기로 초반 분위기를 이끄는 한편, 첫 메달이 될 가능성도 높은 셈.

네 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보통의 컬링과 달리, 두 남녀 선수가 호흡을 맞춰야 하기에 팀워크와 멘탈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믹스더블 컬링이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믹스더블 컬링의 대표팀은 강릉시청 '팀 킴'의 '테이크아웃 장인' 김경애, 그리고 강원도청의 '숨은 실력자' 성지훈으로 꾸려졌다.

"많은 경험이 장점... 팀워크도 최고"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믹스더블 컬링의 두 선수. 왼쪽부터 성지훈 선수, 김경애 선수.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믹스더블 컬링의 두 선수. 왼쪽부터 성지훈 선수, 김경애 선수.선수단 제공

김경애 선수야 모두가 알고 있는 국내 컬링 최강 선수 중 한 명이다. 성지훈 선수도 경북체육회 시절 여러 해 동안 믹스더블 전문 선수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데다 국가대표까지 했었던, 믹스더블 컬링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 중 한 명이다.

믹스더블은 드로우한 스톤이 가는 방향, 이른바 '라인'을 잡기 어렵고, 자신이 투구한 스톤을 자기가 직접 스위핑해야 하기에 어려운 점도, 팀 워크에 신경 써야 할 점도 많은 종목이지만, 김경애 선수는 남다른 자신감을 드러냈다.

"(성)지훈이가 중학교 때부터 저와 알고 지냈어요. 특히 지훈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우리 팀으로 왔으니, 같은 팀에 속했던 기간도 5~6년 정도 되고요. 그래서, 서로가 컬링할 때의 장단점을 더 잘 알아서 다른 선수와 합을 맞췄을 때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성지훈 선수에게는 5년 만에 찾아온 믹스더블 국가대표가 이번 자리였다. 성지훈 선수는 "사실 세계선수권대회도 2020년에 출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라며 "그래서 세계선수권도 믹스더블 컬링으로는 처음 하는 경기다. 아시안 게임 역시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지훈 선수는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아시안 게임이 세계선수권이나 다른 국제대회와 비슷한 것 같다. 들뜨다기보다는 '조금 다른 대회구나' 싶은 정도"라며, "경기를 뛰어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애 선수는 8년 전 열린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팀 킴' 선수들과 함께 은메달을 합작했던 경험이 있다. 김경애 선수는 "동계 아시안 게임은 '작은 올림픽' 같은 느낌이 강한 편"이라며 그때 경험을 돌아봤다.

이어 김경애 선수는 "개회식이나, 여러 행사가 아시안 게임 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올림픽 1년을 앞두고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한다"면서도, "8년 전에는 4인조였고, 지금은 믹스더블 컬링이니 조금 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 역시 크다"고 말했다.

"능숙한 경기 보여주고 싶어"

 지난 1월 컬링 슈퍼리그에 출전했을 당시의 김경애 선수.
지난 1월 컬링 슈퍼리그에 출전했을 당시의 김경애 선수.박장식

믹스더블 국가대표가 된 김경애-성지훈 조는 원소속팀인 강릉시청·강원도청에서 떨어져 훈련과 출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군 복무 선수들의 복귀해 큰 걱정이 없는 성지훈 선수와 달리 김영미 선수가 출산 휴가에 돌입하며 세 명으로만 경기를 뛰어야 하는 강릉시청 '팀 킴'은 걱정도 있을 만했다.

실제로 강릉시청 '팀 킴'은 이번 그랜드슬램을 김은정·김초희·김선영 단 세 명의 선수로만 뛰었다. 하지만 강릉시청은 평소 고전하던 강팀들을 상대로 '도장 깨기'에 성공하며 4강 진출에 성공, '공포의 3인방'이라는 탄성 섞인 별명이 붙기도 했다.

김경애 선수는 "4인조로서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고민이 컸지만, 믹스더블을 위한 시간을 동료들이 기꺼이 내 주어서 고맙다"며, "우리가 가서 좋은 성적 내기를 팀원들이 모두 응원하는데, 그 보답을 우리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으로 하고 싶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성지훈 선수 역시 "팀에서 특히 아시안 게임은 잘하고 오라고 이야기를 해 준다"며, "믹스더블에 잘 집중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두 선수에게 팀워크는 어떤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성지훈 선수에게 지금까지 맞춰 봤던 믹스더블 파트너 중 김경애 선수의 장점을 묻자, 김경애 선수가 "파트너가 제일 예쁘다"며 망설임 없이 대신 답하기도 했다.

과거 믹스더블 국가대표를 역임했을 때와 지금의 다른 점은 성지훈 선수만 답할 수 있는 내용일 테다. 성지훈 선수는 "첫 국가대표 때는 어렸을 때고, 경험도 적었을 때"라며, "사실 그때 이후로 4인조 국가대표로 경기에 나가기도 하면서 경험이 크게 늘었다. 지금은 5년 전보다 능숙한 것이 장점"이라며 말했다.

"아시안 게임 '첫 단추', 잘 끼워야죠"

 성지훈 선수(맨 오른쪽)의 4인조 경기 때 모습. 팀원들의 아낌없는 응원은 성지훈 선수에게 자신감이 된다.
성지훈 선수(맨 오른쪽)의 4인조 경기 때 모습. 팀원들의 아낌없는 응원은 성지훈 선수에게 자신감이 된다.박장식

김경애 선수는 특히 투구할 때 신경이 많이 쓰일 홈 팀의 응원과 관련한 질문에 "중국 관중들이 여기저기서 응원하는 소리 들으면 어마어마하긴 하다"면서도, "하지만 우리가 '어웨이'에서 경기를 치른 경험이 훨씬 많은 만큼, 우리 샷에만, 경기에만 집중하면 상대 관중의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경애 선수가 신경 쓰는 건 도리어 중국팀이다. 김경애는 "상대 팀이 캐나다에서 믹스더블 투어를 돌면서 성적을 좋게 올렸다"며, "사실 평창 올림픽 때에야 '홈 어드밴티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으니, 우리가 할 것을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성지훈 선수도 "한국에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잘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가 시작을 잘해야 남녀 팀도 파이팅넘치게 하지 않을까 싶다"며, "특히 남자 대표팀인 의성군청 후배들도 나라를 대표해서 간 만큼 잘해서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애 선수는 "우리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첫 메달 소식을 만들어 주면, 그 이후에 남녀 4인조 선수들이 아시안 게임의 대한민국 3관왕 기록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사실 여자 팀(경기도청)은 걱정하지 않더라도 잘할 팀이기는 해요. 그래도 우리가 스톤 정보나 시트에 따라 달라지는 감각을 남녀 팀에게 알려줘서, 전 종목 석권을 할 수 있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같은 나라 선수로서 함께 우승해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김경애-성지훈 듀오는 한국 시간으로 4일 오전 11시부터 열리는 필리핀과의 예선 1차전으로 이번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경기 시작을 알린다. '첫 단추'를 강조하는 두 선수가 펼칠 활약이 기대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김경애 성지훈 믹스더블컬링 컬링 2025하얼빈아시안게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