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3성에서 많이 쓰이는 '챵량'(敞亮)이라는 중국어 단어를 아시나요. '탁 트이다' 내지는 '시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쓰는, 그리고 그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하얼빈에서 8년 만에 동계 아시안 게임이 열립니다. 하얼빈으로의 여정을 시원하게 담겠습니다.[기자말]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차준환이 1월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25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에서 웃음을 보이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차준환이 1월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25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선수단 결단식에서 웃음을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차준환에게는 '피겨 프린스'라는 별명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선수 경력으로 보자면 '왕자'보다 한국 남자 피겨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세계 피겨의 '베테랑'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그런 베테랑 선수이지만 올해 처음 치르는 대회가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이른바 '유니버시아드'로 통하는 세계대학대회였다. 차준환은 지난 1월 열린 동계 세계대학대회에 생애 첫 출전했다. 코로나19, 그리고 일정 난조로 인해 대학 졸업을 앞두고서야 유니버시아드에 처음 나선 차준환은 한국 남자 피겨 34년 만에 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두 번째 대회는 아시안 게임이다.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을 통해 아시아의 겨울 은반 위에 처음으로 서게 되는 차준환에게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지난 1월 24일 만난 차준환은 "선수 생활하면서 한 번은 꼭 겪고 싶었던 무대"라고 힘줘 말했다.

"유니버시아드 메달, 결과보다는 과정 중요하게 여긴 덕분"

차준환에게 유독 바쁜 일이 많았던 이번 시즌이다. 특히 시즌 후반기인 1월부터 3월까지는 국내 대회와 국제 대회가 짧은 간격으로 있다. 1월 초 열린 종합선수권을 시작으로 동계 유니버시아드, 아시안 게임, 사대륙선수권, 그리고 세계선수권까지. 몇 주 간격으로 반복되는 바쁜 일정이다.

차준환은 "시즌 전반기 때 좋았던 부분을 기억하면서, 특히 종합선수권을 기점으로 시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회복된 모습으로 하려고 노력했다"며 "종합선수권과 유니버시아드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던 점을 보면, 두 대회는 나에게 이번 시즌 후반기에 귀중한 경험으로 쓸 수 있는 경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돌아봤다.

"유니버시아드에 나갈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올해였어요. 2년 전에는 일정 때문에, 4년 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출전을 못 했거든요. 유니버시아드는 부상에서 회복해서 한 달 정도 됐을 때 출전했거든요. 사실 결과보다도 과정 자체를 의미 있게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쇼트 프로그램에서 실수가 나왔어요. 평소 연습할 때 실수하는 구간이 아니었는데 그런 실수가 나와서 아쉬웠어요.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프리 프로그램을 뛰었는데, 다행히 3위까지 올라올 수 있었죠. 대학 졸업 전에 유니버시아드에 나가서 좋은 경기도 하고, 좋은 결과도 가져와서 좋았습니다."

올림픽 전 시즌이기에 중요함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차준환은 "중반부 내리막을 겪었던 만큼 컨디션을 끌어올리려 노력하고 있다"면서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시즌과 비교하자면 더욱 성장한 면도 더욱 많다. 여태 경험을 돌아보면 회복이 중요할 때가 많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올 시즌은 잘 보낸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023년, 한국 남자 피겨 사상 첫 세계선수권 메달의 주인공으로 우뚝 올라섰던 차준환 선수.
지난 2023년, 한국 남자 피겨 사상 첫 세계선수권 메달의 주인공으로 우뚝 올라섰던 차준환 선수.박장식

차준환에게는 7일 중국 하얼빈에서 개막하는 동계 아시안 게임도 '첫 출전' 기회다. 2017년에는 주니어 연령이었기에 출전이 어려웠고, 4년 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회 개최가 무산됐다. 차준환은 "선수 생활 하면서 꼭 경험하고 싶었던 대회들을 올해 한 번씩 나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사실 남자 선수, 특히 피겨 선수에게 아시안 게임은 좋은 성적을 거둬 금메달을 따면, 이어지는 올림픽도 온전히 부담 없이 잘 치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외적인 요소를 생각하기보다는 내 상태에 집중해서 잘 치르는 것이 목표"라며 강조했다.

11일 쇼트 프로그램, 13일 프리 프로그램에 출전하게 될 차준환의 목표는 '퍼스널 베스트'(개인 최고점) 갱신. 차준환은 "아시안 게임을 통해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각오를 넌지시 전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어려움도 있지 않을까.

"지치는 일은 조금씩 생길 수밖에 없겠지만, 막상 시즌을 뛰면 힘들다고 생각할 시간조차 없더라고요. 그래서 현재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거 끝나면 다음 대회는 이거구나'라는 생각으로 다음 대회를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차준환도 선수 이전에 사람이기에, 너무 지쳐 번아웃이 올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차준환은 "번아웃도 사실 너무 잘 하고 싶을 때 오는 것"이라며 "어느 정도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무던해지는 시점을 기다렸다"고 했다.

차준환과 동행하는 지현정 코치도 "준환이도 선수인 만큼 '내려놓으면 안 된다'는 욕심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정확하게는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며 덧붙였다.

"스무 살 때 IOC 선수위원 도전 결심"

차준환을 둘러싼 큰 소식도 있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에서 선출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선수위원 선거에 차준환 선수가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 한국 나이 스물다섯, 그의 도전에 체육계는 꽤나 크게 술렁였다.

차준환은 "스무 살 때, 정확히는 2020년 1월에 결심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 스위스에서는 2024 동계 청소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다. 차준환은 유치 연설을 위해 스위스로 출국했다.

"그 당시에 IOC 선수위원이었던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과 함께 유치 활동을 하면서 가졌던 경험이 동기가 됐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마음 한 켠에 생각을 두고 있었거든요. 올림픽은 항상 '성장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이번 동계 올림픽 때 진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신청하게 됐죠."

선수로서, 선수위원으로서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데 어려움은 없을까. 차준환은 "선수와 IOC의 '중간 다리' 역할이니 현역 선수로서 가까운 자리에서 선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며 "선수로 활동하면서 IOC 선수위원을 병행하는 것이 이로운 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겨 스케이팅은 종목 특성 탓에 다른 종목에 비해 선수 생명이 짧고, 이전 올림픽에 출전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으니 도전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한 차준환은 "기회가 왔으니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스물다섯 살은 누군가에겐 '어리다'고, '경험이 없다'고 폄하하기도 쉬운 나이다. 하지만 차준환은 "분명한 장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세는 나이는 어리지만, 어릴 때부터 다양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도리어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농도가 짙고 밀도가 높은 경험을 선수로서도, 다른 모습으로도 많이 겪었습니다.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나이가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이 허락할 때까지 스케이트 탈 것"

 스무살 때의 차준환 선수. 당시 2024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차준환은 5년 뒤 IOC 선수위원 도전에 나서게 됐다.
스무살 때의 차준환 선수. 당시 2024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차준환은 5년 뒤 IOC 선수위원 도전에 나서게 됐다.박장식

15년이 훌쩍 넘은 선수 생활을 거친 차준환 선수. 개인에게 도전이야 끝이 없겠지만, '선수'로서는 지금까지 뛰었던 기간보다 남은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차준환은 "은퇴 시기는 정하지 않았다"며 "몸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스케이트를 타려 한다"고 다짐했다.

"부상을 안고 있는 부위가 스케이트에 닿을 수밖에 없는 부위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해요. 쉬어가는 타이밍도 있으면 좋겠지만... 올림픽 시즌도 있기 때문에, 지금은 휴식을 이야기하기에는 쉽지는 않은 때입니다. 더 긴 선수 생활을 위해 조금이라도 휴식 기간을 가져야 한다면, 아마 올림픽 이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후회 없이 타는 것을 항상 목표로 했어요. 안무나 연기를 창작하는 모습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목표를 잘 이어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선수로서 남은 시간을 생각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선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차준환에게 끝으로 '현재'에 대해 물었다. 차준환은 "지금 당장 아시안 게임도 있고, 올 시즌 남은 경기들이 각자의 의미로 중요하다"며 "이 대회들에 집중한 뒤 다음 시즌, 올림픽 시즌을 위해 잘 준비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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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환 피겨스케이팅 남자피겨 2025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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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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