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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다섯. 작사 공부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랫말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더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해 보자고 결심한 뒤 작사 학원에 등록했다. 새로운 도전은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는 법. 전에 없던 진풍경이 요즘 우리 집에 펼쳐지고 있다. 방문도 꾹 닫고 입도 꾹 닫은 15살, 13살. 사춘기 아이들이 문을 열고 입을 열게 된 것이다.

대부분 내가 써야 하는 곡들은 아이돌 노래다. 현재 내 나이의 감성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때 가장 도움을 주는 이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때마침 아이돌 '덕질'에 푹 빠져 있는 딸은 나에게 이런 저런 참견을 하기도 하고 함께 음악 프로를 시청하며 곡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애들아, 엄마가 쓴 것 좀 봐줘"
"엄마, 그런 단어의 표현은 너무 올드해."
"그래? 그럼 어떻게 써야 하는데?"
"이 곡이랑, 이 곡 한 번 참고해 봐. 여기 신선한 표현 많잖아"

어느 날은 딸아이가 대놓고 말했다.

"난 엄마가 작사 공부를 하니까 너무 좋아. 왠지 말이 잘 통하는 느낌이야."

나 역시 요즘 아이돌의 매력을 알게 되기도 하고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가 겹치기도 해 아이들과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든다.

 < 2024 KBS 가요대축제 >에 출연한 베이비복스
< 2024 KBS 가요대축제 >에 출연한 베이비복스KBS

최근엔 내가 사춘기일 때 활동했던 아이돌의 복귀로 더 많은 얘깃거리가 만들어졌다. 얼마 전 베이비복스의 무대를 보며 과거의 팬 문화와 최근 팬 문화를 얘기 나누기도 하고 건재한 지드래곤의 활동과 그의 음악을 함께 '리스펙트' 하기도 했다

" 엄마 때는 좋아하는 가수한테 팬레터 쓰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선물도 엄청 주고 그랬는데... "
" 엄마, 요즘은 역조공이라고 해서 가수들이 팬들에게 선물을 주는 문화가 있어."
" 어머,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한테 선물 받으면 좋겠다. 세상 진짜 많이 변했네."

이렇게 변화된 요즘 문화를 알게 되는 것도 신기하고 '왜 저러는 거야?' 라고 비꼬기보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라며 젊은 세태들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나 역시 아이들과의 대화가 즐겁다.

플레이리스트가 열어준 대화의 장

예상치 못한 사춘기와의 음악 대통합이 이루어진 날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에서였다. 형형색색의 아이돌 응원봉이 거리를 밝히고 에스파의 '위플래시', 로제의 '아파트'등 익숙한 음악이 나오자 아이들이 평소 관심을 가지지 않던 뉴스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특히 지금 이 노래가 왜 울려 퍼지고 현 사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대화까지 이끌어 냈으니, 이보다 더 실리적인 교육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수 황가람이 유튜브 '동네청년' 채널에 올린 <나는 반딧불> 뮤직비디오
가수 황가람이 유튜브 '동네청년' 채널에 올린 <나는 반딧불> 뮤직비디오황가람

내가 추천한 노래가 아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킨 경우도 있다. 최근 40대에게 가장 사랑받는 노래라면 단연 '나는 반딧불'일 것이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이 노래의 첫 구절을 듣고 가슴이 시큰했던 나는 아이들에게도 들려주었다. 아이들도 나처럼 가사를 곱씹더니 나와 다른 관점에서 와닿는다고 했다. 나는 인생의 허무와 현실을 깨닫게 되는 지점에서 가슴이 찡했다면 아이들은 현재 학업과 진로로 연결해 이 노래에 대한 감동을 이어갔다.

음악은 나이와 인종과 나라를 불문하고 하나로 이어준다고 했다. 내게는 외계에서 온 것 같은 사춘기와의 거리를 이어주는 아주 특별한 도구다. 사춘기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정이 있다면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로 대화의 물꼬를 터볼 것을 권장한다.

아이들의 플레이리스트와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다 보면 서로의 마음까지도 공유가 되는 마법이 펼쳐질지도 모르니까.

음악 K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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