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영광이 있었던 송혜교를 극장 스크린으로 만나게 된다. 그것도 그간 익숙했던 멜로가 아닌 오컬트 장르물에서다. 영화 <검은 수녀들>에서 구마 의식을 벌이는 수녀 유니아로 분한 송혜교를 두고 예비 관객들의 궁금증이 커질 법하다.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그 또한 자신의 새로운 얼굴이 궁금했다고 고백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근 모처에서 만난 송혜교는 <검은 수녀들>에 출연한 계기부터 전했다. 2015년 544만 관객을 동원한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격인 해당 이야기, 그것도 구마 의식을 행하는 진취적인 수녀 유니아를 송혜교가 맡았다는 건 나름 그 입장에선 파격이었다. 멜로 연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기에 장르물, 그것도 오컬트물의 주인공이라는 게 생경하게 다가오기 충분해 보인다.
두 여성의 연대
▲영화 <검은 수녀들>에서 유니아 수녀를 연기한 배우 송혜교.
UAA
"일단 서로 다른 신념이 있는 두 여성이 생각을 공유하며 연대하게 되고, 한 아이를 구하려 움직인다는 게 끌렸다. 살면서 경험해본 적 없는 구마라는 설정에서 제 새로운 표정이나 모습이 어떨지 기대감과 궁금증이 있었다. 오컬트 장르라는 특징도 있지만 여자들의 연대, 특히나 힘없고 여린 두 여성이 한 생명을 살린다는 목적 하나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 전까진 멜로연기를 주로 했잖나.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라도 표현에 한계는 있었다. 언제부턴가 제 모습이 지겹더라. 하물며 보시는 분은 어떨까. 이러다간 제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지시겠다 싶었을 때 만난 작품이 <더 글로리>였고, 이 작품이었다. 상대 배우에 따라 제 연기가 다채롭게 변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이 작품에서도 전여빈씨와 많은 얘길 해가면서 준비했다. 나라면 가족도 아닌 한 아이를 위해 그렇께까지 할 수 있나 싶더라. 전 못하겠지만 유니아는 그럴 수 있는 인물이라 더 끌렸다."
아무래도 <검은 사제들>의 이전 이야길 다루다 보니 해당 영화와 비교는 불가피해 보인다. 송혜교 또한 개봉 당시 영화를 봤다며,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도 다시 찾아본 사연을 전했다.
"그 세계관을 잇고 있어서 봤는데 어떤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단 영화 속 김범신 신부(김윤석)가 제 스승으로 설정돼 있잖나. 김윤석 선배의 모습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촬영하면서는 <검은 사제들>을 떠올리며 하진 않았다. 오컬트 요소도 있지만, 미카엘라와의 관계성이 핵심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 <검은 수녀들>의 한 장면.
NEW
특히나 데뷔 이후 처음으로 장르적 특징이 강한 오컬트물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배우 개인으로 나름 섬세하게 준비한 과정이 있었다. 유니아라는 인물은 동방정교회나 카톨릭에서 여성 최초로 사도로 인정받은 성인이다. 실제로 카톨릭 신자기도 한 송혜교는 촬영 전까지 친분이 있는 수녀들을 만나 여러 이야길 주고받았다고 한다.
"사실 어머니가 천주굔데 어릴 땐 아무것도 안 믿다가 이제야 성당에 다니고 있다(웃음). 기도할 때 마음이 편해지더라. 영화 속 수녀와 실제 수녀님들이 많이 달라서 나름 다행이라 생각했다. 영화적 요소가 꽤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알고 지내는 수녀님들을 뵙고 하루 일과 얘기도 듣고, 기도하는 법도 배웠다. 우리 영화를 많이 궁금해하셔서 저도 전해드렸는데 구마 의식을 재밌어 하시더라. 실제론 카톨릭 교리에 따라 수녀는 구마를 할 수 없기에 실제와 영화는 다르니까."
극중 여러 차례 등장하는 흡연 장면도 촬영 6개월 전부터 실제로 흡연하며 만들어 낸 연기였다. 흡연자는 아니지만 가짜처럼 보이기 싫어서 그 과정을 거쳤다고 송혜교는 지난 언론시사회 때 말한 바 있다.
"어느덧 고참 선배? 현장에선 선배 아닌 동료"
그의 말대로 <검은 수녀들>은 연대와 인물의 관계성에 집중한 결과물이다. <검은 사제들> 김범신 신부와 최준호 부제(강동원)의 관계처럼, 유니아와 미카엘라의 관계 변화가 핵심이기도 하다. 실제로 송혜교는 전여빈 출연작들을 챙겨보다가 이번 영화에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미카엘라 수녀는 귀신 보는 능력이 있지만,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현대 의술에 매진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다가 유니아를 만나며 결국 희준(문우진)이라는 소년 안에 깃든 악마를 내쫓는 데 힘을 보탠다.
"여빈씨와는 호흡이 너무 좋았다. 여빈씨가 말 수가 없다고들 알고 계시는데 현장에서 엄청 서로 말을 많이 했다(웃음). '그 장면에선 왜 그랬을까요' 라고 말을 꺼내주니 영화 관련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던 것 같다. 같이 있으면 힐링이 되는 친구였다. 전 마음 속 감정을 잘 표현 못하는데 엄청 표현도 잘하더라. 그런 모습을 배우고 싶다.
문우진씨도 너무 멋있었다. 처음 얼굴 봤을 땐 앳돼 보여서 부마자 연길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대본리딩 때부터 느낌이 신선하더라. 촬영장서 짜릿한 순간이 많았다. 전 모범생처럼 반듯한 이미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악령이 쓰인 장면에서 여러 애드리브를 하는 걸 보며 많이 놀랐다. '와, 정말 잘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영화 <검은 수녀들>에서 유니아 수녀를 연기한 배우 송혜교.UAA
1996년 당시 중학교 3학년 때 데뷔한 송혜교는 구력만 놓고 보면 근 30년이다. 이젠 현장에서 선배격이며 그만큼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감 또한 있다. <검은 수녀들>에 특별출연한 허준호와도 드라마 <올인> 이후 21년 만에 만났다고 하니 그의 연기 경력이 새삼 놀랍다. 송혜교는 "여전히 후배분들이 선배라 부르는 게 어색하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어릴 때 데뷔해 그때 기억이 강렬해서 그런 것 같다. 선배님들은 어려웠고, 감독님들은 무서워서 눈치를 많이 봤거든. 어느새 현장에선 스태프분들도 배우들도 절 선배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아졌다. 이젠 받아들이고 있는데 <더 글로리> 출연했던 김건우씨가 유독 깍듯하게 대한다(웃음). 사실 <더 글로리> 땐 제 역할상 현장에선 밥 한 끼 제대로 같이 못 먹었고, 다 끝난 이후에 배우들과 친해진 경우다. 여빈씨랑은 이미 촬영장에서 만나기 전부터 서로 호감이었고. 허준호 선배님은 절 보시더니 어린 애기였는데 많이 컸다고 하시더라(웃음)."
이어 송혜교는 "현장에서 같이 연기할 땐 동료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선배라 불리는 건 촬영장 밖에서 작품과 배우들에 도움되는 여건을 만들어주라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스스로 확장한 선후배 개념을 덧붙였다.
자제해왔던 예능 프로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였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비롯, 가수 강민경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함께 브이로그를 찍는 등 다양한 채널에서 대중과 접점을 만들었다.
"일단 작품 홍보 때문이지. 그간 홍보 방법이 많이 바뀌었더라. 제가 신비주의를 하려고 일부러 예능에 안 나간 게 아니라 홍보상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보이는 일이 많아야 다양한 연령대에 친근감 있게 다가가기 좋다더라. <유퀴즈>에 나가니 많은 어르신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고, 유튜브를 나가니 젊은분들이 많이 알아봐 주시더라. 내 개인 채널? 귀차니즘이 강해서 못할 것 같다(웃음). 강민경씨는 혼자 촬영도 하고 편집도 하는데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할 일 같다."
진심을 다해 홍보 과정에 임하는 중에도 차기작 촬영이 한창이다. 노희경 작가와 세 번째로 만나게 된 송혜교는 드라마 <천천히 강렬하게>에서 배우 공유와 함께 등장한다. 이제 막 촬영 시작한 지 2주째라고 알린 그는 <검은 수녀들> 속 유니아의 강한 신념처럼 배우로서 품고 있는 신념을 묻는 기자 말에 이처럼 답했다.
"솔직히 말해 큰 신념은 없다.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미래도 관심 없고, 전 현재가 중요하다. 지금 잘해야 미래가 아름다울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검은 수녀들>도 제가 다시 연기할 수는 없다. 대중의 선택만 남았으니 홍보에 집중하고, 새로운 작품을 생각하며 가는 거지. 노희경 작가님 작품이 이번에 새롭게 다가왔다. 더이상 동화같은 사랑 이야긴 전 못할 것이다. 제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실 것도 아닌 것 같고. 후배 배우들이 더 잘할 것이다. 전 현실적인 사랑이야기? 하게 된다면 그게 맞을 것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검은 수녀들' 송혜교 "두 여성의 연대에 끌렸다, 예능 출연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