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잔 해'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연배에 따라 임창정의 노래가 떠오를 수도 있고, 트롯 가수 박군의 '한잔해'가 떠오를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수퍼에서 파는 초록병의 '소주'가 떠오르겠고, 시대를 거슬러 조선 시대 사람들이라면 집에서 빚은 소주(燒酒)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이처럼 소주라는 술은 시대에 따라 마치 동음이의어처럼 전혀 다른 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주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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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종류나 맛은 다양해졌지만 변함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식문화, 특히 술문화에 있어 대표적인 '얼굴'이 된다는 것이다.

1월 23일, 30일 양 일에 거쳐 KBS1 다큐인사이트는 <한국 음식문화 랩소디> 시리즈 여섯 번 째 편으로 '소주'를 방영했다.

산업화 시대의 동반자

그 첫 번 째 시리즈는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소주이다. 2023년 한 해 24억 4천 만 병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 '메이커'가 바로 우리나라의 소주를 만드는 곳 이란다. 그 업체에서 1966년부터 만든 술이 지구를 342바퀴를 돌 정도 라는데.

1919년 일제 강점기 평양, 인천에 공장이 생기며 '희석식 소주'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싼 고구마, 그 후에 쌀을 원료로 하여 무색, 무미, 무취하게 만들어진 95%의 주정에 시대에 맞춰 물과 감미료를 섞어 우리가 마시는 소주로 만들어 졌다. 1부의 다큐는 바로 이 희석식 소주가 국민술로 등극하기 까지의 현대사를 논한다.

1965년 30도, 한 모금 마시면 자신도 모르게 '카' 소리가 뱉어지는 독한 소주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산업 역군들의 '위로주'였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포장 마차에서 독한 소주를 흘려 넣으며 하루의 시름을 잊었다. 1970년 65원이고, 2010년이 되어서야 1000원이 된 소주만큼 대중의 호주머니를 배려한 술이 있었을까

그래서 국민주가 된 소주, 전국에 40여 개의 업체가 난립, 박정희 정부는 이의 관리 차원에서 1도 1주 정책을 펼쳤고, 1973년 통폐합을 거쳐 '무학', '보해', 한라산' 등 '지방색' 가득한 고향 소주가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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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순대국, 심지어 새우깡까지 그 어떤 안주와도 '페어링'이 되는 술 소주, 그래도 소주를 국민적 술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건 기름진 삼겹살의 대중화였다고 한다. 삼겹살을 지글지글 굽고, 그 기름진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털어 넣는 소주 한 잔의 마리아주만한 것이 있을까. 구한말 목로주점, 실비집에서 술 한 잔을 마시면 반찬은 서비스였던 전통은 이제 '술국'이란 이름만으로 남겨져 있지만, 다슬기, 복어, 선지 등 지역마다 특색있는 재료를 활용한 해장국은 '술 공화국'의 명맥으로 남아있다.

일찌기 소주와 막걸리를 섞은 '혼돈주'를 즐겨 마셨던 조상들, 그 전통은 90년대 '양주와 맥주'의 폭탄주를 거쳐 2000 년대 소맥으로 거듭나며 남녀 불문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와 함께 2006년 19.8도로 20도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한 소주는 2022년 16도까지 해를 거듭하며 순해졌고, 소주 모델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듯 독한 남성들의 술이라는 이미지도 '희석'되어져 갔다. 일이 힘들어 술 한잔으로 시름을 잊고, 다시 다음날 그 숙취를 해장국에 소주 한 잔으로 달래며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 삶을 달래던 산업화 시대의 일상도 술을 즐기는 문화로 변화되어 갔다.

 소주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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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다양성, 그리고 가능성

<소주 랩소디> 의 2부는 희석식 소주가 아닌 소주(燒酒)를 논한다. 그런데 그 논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우리에게 이런 소주들이 있었어 라는 역사적 관점이 아니라, '옛 것을 오늘에 되살려' 라며 다시 되살아 나는 증류주로서의 소주의 가치와 가능성을 말한다.

여몽 전쟁으로 고려에 들어온 몽골군, 그들은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아랍 쪽의 증류주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고, 고려에 발효주를 끓여 증류하여 술을 빚는 법을 전수했다. 고려의 도자기 문화가 더해져 흙으로 소줏고리를 빚어 증류하여 '이슬'처럼 맺혀 떨어진다 하여 노주(露酒)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시처럼 1894년 조사에 따르면 31만 4천 가구, 한 집 건너 한 집이 술을 빚었다고 한다. 쌀 등의 원재료를 쪄서 누룩을 섞어 발효를 시키고, 이를 끓어 증류시킨 것이 이른바 소주(燒酒)가 되었다. 집집마다, 지역마다 저마다의 전통과 특색을 가지고 술을 만들던 것이 우리의 술 빚는 방식이었다. 박록담 전문가가 찾아보니 남겨진 것만 해도 573종류, 빚는 법은 1037 종에 이른다고 했다.

일제는 1919년 주세법을 만들어 주류 제조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며 전통주가 사라져갔고 해방과 6.25를 지나 다시 전통주가 회생하나 싶었는데 당장 먹을 쌀도 없는데 '주식'으로 술을 빚는다며 1965년 양곡 관리법으로 '밀주'를 단속했다. 그런 와중에도 산속에 숨어, 이불 밑에 숨기며 술을 빚었던 조상들, 그렇게 살아남은 소주가 지금 우리에게 남은 증류식 소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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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올림픽으로 세계의 시선이 우리에게 돌려지자 전통주 복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양반이 많아 함부로 단속하지 못했다던 안동 소주가 제일 먼저 그 이름을 알렸다.

조선시대의 요리서 <수운잡방>에 따르면 최초의 소주는 밀로 빚었다 하고, 밀꽃의 하얀 꽃향이 풍겼다고 한다. 이처럼 소주는 원재료를 무엇으로 하는가, 그리고 어떤 누룩을 썼는가 등 만드는 방식에 따라 맛과 향에 있어 다양한 풍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평양에서 만들어진 '문배주'는 그곳에서 많이 나는 메조와 수수로 만드는데, 과일 배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야생 돌배 향이 나서 문배주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소곡주는 찹쌀이 원료가 되었고, 전주 이강주는 왕에게 진상하는 울금과 배를 넣어 만들어 그 이름을 알렸다. 홍주는 자연산 지초가 들어가야 그 빨간 빛깔이 제대로 우러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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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주는 전통에 머물지 않는다. 대를 이어 소주를 만드는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전통을 오늘에 잇는다. 안동의 강 건너 마을에서는 밀을 재배부터 하여 누룩부터 직접 만들기도 하고, 울릉도 해양 심층수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증류주로 탄생된다. 20년동안 옹기에 숙성되고 있는 소주로 있고, 오크통에서 숙성하여 위스키와 콜라보된 소주가 탄생되기도 한다. 그저 많이 팔리는 소주를 넘어 술 맛을 아는 이들의 호응에 힘입어 숙성과 깊이를 지닌 증류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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