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국내에는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 또는 독일 종교개혁 신학자 마르틴 루터의 어록으로 소개된 (하지만 실은 출처 불명이라는) 유명한 명언이다. 어릴 적엔 그저 제법 운치가 있다고 여겼지만 그리 체감하진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얼마나 어려운 결단이자 대단한 평정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과연 종말이 임박했을 때 이렇게 자기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수많은 영화에서 지구의 종말을 다룬다. 영화 속에서 대개 사람들은 종말을 믿지 않거나, 실제로 종말이 다가오자 대혼란에 빠지는 게 전형적인 양상이다. 소수는 필사적으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거나 희생한다. 행여나 종말을 막을 수 없다면 어떻게든 소수라도 구하고자 궁리를 짜낸다. 인간이란 종의 창작물 속성상 꿈도 희망도 없는 절멸은 대개 선택지에 속하지 않는다. 만드는 것도, 보는 것도 전부 인간이기에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까닭이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예외는 있게 마련. 내놓는 작품마다 격렬한 찬반 논란을 일으키는 라스 폰 트리에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멜랑콜리아>는 지구의 종말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구현한 매우 드문 사례다.

두 파산: 완벽하던 결혼식과 지구의 운명이 벼랑 끝에 서다

"멜랑콜리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멜랑콜리아"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엣나인필름

촉망받는 광고업계 유망주 '저스틴'은 결혼을 예정한 이라면 누구라도 꿈꿀법한 완벽한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근사한 신랑, 주변 지인들의 선망, 그림 같은 결혼예식이 저스틴을 기다린다. 오랜만에 그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가족도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이만하면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의 분기점 이벤트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언니 '클레어'와 형부 '존'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정말 근사한 신혼 파티가 저스틴과 신랑 '마이클'을 위해 열린다. 파티는 과장 조금 보태면 어지간한 귀족 영애 결혼식을 연상할 만큼 근사하다.

그런데 정작 오늘 하루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신부 '저스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순백의 드레스로 곱게 차려입은 저스틴은 물론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이지만, 신부의 표정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거듭해서 정상적인 예식 절차를 지연시키고, 이벤트 담당자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물론 이것저것 이해될 구석도 충분히 엿보인다.

오랜만에 딸의 경사를 축하하러 모였다지만, 저스틴의 부모는 결혼에 무슨 불만이라도 쌓였는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로 일관한다. 아빠 '덱스터'는 애인을 둘이나 데려와 신부를 난처하게 만든다. 엄마 '가비'는 그런 남편의 축하연설 도중에 뒤늦게 나타나 짜증을 부린다. 직장 상사인 '잭'은 축하해도 모자란 자리에서 계속 업무로 타박을 준다. 이정도면 속이 부글부글 끓을 만하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저스틴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도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도무지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 갑자기 숨어버린다거나 하는 건 애교에 불과하다. 급기야 자상한 신랑 마이클조차 넌더리를 내며 질색할 정도로 기행을 저질러 행사는 파행으로 치닫고야 만다. 신경쇠약 상태인 저스틴은 일단 한동안 언니의 저택에서 보살핌을 받기로 한다. 클레어의 어린 아들과 놀아주며 저스틴은 조금씩 안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즈넉한 저택에서의 시간은 얼마 이어지지 않는다. 지구의 몇 배는 되는 외계의 거대 행성이 지구로 다가오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근접하면 지구와 충돌할 위기다. 어쩌면 지구의 종말을 맞게 할 이 파멸의 사자에 역설적으로 '멜랑콜리아(우울증)'이란 이름이 붙는다. 세계는 대혼란에 빠지고, 공포에 물든 사람들에 의해 사건 사고가 빗발친다. 한적한 저택은 겉으로는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불안은 어쩔 도리가 없다. 과연 세상은 이대로 파국을 피하지 못하는 걸까?

피할 수 없는 지구 종말 앞에 선 무력한 인간 군상극

"멜랑콜리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멜랑콜리아"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엣나인필름

<멜랑콜리아>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장엄한 비극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화면에 구현하듯 인상적인 도입부로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무려 8분에 걸쳐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선율과 함께 사실상 영화의 줄거리를 통째로 압축한 것과 같은 이미지의 향연이 펼쳐진다. 심지어 에누리 없이 영화의 결말까지 전부 다 보여주기에, 닳고 닳은 할리우드 드라마에 길들어진 관객들이 품을 법한 일말의 희망, 그래도 최소한의 씨앗은 남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즉 이 영화는 지구의 불가역적 파국을 시작부터 예고해버린다.

결론을 다 아는 영화를 관객에게 보라고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배짱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감독은 이 영화에서 두 개의 '멜랑콜리아(우울증)'를 제시하고, 현대인에게 갈수록 확산하는 '멜랑콜리아'가 물리적 파멸을 종결하는 외계의 '멜랑콜리아(파괴자 행성)'를 예고한다. 서로 형태는 전혀 다르지만, 개인/전체의 파국을 유도하는 회피할 수 없는 중압감이 이중으로 심리적 저항을 옥죄어든다.

저스틴이 결혼식 내내 보이던 히스테릭한 불안증,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드러내는 순전한 악의를 지켜보고 있자면 정말 폭탄이라도 터져 다 날려버리고픈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세상 따위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마음속으로 외칠 만한 심정을 관객 역시 느끼게 될 테다. 자상한 신랑도 결국은 타인에 불과할 뿐, 그 누구도 저스틴의 속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전반부에는 배려심 깊은 언니 클레어가 정서불안에 쫓긴 동생을 보살피는 구도다. 하지만 침착하고 사려 있던 클레어의 평정심은 그가 어떻게든 지키고 싶던 가족과 순진무구한 어린 아들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좌절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하게 허물어진다. 굳건한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자포자기한 클레어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어떻게든 가족을 안심시키기 위해 남편 존이 천체망원경 앞에서 불침번을 서듯 분투하지만, 그 역시 인간이 어쩔 도리가 없는 우주적 재앙 앞에선 다른 도리가 없다.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상식인에 가깝던 이들 부부의 추락을 지켜보기란 관객에게 전반부의 이해 불가한 저스틴의 폭주보다 몇 배는 더 심리적 타격으로 다가올 테다. 충분히 그들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이입되기에 '나라면 저들보다 잘할 수 있을까?' 당연히 상상할 수밖에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고대의 비극이 뿜어내던 카타르시스를 현대에 부활하다

"멜랑콜리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멜랑콜리아"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엣나인필름

하지만 저스틴과 클레어, 두 자매의 심리상태가 역전되면서 기묘한 풍경이 화면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예정된 파국 앞에서 저스틴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상심을 회복하고 공포에 떠는 언니와 피어나지도 못한 채 막연히 공포에 떠는 조카를 보살핀다. 세상을 달관한 현자의 모습을 선뵈는 저스틴의 변화가 급작스럽게 보이지만, 이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지옥을 맛본 그로선 오히려 차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특별히 엄청난 수행을 쌓은 철인이거나 남들은 모르는 비밀의 구원책을 움켜쥔 게 아니다. 이미 저스틴이 꿈꾸며 성취하고자 노력했던 미래는 산산조각이 난 상태다. 잃을 게 없는 그로선 딱히 세상의 끝이라 해서 놀라울 게 없는 셈이다.

클레어가 평정을 잃으며 끝없이 추락하는 경과는 역설적으로 이보다 더 인간적일 수 없다.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가꾸고 남을 돌보며 소박한 행복과 선의를 믿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믿음이 허물어질 때 상실감은 메울 수 없는 것이다. 그가 흐느끼고 억울해하는 과정은 저스틴의 결혼식 기행과 대구를 선보이며 특별한 개인의 위기가 인간 전체의 위기로 치닫는 확장성을 극적으로 구현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드러내는 가장 순수한 형태를 화면에 장엄한 종말의 묵시록으로 구현하는 과업에 도전한다. 신이 제멋대로 결정한 운명에 아무리 저항해도 예정된 파국을 피할 수 없던 고대 그리스 비극, 중세 비운의 연인들 전승을 바탕으로 한 바그너의 비장한 오페라를 현대 시각예술로 오롯이 계승하며 이를 누리는 관객이 일상에서 벗어나 감정의 정화를 맞이하도록 안내한다. 상투적으로 남발하던 지구 종말과 사과나무 우화가 그렇게 마음을 울리며 귀환한다.

지구 종말 장르의 클래식, 호주 작가 네빌 슈트의 [해변에서]와 원작을 각색한 영화가 도달한 어떤 감성에 필적하는 성취다. 동서 냉전으로 인해 북반구가 핵전쟁으로 동반 멸망하고 전쟁을 피한 남반구에서 몇 달 후 방사능 구름이 다가온다. 자신들은 아무 책임이 없는데 말이다. 겉으론 마치 달관한 것처럼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평온한 일상을 보내지만, 세계의 종언은 피할 수 없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게 예고된 종말을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속 분노와 체념은 소리 없이 전달되며 깊은 슬픔이 첩첩이 쌓인다. 바로 그런 측량 불가한 것 같은 질감이 <멜랑콜리아>에서 포착된다.

순도 100% 온전히 추출한, 너무나 인간적인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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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엣나인필름

인간이란 종이 스스로 최후를 마치 남의 일처럼 3자 시각으로 온전히 관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인류가 저질러 온 죄악의 역사와 가면 아래 감춘 위선을 마치 엑스레이로 투시하듯 영화에 담아온 라스 폰 트리에는 거의 그 경지에 근접한 것 같은 과업을 <멜랑콜리아>에서 펼쳐낸다.

감독의 비전 안에서 본인도 오랜 기간 우울증에 시달렸던 커스틴 던스트는 거의 빙의 수준으로 '저스틴'을 구현한다. '클레어' 역 샤를로트 갱스부르와의 심리 대비는 그야말로 용호상박이다. 도입부에 삽입된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처럼 유럽 문화의 풍성한 유산을 적극 활용한 시각적 장치도 분위기를 척척 채운다.

<안티크라이스트>나 <님포매니악>처럼 제목만 떠올려도 악명 자자한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본 작품의 수위는 그리 '센' 편이 아니지만, 주인공들 심정에 이입되면, 가랑비에 옷 젖듯 침투한 냉기에 전율하고 말 테다. 그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맞이할 수밖에.

<작품정보>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덴마크|SF, 스릴러, 드라마
2025.01.28. (재)개봉|136분|15세 관람가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커스틴 던스트, 샤를로트 갱스부르
수입/배급 ㈜엣나인필름

64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멜랑콜리아 라스폰트리에감독 커스틴던스트 샤를로트갱스부르 키퍼서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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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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