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성 서사'만큼 모호한 장르가 없다. 여자들이 많이 나오고, 당당한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고 여성 서사인 건 아니다. 반대로 여성 혐오적인 소재가 나오거나 기괴한 여성상을 그린다고 여성 서사가 아니라 단정할 수 없다. 일단 영화 포스터에 여자 배우가 많다면 1차 합격이겠지만, 관객이 기대하는 건 숫자 그 이상의 이야기다.

2025년 한국 영화 기대작 <검은 수녀들>이 지난 24일 개봉했다. 시사회부터 말이 갈렸다.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힘을 합치는 여성 연대 작품이라는 평과 여성 혐오를 답습했다는 평이 혼재했다. 이를 두고 해당 작품이 여성 서사로서 적합하냐는 의문이 오가고 있다. 과연 이 영화의 속삭임에는 어떠한 메시지가 깃들었는가.

예수님도 '미친' 수녀는 처음이시죠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주)NEW

영화는 전초부터 가톨릭계에 깔린 여성 차별을 보여준다. 주인공 '유니아(송혜교)' 수녀는 <검은 사제들> 속 '김범신(김윤식)'의 애제자로 압도적인 구마 실력을 지녔다. 그는 남자 신부들 여럿이 달라붙어도 제압할 수 없는 악령을 홀로 상대한다. 악령에 대한 식견도, 다루는 방법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수준이지만, 정작 구마 의식을 행할 자격이 없다.

수녀는 신부가 아니라 교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니아는 신부의 허락을 받고자 언제나 절박함을 성토한다. '희준(문우진)'의 구마를 허락받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그들의 대조적인 권력 차이가 눈에 띈다. 혼자 애원하는 유니아 수녀, 그리고 여유롭게 의자에 앉은 채 회유하는 신부들. 결국 그는 또 다른 여성에게 손을 뻗는다.

유니아가 찾아간 '미카엘라(전여빈)' 수녀는 비슷한 능력을 지녔으나, 다른 생존 방식을 택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의학적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악령을 부정하는 신부의 제자가 돼 살아가고 있다. 그런 미카엘라에게 유니아는 "우리는 같은 부류"라고 말하며 스승에게 구마 사실을 숨기고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여성 캐릭터들은 공고화한 남성 사회, 또는 남성과의 유대를 저버리고 서로를 택한다. 유니아는 자신이 여자라는 이유로 구마를 금지하는 교구의 도움 대신 미카엘라에 기대어 악령을 내쫓는다. 그리고 미카엘라는 자신이 의존하는 스승 '바오르(이진욱)' 신부의 믿음을 꺾고, 희준을 살리고자 무당을 찾아가고 구마 의식에 뛰어든다.

12형상에 속한 악령을 쫓는 것보다 수녀로서 교구에 인정받는 것이 더 어려울 거라는 대사를 넣을 만큼 <검은 수녀들>은 종교계의 여성 차별을 명확히 서술한다. 더불어 종교계에서 주류가 될 수 없는 수녀, 무당, 한국 사회에서 배척되는 남성 신체장애인이 힘을 합쳐 악령을 물리친다는 점에서 여성 서사의 확장성을 증명한다.

온종일 담배를 피우고, 높으신 신부를 만나도 비꼬기 바쁜 유니아와 기분이 상하면 탕후루를 먹는 미카엘라. 그래도 수녀인데 무당과 같이 있으면 안된다는 말에 유니아는 "수녀나 무당이나 밖에서 보면 미친 X"이라 답한다. 욕을 질겅거리며 한 탕 해치우기 바쁜 수녀들을 마주한 순간, 영화에 얽힌 장르적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체 이들의 이야기가 '여성 서사'가 아니라면 무엇이 그 타이틀에 부합하겠는가.

아이를 밸 수 없는 썩은 자궁? 이게 최선이었을까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주)NEW

그럼에도 <검은 수녀들>은 여성 서사로서 완결성에 아쉬움을 남겼다. 극중 악령은 수녀들을 향해 "암캐", "음기가 돈다", "XX년" 등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뱉는다. 또 자궁암을 앓고 있는 극중 인물에게 "아이를 밸 수 없는 썩은 자궁을 지녔다", "자궁을 북처럼 두들기겠다"고 한다.

영화 공개 이후 관객 사이에서 이 장면을 두고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여성의 신체를 오직 임신과 출산으로 해석하는 차별적인 사회 통념을 연상하게 해서다. 이 때문에 "작품이 여성의 신체를 비하한다", "여성 신체에 대한 혐오적인 인식이 느껴진다"는 지적이 일었다. 무엇보다 여성의 몸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영화의 선택을 두고 평이 엇갈렸다.

권혁재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영화는 여성이 악마를 품는 것에서 나아가 이를 전복시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며 "악마가 여성의 몸과 병을 빗대어 공격하는 것은 성별로 겪는 한계와 억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방식이고, 결국 자신의 방식으로 악마를 무너뜨린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제작 의도와 달리 영화에는 여성 신체에 대한 억압을 전복할 만한 서사적인 힘이 없다. 여성이 도구로 쓰이는 영화적 해법이 과연 여성 혐오를 떨쳐내고 여성의 신체 저항을 주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적절한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여성 서사로서 부적격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작품이 없듯 <검은 수녀들>은 미흡한 결말부를 짊어진 채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선보이기 위한 고행을 치르고 있다. 그 끝에 남는 것이 '쌍욕' 하는 송혜교와 그를 호위하는 전여빈이니, 이 자체만으로 <검은 수녀들>은 한 건 했다.

 영화 <검은 수녀들> 포스터
영화 <검은 수녀들> 포스터(주)NEW

검은수녀들 송혜교 전여빈 DARKNUN 여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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