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한부 윤한봉의 치열했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씨네마 달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경자 감독이 제12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광주 5.18 민중항쟁 마지막 수배자 합수(合水) 윤한봉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 영화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지난 제 13회 광주독립영화제 폐막작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광주 5·18민중항쟁의 마지막 수배자는 윤한봉이다. 그의 삶은 미국의 한인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미국의 실체에 대한 깨달음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묻는다.
합수 윤한봉은 1980년 5.18 민주화 항쟁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수배당한다. 그는 잡히면 사형을 당할 것이며, 주위 많은 사람이 희생될 거라는 주변의 충고에 1981년 4월 29일 화물선을 타고 35일간 밀항한다.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의 한국인 정치 망명자 1호가 된다.
작품 제목의 비밀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라는 작품의 제목은 그의 망명을 도운 목사와 소통할 암호였다. 감독은 그 서정성에 매료되어 작품 제목으로 삼았다.
합수 윤한봉은 망명 후 미국 전역에 광주 5·18의 실상과 그 배후를 알린다. 그는 '재미한국청년연합'(한청련)과 '민족학교'를 세워 반전, 반핵, 비폭력 평화운동을 펼친다. 한청련은 풍물을 치며 거리에 나가 광주 5.18의 실상과 그 배후를 알린다. 그는 폭력의 피해자로서 반전. 반핵, 비폭력 평화 운동을 펼치며 억압받는 타민족과 연대 활동을 펼친다.
1989년 윤한봉은 백두산에서 출발하는 국제평화대행진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설득해 마침내 실행에 옮긴다. 황석영 작가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지만 한국에서 임수경이 한청련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 대회가 끝나고 문규현 신부의 팔을 잡고 나란히 판문점을 넘었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행한 윤한봉은 정작 '북'을 방문하면 망명이 취소돼 북한을 방문할 수 없었다. 그는 1981년 밀항 후 87년 4월에야 정치 망명 허가를 받았는데,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여행증명서로는 쿠바·베트남·북한을 갈 수 없었다.
그는 가슴을 울리는 언변으로 미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진보적 한인을 모았다.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활동할 구심점이 된 것이다. 모임 거점과 민족의식을 일깨울 배움의 터가 된 민족학교가 미국 곳곳에 생겨나기도 했다.
조국이 그리울 때면 산타모니카 해변에 가서 망부석처럼 바다에 앉아 있던 그는 5.18 민주화 항쟁 희생자들과 '같이 죽지 못해서...'라는 부채 의식을 지니고 살았다. 그렇기에 편안한 잠자리조차 취하지 않았다.
윤한봉은 1993년 5.18 수배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수배가 해제돼 합법적으로 귀국했다. 귀국 이후 5.18기념재단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민족미래연구 소장, 들불야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았지만 본인의 피해 보상은 거부했다. 2007년 폐기종으로 폐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세상을 떠났다.
김경자 감독은 합수 윤한봉의 미국에서의 망명 생활을 한청련 조직, 민족학교, 국제평화대행진을 중심으로 담았다. 부채 의식 속에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합수 윤한봉, 그는 조국 남과 북의 산하에 봄이면 온 산천 곳곳을 붉게 물들이는'진달래꽃' 같은 붉은 심장으로 조국 온 산하를 껴안고 살다 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