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도 길다. 법정 공휴일 외에 옵션으로 더해진 휴일에 주말까지. 물론 매서운 추위를 뚫고 다시 광장에 서야 하는 쉽지 않은 시절이기도 하지만 이 길고 긴 연휴에 머리도, 마음도 잠시 쉬어가면 어떨까.
'역지사지'라고 남의 나라 정치 얘기 <외교관>을 권해본다. 넷플릭스 시리즈로 2023년 시즌 1(8부작)에 이어 시즌 2( 6부작)가 공개되어 전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keep your friends close, keep your enemies closer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둬라)
<외교관>은 위 문장이 박힌 포스터와 함께 서막을 연다. 하지만 누가 벗이고, 누가 적인지 모른다면? 드라마 속 여주인공 케이트 와일러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
미국 외교관인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대사로 임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공격으로 영국 항공모함이 공격을 받고 병사 41명이 사망하고 창졸 간에 영국 대사로 발령이 난 그녀가 이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심지어 미 대통령이 와서 그녀에게 남편의 스캔들로 물러나게 될 부통령의 후임을 제의하자 '멘붕'이다. 현장 전문가로서 자부심이 있던 그녀에게 강대국들의 정쟁이나 정권의 얼굴 마담 같은 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말이다.
우선 케이트의 발목을 잡는 건 그녀의 대사직이다. 임시 대사로서 1주일 내에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건 항공 모함 공격과 관련한 영국의 분위기이다. 추도식에 나선 영국 수상은 미온적인 대처로 유가족 반발에 부딪히자, 이를 모면하고자 이란을 끌어들인다.
누구도 나의 편이 아니라면
▲외교관
넷플릭스
<외교관> 시즌 1, 2를 관통하는 사건은 영국 항공모함이 공격 받은 사건이다. 시리즈는 마치 추리물처럼 과연 누가 범인일까를 추적하며 스토리를 끌어간다. 그 첫 타깃이 된 것이 서구 국가들의 공적인 '이란'이다. 심지어 사고 해역 근처에서 이란 선박의 사진이 찍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중동 전문가였던 캐서린은 미국의 각종 제재 때문에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이란이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할 리 없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영국과 미국의 이란 공격 및 제재를 막으려 애쓴다.
영국 수상이건 미 대통령이건 저마다 자신만의 위신을 위해 마치 짚을 이고 불 속에 뛰어들듯 상황을 악화시킨다. 여기서 케이트의 진가가 드러난다. 비록 초짜 영국 대사의 처지이지만 그간 중동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 애쓴다.
다행히 이란 외무차관 샤힌과 만나게 되고 이란은 케이트에게 자신들이 배후가 아님을 전달한다. 케이트가 영국 외무장관과 이란 대사의 은밀한 회담을 마련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 자리에 참석하는 장면은 마치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흥미롭다.
새롭게 등장한 진범, 케이트의 고군분투
▲외교관
넷플릭스
▲외교관넷플릭스
그런데 아뿔사. 그 자리에서 이란 대사는 영국 항공 모함 공격 작전을 러시아 용병 로만 레코프가 이끌었다고 알린다. 이란을 피했는데 이번엔 러시아라니. 드라마는 이란과 러시아를 공격의 주범으로 부각시키면서, 들썩이는 미국 그리고 케이트의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러시아를 공격하겠다는 수상에게 자신만만하게 한 술 더 떠서 공격할 만한 러시아 지역을 제시하는 케이트. 항상 여자인 자신을 낮잡아 보던 영국 수상을 움찔하게 만드는 그 장면은 어느덧 배포 있는 외교관으로 성장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명장면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케이트의 반대에도 결국 러시아 용병 살해 작전을 실시하고, 그 와중에 측근의 차 폭발 사고까지 발생하며 사건의 향방은 외려 영국 수상을 향한다. 이란으로 러시아로, 그리고 영국 수상으로 널뛰는 범인의 정체, 그리고 그로 인한 정치적 격변의 현장에서 케이트는 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으로 성장해 간다(하지만 드라마는 여기서 또 한 번 반전을 통해 리미티드 시리즈의 떡밥을 던진다. 바로 미국의 부통령이 '진범'이었던 것).
1, 2 시리즈 내내 범인을 밝히기 위해 발 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녔던 케이트가 이제 다시 신임 대통령이 될 '범인', 부통령과 마주한다. 서구 세계의 안보를 위해서 라면 영국 병사 수 십 명의 목숨 쯤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죽이는 대통령의 등장, 왠지 기시감이 든다. 케이트의 앞날을 응원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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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꿈꾸는 그녀, 이런 리더십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