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예능'은 생각보다 성공 확률이 썩 높지 않다. 야구 붐을 타고 2009년 4월 KBS에서 방송을 시작한 <천하무적 야구단>은 연예인들의 사회인 야구 도전기를 다루며 인기를 끌었지만 토요일 저녁의 '양강' <무한도전>과 <스타킹>에 막혀 1년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2019년에는 각 종목의 레전드들이 조기 축구에 도전하는 JTBC의 <뭉쳐야 찬다>가 방송돼 인기를 끌었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떨어지는 화제성과 시청률을 버티지 못하고 오는 2월2일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다. 농구를 주제로 했던 SBS의 <진짜 농구, 핸섬 타이거즈>와 JTBC의 <뭉쳐야 쏜다>,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 등도 스포츠 예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찍 종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포츠 예능은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현존하는 스포츠 예능 중 가장 오랜 기간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은 JTBC의 <최강야구>와 SBS의 <골 때리는 그녀들>(아래 <골때녀>)이다. 그리고 2025년 설 연휴를 맞아 SBS에서 또 하나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했다. 올림픽 10연패에 빛나는 여자 양궁의 전설들이 다시 모여 현역 시절 못지 않게 치열한 승부를 벌였던 <전설의 리그>다.
전설과 현역이 어우러진 멋진 승부
▲<전설의 리그>에선 8명의 은퇴한 양궁 전설들이 모여 개인전과 단체전 경기를 치렀다.
SBS 화면 캡처
양궁의 현대적 규칙을 처음 제정한 나라는 영국이지만 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양궁 최강국으로 인식되는 나라는 단연 대한민국이다. 특히 한국 여자 양궁의 위상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1984년 LA 올림픽부터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여자 양궁에 걸려 있던 금메달 23개 중 22개를 휩쓸었다(혼성 단체전 포함). '한국은 올림픽보다 선발전이 더 어렵다'는 말은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여자 양궁이 올림픽에서 세운 엄청난 업적에 비해 실제로 양궁 선수들이 주목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양궁은 정적인 상황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종목의 특성상 박진감 넘치는 구기 종목들에 비해 인기 스포츠가 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여기에 한국 여자 양궁은 도쿄 올림픽 3관왕 안산이 파리 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했을 정도로 선수층이 두꺼워 특정 선수가 오랜 기간 정상에 군림하기도 힘들다.
이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는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최고의 영광을 누린 선수들도 선수 생활을 마치면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빠르게 잊히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기보배나 장혜진처럼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매체에 등장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처럼 지상파에서 생중계 하는 국제대회는 많지 않다. 따라서 설 연휴인 29·30일에 방송된 <전설의 리그>는 양궁 전설들에게 더욱 의미 있었다.
<전설의 리그>에는 파리올림픽 코치였던 김문정을 비롯해 윤미진, 이성진, 기보배, 장혜진, 윤옥희, 주현정, 최현주까지 8명의 전설들이 출연했다.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문정을 제외한 7명의 선수들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이들이 보유한 올림픽 금메달만 무려 13개에 달한다. 이들은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눠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리며 현역 시절 못지 않은 긴장감 속에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30일 열린 단체전 경기는 현역 선수 4명(안산, 임시현, 최미선, 남수현)이 등장해 분위기를 더욱 고조 시켰다. 비록 과녁과의 거리는 40m로 국제 대회 기준인 70m보다 가까웠지만 개인전 8강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과녁의 지름이 80cm로 줄어들면서 긴장감을 높였다. 그럼에도 한 시대를 주름 잡았던 한국의 여자 궁사들은 카메라 렌즈를 3번이나 박살 내며 관중들과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골때녀'처럼... 양궁 예능도 성공 가능?
▲<전설의 리그> 중계를 맡은 배성재 캐스터는 중계 도중 넌지시 정규편성에 대한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SBS 화면 캡처
흔히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예능 프로그램을 1회 또는 2회차로 파일럿 편성한 후 반응이 좋으면 미비했던 점을 보완해 정규 편성한다. MBC의 <복면가왕>과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SBS의 <미운 우리 새끼>, <골때녀> 등이 모두 파일럿 편성으로 '실험'을 했다가 정규 편성에 성공한 프로그램들이다.
특히 2021년 6월 정규 편성돼 현재까지 수요일 저녁을 책임지고 있는 SBS의 여자축구 예능 <골때녀>는 지상파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스포츠 예능이다. 여성 연예인 및 방송인들이 풋살 경기를 통해 여자 축구의 매력과 정정당당한 승부의 가치를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했다. 프로그램의 인기와 함께 정혜인과 서기, 허경희, 김보경 등 출연진들의 인지도도 함께 올라갔다.
<골때녀>의 인기와 함께 축구와 풋살을 즐기는 여성들이 부쩍 늘어난 것처럼, <전설의 리그> 역시 정규 편성이 된다면 충분히 스포츠 예능으로 다양한 매력을 선사할 수 있다. 평소 양궁을 접해보지 않았던 연예인들을 모아 팀을 결성하고 레전드들에게 지도를 받은 후 대회를 치른다면 시청자들에게 양궁의 매력을 알리고 양궁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연예인들의 양궁대회는 통칭 '아육대'로 불리는 MBC <아이돌스타 선수권대회>를 통해 여러 차례 열린 적이 있다. 하지만 아이돌 가수들이 대회를 앞두고 몇 번의 연습 후 경기에 출전하는 것과 정규 프로그램을 통해 올림픽에 출전했던 레전드들에게 전문적으로 지도를 받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수시로 분위기가 바뀌는 양궁의 흥미로운 경기방식 또한 올림픽을 즐겨본 시청자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다.
물론 파일럿 프로그램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기 위해서는 방송국의 여러 사정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특히 최근에는 유튜브 등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예능 콘텐츠들이 범람하면서 지상파 예능의 제작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지만 올림픽 여자 단체전 10연패에 빛나는 양궁 세계 최강 한국에서 시청자들에게 양궁의 재미와 매력을 알리는 양궁 예능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양궁예능이 정규편성된다면 양궁의 매력을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SBS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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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골때녀' 가능할 듯... 정규 편성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