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유경오
-연출 콘셉트는 어떻게 되는가?
윤혜진 연출(이하 '윤') "연극을 꿰뚫는 키워드는 '환대'와 '애도'다. 배 작가님이 촘촘하게 글을 써주셨는데, 그 안에서 배우들이 인물을 잘 표현해줘서 드라마의 힘을 느꼈다. 저는 이것을 풀어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연극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연출에서 중요한 것은 "무대 위에서 무대가 어떻게 표현되는가?"이다. 작품의 배경이 분옥의 집과 마을인데, 그것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보일까 고민했다. 분옥의 세계가 풍경적으로 펼쳐지길 바랐다. 이를 위해 무대 디자이너들과 많이 고민했는데, 그 끝에 오늘의 무대가 완성됐다. 결국 무대는 '흙 한 줌과 목련 한 그루'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삼대에 걸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 세대에 자신만의 절박함이 있다. 그중에서 현정과 영서의 갈등이 마음이 아팠다. 끝부분에 영서를 연서라고 부르는 장면도 기억난다.
배해률 작가(이하 '배') "분옥이 영서를 연서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자기 삶의 부침이 크니까 위안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던 것이다. 계속해서 이어오던 환대 의지가 꺾인 순간이었고, 그 마음에 위안을 삼고 싶은 분옥의 마음을 현정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분옥에 대한 공감의 말을 던지려다가 어쩌다 보니 자기 자신도 죽은 자신의 딸을 불러본 것이다."
-슬픈 장면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연극에 만가가 나온다. 노래를 듣다 보면 우리에게 어떤 애도의 방법에서 정서가 계승되거나 물려받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 세대가 목련풍선 부는 방법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노래인데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연극에는 만가 말고도 여러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연출가는 음악과 소리에서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나?
윤 "우선, 국악그룹 '구이임'이 음악적인 역할을 잘해줘서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일 수 있었다. 드라마가 탄탄하고 그 안에 인물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가급적이면 소리를 비우려 했다. 이 드라마에는 할머니, 엄마와 아빠, 자식 등 삼대가 등장하는데, 할머니 삶의 철학은 목련풍선을 불어 누군가를 애도하는 행위를 계속 알려주지만 자식들은 계속 까먹는다. 그만큼 자꾸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고 애도하려는 마음이 녹아져 있다. 만가가 작품의 앞과 뒤에 등장한다. 만가가 전통적 애도방식을 구현하는데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그냥 전통적인 고증방식의 만가와 이것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을까를 말이다. 제가 4~5년 전에 '구이임'을 처음 만났는데, 이들이 하고 있는 음악이 제가 고민했던 지점들을 잘 구현할 수 있는 팀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처음부터 구이임과 함께 하고 싶었다."
-무대에는 스크린으로 배경을 채우는 경우도 많은데, 여기에서는 거대한 무대를 직접 구현했다.
윤 "요새 무대에서 새로운 장치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정직하다'라고 느껴서 작품을 더욱 정직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극을 만들었다. 등장하는 화학공장, 분옥의 마을, 외딴 분옥의 집 등에서 힌트를 찾아서 무대를 구현했다. 결국엔 어떤 장치보다 '무대와 인물을 통해서 작품을 직접적으로 느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작품에서 인물이 망자와 만나는 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배 "특별한 의미라기보다는 연극의 장점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희곡을 쓸 때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무대 위에서 한 번쯤은 경험해 보고 싶은 제 욕망이 담겼다."
-환대와 애도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환대가 애도를, 애도가 환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서로 지탱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윤 "우리나라에서 삶과 죽음을 대할 때, '누군가 오고 간다'라는 말이 있다. 오늘 무대 위에서 불렸던 만가에서도 '나는 가네'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환대' 자체는 누군가 오는 행위다. 여기에서 오는 이를 위해서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작품 안에서 분옥이 계속 이야기하는 "언제든 항상 문은 열려있고 누구든지 다 들어올 수 있다"라고 얘기하는 점이 서로 맞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 안에서도 서로 배척하고 경계하는 것이 많은데, 우리도 마음의 문을 열고 경계를 풀고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또 다른 의미의 환대이다.이 작품에서는 분옥이 죽음마저도 환대함으로써 이 세상을 떠나고 어떤 삶을 배웠던 '아라'이든지 그다음 세대들이 문을 여는, 혹은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환대가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애도는 비슷하면서 다른데, 작품을 준비하면서 최근에 큰 참사가 발생해 굉장히 힘들었다. 이런 시기에 공연을 하는 것이 무서웠다. 모두가 마음 아프고 답답하겠지만 우리가 사회적 참사나 죽음을 외면하거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를 떠나서 누군가 떠나가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또는 '누군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위해서 우리는 충분히 슬퍼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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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유경오
-작가의 원래 희곡에서 수정된 부분이 있는가?
윤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구현했다. 우리가 1년 정도 같이 준비했는데, 작년 이맘때쯤 실연 준비를 했다(창작산실은 실연 중에서 본공연을 올리는 시스템이다).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안에서 숨겨진 내면을 발견하는데 그때마다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러닝타임이 2시간이 조금 안되고 대본페이지가 6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상당히 긴데, 읽으면 읽을수록 허투루 쓴 것이 없고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다양한 감각으로 표현하면서 뉘앙스가 계속 달라질 가능성이 많다. 배우들은 반복적인 대사도 많은데, 이들이 전부 하나하나 찾아서 다르게 표현했다. 그래서 작품을 더 잘 만들 수 있었다."
-작품 속에서 '흑이 아니라 뼈와 살'이라며 흙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영진 할머니의 말에서 분옥 할머니의 마지막 대사를 한 번 더 강조하며 얘기하는데, 흙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가 궁금하다.
배 "희곡에서 현실을 반영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제가 계속해서 경험하고 있는 죽음이 이어지고 있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다음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희곡에 반영할 때, 배경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인물과 닿을 수 있는 것이 흙이다. 그래서 그런 대사를 썼다."
윤 "분옥의 마을이 화학공장으로 인해 오염이 되고 나서 흙을 파헤치는 정화작업이 나온다. 결국 무대 이미지는 파헤친 땅과 가라앉은 아스팔트를 구현했다. '이게 뼈고 살이야!'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그 땅을 밟고 서있다. '우리가 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보편적인 이야기보다 사라져간 모든 것들, 죽어간 모든 것들을 밟고 있는 존재로서 흙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전작에서 참사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이번에도 죽음과 애도를 나눴는데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배 "무거운 주제라기보다는 그때 당시에 필연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무언가가 다행히 있다는 게 맞다. 지금 이야기도 그렇다. 우연하게 목련풍선을 전해 들었던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서와 영서의 이름이 비슷하다. 그리고 현성과 현정이 비슷한 것도 우연인가?
배 "연서, 영서의 이름을 지으면서 어떻게 하면 가장 치열하게 애도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낼까 고민했다. 그러면 망자의 이름까지 대신해서 살고 있는 사람을 상상했다. 현성과 현정은 분옥의 집에 우연히 대문을 열고 들어온 두 아이들에게 안정감, 가족됨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분옥이 지어준 이름이다. 마치 자매처럼 닮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두 분이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는가?
윤 "배 작가님이 손님처럼 찾아왔다.(하하)"
▲공연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유경오
-무대 위에서 공연을 관람한 소감은?
배 "연습실에서 스스로 무용함을 느낄 때부터는 작가는 사라진다. 그래서 리허설을 본 것이 얼마되지 않았다. 연습실에서 가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만가를 들을 때마다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들이 제일 슬픈 말임을 알았다."
윤 "연습하면서 너무 많이 울어서 배우님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오늘은 현정이가 아프고, 다음은 현성이가 아팠다. 그만큼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며 연습했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굉장히 많은 고민 중에 선택을 해야 했다. 우리가 공간을 넓게 쓰지만 '연극적인 스펙터클을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인물 중심적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는 인물이 가진 상태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드러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동선을 크게 쓰지 않다 보니까 극장이 넓어서 먼 객석까지 전달이 안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인물과 인물 간의 이야기 흐름에서 밀도를 높임으로써 내면을 채우고 싶었다. 그것은 움직임을 많이 사용하는 연극보다 이미지적 연출을 주로 하는 제 작업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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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그동안 문화예술 월간지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2016~2023)에서 객원필진으로 글을 썼다. 현재는 대학로에서 공연과 전시를 보며 현장을 담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만나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충분히 슬퍼한 적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