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과거의 인간과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태어나 평생토록, 또 아버지와 그 아버지, 다시 그 아버지와 그 아버지들에 이르기까지. 수 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삶의 양식은 얼마 차이가 없다.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인간 보통의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한 세기 전, 아니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기기를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지 않나. 말보다 훨씬 빠른 차를 타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와 통신하며, 알약 하나로 다이어트까지 하는 세상이다. 수많은 질병을 정복하고 얼굴이며 몸매까지 뜯어고치는 이 시대를 우리는 별다른 위화감 없이 살아간다.
▲<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 포스터
롯데컬처웍스
변화하는 세계, 적응하는 시민
<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괴상한 이름의 애니메이션은 일본 개봉 1년 만에 모두 두 개 파트로 나뉜 작품을 연달아 한국에 선보였다. 첫 편은 관객수 3만 명에 육박할 만큼 의외의 흥행세를 선보이고 있다. '데데디디'로 줄여서 부르는 이 영화의 인기비결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다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한 가지는 영화의 설정이 제법 흥미롭다는 점이다.
애니는 인류가 처음 겪는 세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어느 날 일본 상공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미확인 비행물체가 나타난다. 교신도 되지 않고 정체도 알 수 없는 비행체의 출현에 인간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져든다. 상황은 인간의 대응으로 더욱 나빠진다. 미군 폭격기가 출격해 비행체에 공격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공격은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하고, 발사한 미사일의 영향으로 도리어 인간들이 피폭 피해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 스틸컷
롯데컬처웍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우주선
작품은 곧장 3년 뒤 어느 학교 교실 풍경으로 건너간다. 대입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 사이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중학교 시절부터 단짝인 카도데와 오란, 또 그녀들과 가까이 지내는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을 중심으로 < 데데디디: 파트1 >은 여느 청춘영화 같은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도시 상공엔 거대한 비행체가 떠 있다. 외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그 비행체는 3년 전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인간과 교신하려는 행위는 물론이고, 그 안에 살아있는 무엇이 있는지도 알 방도가 없다. 외부의 공격이 먹혀들지 않는단 건 3년 전의 경험으로 깨우쳤으니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저들 머리 위에 떠 있는 비행체를 놓아둘 수밖에 없다.
세계는 분명히 달라졌다. 비행체가 나타나 상당한 기간 동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 외에 다른 존재가 있고 그들이 먼저 지구를 찾았다는 걸 알게 돼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 전에 없던 변화에도 사람들은 공부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일상을 산다. 영화 속 꽤 인상적인 대사처럼 평범한 소시민들은 변화하는 세상에 어떻게든 적응할 수밖에 없다.
▲<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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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실 떠올리게 하는 일본 SF 애니
애니 속 일본의 사회상은 여러모로 한국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무능한 권력자와 부패한 정치인이 득세하고, 힘없는 시민들은 세상의 관심에서 밀려나 근근이 살아갈 뿐이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편을 지어 저들 중 튀는 이를 따돌리고 괴롭힌다. 낙후된 마을의 사람들은 비행체가 뜬 도시의 사람들을 혐오하고 어리석다 욕한다. 정부 발표며 미디어를 믿지 못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의 음모론에 빠져 사는 이가 있고, 또 그런 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다. 공권력의 오작동으로 숨지는 이들이 생겨나고, 그 슬픔을 견뎌나가는 이들이 있다. 이 모두 앞에서 어떻게 한국의 오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 데데디디: 파트1 > 속 세상은 우리가 사는 곳과 다르지 않다. 마치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그렇지 않느냐는 듯 인간들은 좀처럼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 시대를 아무렇지 않게 살아나 간다. 너무나도 천박하고 비열한 인간다움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아주 가끔은 우리가 인간다움이라 즐겨 말하는 아름다움도 모습을 드러낸다. 따돌림당하는 친구를 돕고, 알지 못하는 것을 단정 짓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는 이례적 사건일 뿐이다.
< 데데디디: 파트1 >은 인간 사이에 외계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며 본격 새로운 장으로 진입한다. 외계인의 존재로 인해 인간은 도리어 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다. 우리의 생각보다 잔인하고, 우리의 기대보다 천박하며, 우리의 희망보다 나약한 인간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외계의 존재를 향하여 발포하는 인간과 그 대가로써 죽음을 맞는 수많은 존재들, 또 영화의 끄트머리에서 강렬하게 등장하는 6개월 후 인류가 멸망한다는 자막이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영화 <데데디디>를 놓아버리지 못하도록 한다.
파트2가 선을 보인 뒤에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겠으나 <데데디디>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인간사의 새로운 장을 쓴다. 닐 블롬캠프의 영화 < 디스트릭트9 >이 그러했듯, 인류 앞에 다른 문명으로부터 건너온 자들을 등장시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새롭게 주목한다. 또 한 편으로 시대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으로부터 <데데디디>는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이 그와 같은 순간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현실 또한 일깨운다.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을 원하여 맞이한 이가 과연 얼마만큼일 지, 또 그로부터 낙오되지 않고 적응해 낸 인간은 또 얼마나 될지 돌아보게 한다.
▲< 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 파트1 > 스틸컷롯데컬처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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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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