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영화 < 날 용서해 줄래요? >로 잘 알려진 마리엘 헬러 감독의 신작 영화 <나이트비치>가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됐다. <컨택트>, <그녀>의 에이미 아담스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독박육아에 전념하면서 기이한 신체적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한 엄마의 여정을 다룬다. 모성애 신화의 해체와 신체의 변형이라는 장르적 문법을 어떻게 결합했는지 살펴보자.

이름 없는 인물

 영화 <나이트비치> 스틸컷
영화 <나이트비치> 스틸컷월트디즈니컴퍼니

<나이트비치>의 가장 큰 특성은 주연 등장인물들에게 이렇다 할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작중 에이미 아담스가 맡은 캐릭터는 '엄마' 혹은 '여보' 등의 호칭으로만 불리고, 이는 그가 도맡아 키우는 아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친구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에게는 전부 이름이 주어진다. 이는 주인공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일인칭 소설과 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주인공과 다른, 육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보다 특별하고 행복해 보이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주인공은 미술을 전공하다가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전업주부가 된 인물이다. 그는 도무지 잠을 잘 줄 모르는 아이 때문에 고통받는가 하면, 이따금 집에 찾아와서는 잠깐의 즐거움만 누리고 가는 남편을 원망하기도 하고, 다른 엄마들과의 교류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다만, 영화는 이토록 수동적이고 우울한 삶을 그대로 전시하는 대신 이따금 주인공이 '사회적 제약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할 법한 행동들을 교차 편집해 쾌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인물에게 따귀를 날리는 상상 속 장면을 보여 주거나 주인공의 독백을 적절하게 삽입하는 식이다.

이러한 <나이트비치>의 코멘트는 그동안 '모성 신화'를 파괴해 온 수많은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툴리>는 엄마가 되기 전의 자아와 엄마가 된 후의 자아를 만나게 하는 영화적 허용으로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틸다 스윈튼 주연의 <케빈에 대하여>는 아이들의 무지함에서 비롯되는 고통스러운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엄마-자식'의 관계가 완전한 타인과의 관계와도 같다는 점을 상기했다.

<나이트비치>의 독백과 교차 편집도 다소 노골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이러한 맥락에서 직설적인 영화적 어법을 사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름 없는 주인공과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과 주인공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것이다.

끔찍한 신체를 넘어서

 영화 <나이트비치> 스틸컷
영화 <나이트비치> 스틸컷월트디즈니컴퍼니

물론 <나이트비치>는 육아로 인한 고통을 늘어놓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작중 주인공은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난 개들을 지켜보며, 그 속에서 일종의 자유를 찾는다. 그 개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나날이 늘어 갈수록 실제로 자기 신체가 변화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고, 이러한 장면은 CG와 특수효과가 적절히 조합돼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나이트비치> 자체는 호러보다는 드라마/코미디에 가까운 장르에 정착해 있지만, 인간의 사실적인 신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바디 호러'의 문법을 차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트비치>가 바디 호러의 특성을 가져다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중 주인공은 동물로 변하는 자기 신체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위해 고대 괴물들에 관한 책을 빌려 읽는데, 이 과정에서 그리스 신화 속 '키메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실존하는 다양한 동물들이 하나된 모습을 보이는 이 괴물은 작중 표현에 따르면 '모성을 상징하는 모든 것'들의 집합체이자 그 자체로 '강력한 하나의 야수'다. 영화 속 주인공이 개로 변하면서 사방을 뛰어다니고 위선적인 사람에게 맞서 싸우는 힘을 얻는 것은 '모성 기계'로 전락한 현대의 모성상에서 벗어나 인간 안에 있던 본래의 '야수'를 받아들이는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신은 '체면'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주인공은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 받는 것을 견뎌야 하고, 친구들에게 지적받을 것을 알면서도 남편과의 별거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단면적으로는 자기 파괴적인 선택이지만, 동시에 알을 깨고 나오는 새나 고치를 뚫고 나오는 곤충의 것과 같은 각성의 순간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새로이 얻은 '짐승과 같은 힘'을 사용하고 나서야 자신의 예술에 집중하면서 자신을 돌볼 시간을 얻게 되고, 비로소 엄마가 되는 것을 '좋다'고 선언할 수 있게 된다.

호러 장르에서 여성이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탈바꿈하는 것은 언제나 카타르시스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서브스턴스> 에서 주인공은 '모든 게 제자리에 달려 있지 않은' 괴물이 되면서 하이라이트에 돌입하고, <티탄>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자동차 부품과 기계로 이루어진 아이를 낳는다. 여성을 억압하는 외부 사회의 압박은 영화 속 여성으로 하여금 탈인간의 순간에까지 달하도록 몰아붙인다.

다만 바디 호러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파괴적 순간에 끝을 맺는다면, <나이트비치>는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 준다. 주인공의 변신으로 일구어낸 분담 육아는 그로 하여금 모성과 야성에 관한 전시회를 열 수 있게 하고, 둘째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만든다.

 영화 <나이트비치> 스틸컷
영화 <나이트비치> 스틸컷월트디즈니컴퍼니

영화는 주인공이 둘째를 낳으면서 내지르는 비명을 야생의 개가 짖는 소리와 겹치면서 끝을 맺는다. '모성 신화'를 지적하는 대부분의 영화가 '엄마됨' 이라는 악과 '개인의 삶'이라는 선의 이분법적 대결에서 개인의 손을 들어 주는 데 그친다면, <나이트비치>는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생명을 돌보기로 결정하게끔 하는 용기를 얻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그 용기는 한 여성의 변신만으로는 일궈내기 어렵다. '엄마됨'과 '개인의 삶'이 양립할 수 있도록 사회적·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나이트비치>의 독특한 상상력은 이렇게 우리 사회를 향한, 유효한 지적이 된다.
나이트비치 에이미아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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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 신봉자. 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믿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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