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독의 전작만 놓고 보면 액션 혹은 B급 장르물에 장기가 있어 보였다. 그런 그가 오컬트물, 그것도 10년 전 제법 흥행한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잇는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에 영화팬들 사이에서도 궁금증이 크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권혁재 감독의 <검은 수녀들>은 장르 요소보단 드라마성이 좀 더 강조된 모양새였다. 이에 다양한 평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또한 <검은 사제들>의 팬이었다며 스핀오프(해당 작품이 그린 이야기보다 앞선 사건을 다룬 작품) 격인 <검은 수녀들>에 꽤 진지하게 임했음을 강조했다.

배우들이 궁금해했던 것들

 영화 <검은 수녀들>을 연출한 권혁재 감독.
영화 <검은 수녀들>을 연출한 권혁재 감독.NEW

"제작사에서 오래 기획한 프로젝트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 스핀오프라는데 그 세계관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했다. 그러다 2023년 초에 제안을 받았는데 수녀들이 주인공이더라. 이렇게 신선하게 풀 수도 있구나 싶었다. 우선 여성들이 연대한다는 설정이 좋았다.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거나 승계하는 두 수녀들의 이야기가 너무 신선했다. 거기에 이미 송혜교씨가 출연을 긍정적으로 논의하던 때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부담도 컸다.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님이 그린 세계관을 이어받는다는 거잖나. 거기에 더해 <파묘>가 개봉하면서 장재현 감독님의 세계관이 확장됐다. 그리고 제 전작과도 결이 좀 다른 오컬트라 제가 전문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예상은 했다."

내적, 외적 부담감을 품으면서도 권혁재 감독은 본질에 집중하려 했다고 말했다. "배우들도 처음 만나는 이들이었고, 촬영장 스태프들도 처음 손발을 맞춰보는 분들이었다"며 권 감독은 "제작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연대 과정이었다"고 묘사했다. 감독이 선택한 방식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관철하는 게 아닌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배우들 의견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유니아 수녀 송혜교씨는 물론, 미카엘라 전여빈씨, 그리고 악마가 깃든 부마자인 문우진씨 등. 특히 송혜교씨는 기도문으로 악령과 싸우는 장면에서 많이 저와 대화했다. 구마의식에서 절실함도 묻어나야 하고, 동시에 기도문도 근엄하게 해야 했거든. 보면 음성이나 말 한마디에 신뢰감이 있더라. 배우가 해석을 잘한 것도 있지만, 특유의 그 느낌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미카엘라는 (귀신을 본다는) 정체성의 혼란도 있고, 내면의 고민이 있는 캐릭턴데 전여빈씨가 참 잘 표현한 것 같다. 카메라에 잡히는 것 너머까지 이미지적으로 고민하는 것 같더라. 송혜교 배우 대사에 반응하는 모습들이 참 묘했다. 걷는 모습, 뛰는 모습들을 배우가 다 하나하나 준비해 오셨다. 유니아가 힘들 때 흡연을 하듯 미카엘라는 단 것을 먹잖나. 그런 것도 배우가 잘 표현했다."

"K 오컬트물 보이고 싶었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주)NEW

<검은 수녀들>이 전작과 차별되는 지점은 카톨릭 세계관에 근거한 구마 의식만 치르는 게 아닌 무당과 타로 카드 등 여러 민속 신앙 요소들이 등장하는 데에 있다. 유니아와 함께 수녀였다가 무당으로 전향한 효원(김국희)과 그의 제자는 12형상 악령을 물리치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다.

"처음 받았던 시나리오에 그런 설정들이 있어서 최대한 충실하려 노력했다. 이것 또한 연대하는 요소로 봤다. 어떤 종교 의식을 하든 아이 몸에 깃든 악령을 물리치고 반드시 아이를 살린다는 목표로 뭉친 셈이지. 가장 중요한 건 악령을 이기는 것보다 아이를 살리는 것이었다. 그 지점에 어떻게 마음을 담고 진심을 담는지 보이기 위한 게 그런 다양한 민속 신앙 요소였다.

한편으론 한국만의 'K 오컬트'적인 면을 보이고 싶기도 했다. 유니아가 미카엘라에게 벤치에 앉아서 자기의 본명을 얘기하는 장면이 있잖나. 구마의 핵심은 악마에게 자기 이름을 자백하게 하는 건데, 유니아 또한 미카엘라에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냄으로써 본격적인 구마 연대가 시작된다."

이 맥락에서 권혁재 감독은 <검은 수녀들>을 정통 오컬트물이라기 보단 드라마에 무게 중심을 둔 장르물이라고 정의했다. 물론 실제로 무당들의 굿을 조사하고 시연하거나 배우들은 수녀들을 직접 만나 여러 자문을 구했다. 고증은 제법 철저하게 하면서도 거기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영화 <검은 수녀들>을 연출한 권혁재 감독.
영화 <검은 수녀들>을 연출한 권혁재 감독.NEW

"가장 중요한 건 휴머니즘이라 생각했다. 이게 액션 영화처럼 화려한 볼거리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인물에 집중해야 했다. 마지막 구마 의식에 모든 게 드러나는 만큼 거기선 여러 요소를 담으려 했지. 다만 수녀들이 진행하는 구마 의식의 특징이 있었으면 했다. 보통 구마 의식 때 포박하면 부마자가 몸을 막 뒤트니까 손목 발목 등이 다 까지잖나. 자세히 보시면 포박당한 부위에 거즈를 덧댔다. 악마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그만큼 살려야 한다는 데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작은 차이지만 그게 영화 곳곳에서 쌓이면 유니아와 미카엘라만의 배려가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사실 수녀가 구마를 한다는 건 제가 여러 오컬트물을 봤지만 참고할 자료가 거의 없더라. 그래서 아예 다르게 가자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화면비다. 보통은 1.85대1로 와이드로 찍곤 하는데 우리 영화는 1.66대1로 좁게 찍었다. 인물의 감정을 더 잘 담고, 묘한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 김국희 배우 등 굿을 해야 하는 배우들은 촬영 전 2개월 간 연습하기도 했다. 영화에 나오는 게 넋 건지기 굿인데 각 단계가 있거든. 경문을 외우고 춤추는 것도 고증에 맞춰서 준비했다.

소품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타로 카드는 고전적 느낌이 중요해서 수많은 종류 중에 그것을 택한 것이다. 또한 수녀 복장과 신발 하나까지 나름 섬세하게 준비했다. 자세히 보면 미카엘라와 유니아의 옷길이가 다르다. 그리고 미카엘라는 영화 중반과 후반에 입는 옷이 좀 다르다. 인물의 감정 변화에 맞게 바꾼 것이다."

영화가 공식 개봉하면 분명 관객들이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권혁재 감독은 오컬트물 팬들의 비판이나 지적 또한 감수한다는 자세였다. 다만, 캐릭터들의 진심을 담으려 했다며 <검은 수녀들>로 다양한 대화가 이어지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검은수녀들 권혁재 송혜교 전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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