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요노스케 이야기> 스틸컷
쇼게이트 제인앤유
<요노스케 이야기>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아는 이 많지 않은 이 영화를 내가 각별히 애정하는 건 영화가 모티브 삼은 이야기와 접근법, 그를 풀어내는 방식까지가 모두 훌륭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그 훌륭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건드려 굳게 잠긴 빗장을 풀어낸다. 그로부터 관객이 제 삶을 새로이 돌아보도록 움직인다.
갓 대학에 진학한 요노스케(코라 켄고 분)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구부정한 자세와 독특하고 순박함이 가득 들어찬 태도가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요즘말로 치면 '너드'라고 할까, 그러나 그 전형과도 적잖이 차이가 있는 요노스케다. 다짜고짜 다가가 말을 거는 엉뚱함에 더해 누구나가 재고 따질 법한 이해를 두지 않는 모습이 요노스케를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어디도 대단한 구석이 없지만 그대로 완전한 사람이랄까. 왠지 모르게 정이 가고, 바라보고 있자면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오르는 친구. 그가 바로 요노스케다.
영화는 요노스케의 대학교 첫 한 해를 보여준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좌충우돌, 그러나 요노스케답게 조금 더 큰 궤적으로 좌충우돌하는 한 해다. 요노스케답게 친구를 사귀고, 요노스케답게 동아리에 가입하며, 요노스케답게 연애하고, 요노스케답게 성장한다. 악의 없이 다가서 말을 걸고 격의 없이 대화한다. 새로움을 마주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고,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선을 다한다. 관계에 충실하며 상대를 아낀다. 말하자면 선으로 가득한 사람, 모나지 않은 친구, 좋은 인간이다.
얼핏 조금 모자라 보이는 요노스케다. 집이 잘 사는 것도, 성적이 좋은 것도, 뚜렷하게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분히 민경훈과 오인되는 코라 켄고가 잘 생기긴 했으나, 그 외모를 두드러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촌스럽기 짝이 없는 패션 센스는 물론이다. 야무지게 제 것을 챙기거나 단련하는 데도 관심이 없어 남이 우러러 볼 무엇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그가 특별해 보이는 건 왜일까.
영화가 요노스케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무척 신선하다. 요노스케의 이야기 사이사이로 그가 사귀었던 이들이 지나간다. 수십 년이 흘러 그들이 기억하는 옛 친구, 요노스케의 1학년이 추억되는 것이다. 이미 그들의 기억에서 요노스케는 잊혀진지 오래다. 오랫동안 관계하지 않아서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한 녀석이다. 그때 그 녀석, 그래 그런 녀석이 있었지. 딱 그 정도의 친구다.
그 정도의 친구가 고작 그 정도의 친구는 아니었음이 차츰 드러난다. 그들 각각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요노스케가 새겨줬던 것이다. 그저 떠올리기만 했을 뿐인데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그때 그 녀석이다. 괴짜였고 순박했고 참 좋은 친구였고 멋진 녀석이었던,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던 요노스케가 그들 모두의 기억 가운데 소환된다.
혼전임신으로 생긴 아이를 책임지고자 바로 삶의 현장으로 내려선 어느 친구에게 요노스케는 손 벌릴 지지대가 되어준다. 스스로가 게이란 사실을 어렵게 말한 또 다른 친구에겐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는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수박 한 조각을 쪼개어 건넨 요노스케의 태도가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잔뜩 긴장했던 친구는 하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여자에겐 매 순간 마음을 다하는 남자다. 고향 바닷가로 건너온 동남아 난민들을 만난 뒤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제 무기력함에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하나하나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일들이지만, 결코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소소한 행동들의 무게를, 의미를 관객으로 하여금 다시 바라보도록 한다.
의사자 이수현을 추모하며
각자에게 매력적인 한 때를 선사해준 친구이자 애인으로써 요노스케가 존재한다. 모든 이의 삶 가운데서, 멀어져가는 기억 어딘가에서 요노스케는 분명히 빛을 발하고 있다. 별의 소멸 뒤에서조차 환한 빛을 전해지는 어두운 밤하늘처럼. 요노스케를 만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녀석을 만난 것만으로도 상당히 이득을 본 기분이야."
"요노스케를 떠올리면 모두가 웃지 않을까?"
"요노스케와 만난 일이 제게 최고의 행복이었다."
말 그대로 요노스케는 모두에게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을 비춘다. 남들은 좀처럼 하지 못하는 선택을, 그것이 대단치는 않을지라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이가 그에게는 친구일 수 있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다른 이들 모두를 대했음을 영화가 보이고 있다. 그 결과로써 그들 각자는 요노스케 없는 곳에서도 건강하게 살아간다. 함께 무기력함을 토로했던 옛 애인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처럼. 어린 부모로 제 삶을 간신히 지탱하던 친구 부부가 그래도 잘 해냈다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처럼.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꼭 그와 같은 선택으로, 요노스케는 그날 선로 앞에 선 것이다.
요노스케는 세키네 시로를 염두에 두고 만든 캐릭터다. 그렇다. 그날 이수현과 함께 선로에 내려선 바로 그 사진가다. 요노스케도 극중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가 사진과 만나고 첫 필름 위에 제 애인이며 주변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담아낸 과정을 <요노스케 이야기>가 보여준다. 요노스케의 작지만, 기꺼이 포착할 만한 성장을 이 영화가 그린다. 요노스케에겐 요노스케만의 드라마가 있었음을 이 영화가 짐작하게 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그 예고된 비극에도 불행하지 않다. 살며 많은 이를 일으키고 스스로의 꿈을 향해 나아간 이가 있었다고, 이 영화가 이야기한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그래서 세키네 시로의 이야기이고, 영화에 박승준이란 이름으로 잠시 언급될 뿐인 의사자 이수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코 당연하지 않은 선을 제 삶 가운데 선명히 내보였던, 아마도 지난 인생 가운데 꾸준히 그러했을 이들의 귀한 이야기다.
▲영화 <요노스케 이야기> 포스터쇼게이트 제인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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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