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사진EMK뮤지컬컴퍼니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가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이전에 가수 박효신이 출연한 것으로도 유명하고, 특히 박효신이 넘버 '그 눈을 떠'를 부르는 영상은 유튜브에서 100만 조회수를 넘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웃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는데, 그래서인지 <레미제라블>에서 드러나는 민중의 팍팍한 삶이 <웃는 남자>에서도 비슷한 문체로 그려진다. <웃는 남자>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면 주인공 '그윈플렌'이 빈자의 삶과 부자의 삶을 동시에 경험하며 새로운 세상을 노래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배경은 17세기 영국, '콤프라치코스'라는 귀족들의 범죄 조직은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기형으로 만들어 오락거리로 삼았다. 그윈플렌은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입이 찢기며 '웃는 남자'로 살게 됐다. 그렇게 오락거리로 소비되다 버려진 그윈플렌은 유랑극단을 운영하는 '우르수스'의 손에 키워진다.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던 그윈플렌은 동시에 찢긴 입을 극단의 공연 소재로 활용한다. 그러다 그윈플렌이 본래 귀족 가문의 적법한 후계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렇게 귀족이 된 그윈플렌은 자신이 거리에서 겪은 문제들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이처럼 <웃는 남자>는 빈자의 삶과 부자의 삶을 함께 보여주는 동시에 그윈플렌으로 하여금 두 삶을 모두 체험하게 하며, 그윈플렌의 입을 빌려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노래한다.

정치가의 자질을 고민하다

귀족이 된 그윈플렌은 상원 의원의 자격을 함께 얻는다. 의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던 날, 그윈플렌은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의회에 실망한다. 자신들의 기득권만 옹호하고,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간혹 반대 뉘앙스를 풍기는 귀족에겐 비난과 야유가 돌아올 뿐이었고, 그 귀족은 곧바로 입장을 선회해 다른 귀족들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내린다.

여기서 그윈플렌이 부르는 곡이 바로 그 유명한 '그 눈을 떠'이다. 그윈플렌은 궁전 밖 보통 사람들의 고된 삶, 즉 자신이 겪은 삶을 생생하게 이야기하며 귀족들에게 그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귀족들의 조롱 뿐이었고, "저 벽을 무너뜨려" 하고 노래했던 그윈플렌의 기대와는 달리 벽은 단단하고 높았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사진EMK뮤지컬컴퍼니

그윈플렌에겐 정치가로서 실현하고자 했던 대의가 있었으나, 다른 귀족들에겐 그런 대의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자리 자체가 목적이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에만 혈안이었다. 단순한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정치가의 자질을 읽어낼 수 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고전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일찌감치 정치가의 자질을 천명한 바 있다. 베버는 대의에 헌신하는 열정, 책임감,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균형적 현실 감각이 정치가에게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대의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귀족들에겐 정치가의 자질이 결여됐다. 그 눈을 뜨라는 그윈플렌의 요구는 외면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그렇게 정치가로서의 목적 의식과 책임감을 가지라는 부탁의 말로도 읽힌다.

정치가의 자질을 판별하는 렌즈는 그윈플렌의 시대에도 유효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타당하다. 무엇보다 그윈플렌의 외침은 엄혹한 시대를 건너고 있는 오늘날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그윈플렌의 요구는 높고 단단한 벽에 부딪혔을지라도 <웃는 남자>는 희망의 여지를 남겨둔다. 그윈플렌과 함께 우르수스의 손에 길러진 소녀 '데아'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조차 쉽게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본다. 바로 '진심'이다. 그윈플렌의 진심을 바라봐준 데아는 그윈플렌에겐 물론이고, 양아버지 우르수스와 주변 인물들에게 희망이 되어준다.

우르수스는 "세상은 잔인한 곳"이라며 염세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동시에 "하지만 살아내야 해"라며 의지를 다진다(넘버 '세상은 잔인한 곳'). 그윈플렌 역시 이 세상이 잔인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잔인한 세상 용서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넘버 '모두의 세상').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사진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사진EMK뮤지컬컴퍼니

1월 9일 개막한 <웃는 남자>는 3월 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박은태·이석훈·규현·도영이 주인공 '그윈플렌'을 연기하고, 민영기·서범석이 '우르수스'를, 이수빈·장혜린이 '데아'를 연기한다. 이외에도 김소향, 리사, 강태을 등 인기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공연 뮤지컬 웃는남자 예술의전당오페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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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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