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은 챙기고 사람은 막는 미국의 이중성이 초래한 비극
2025년 1월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귀환했다. 취임식에서 그는 멕시코와 맞닿은 남쪽 국경 전체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강경한 이민정책을 예고했다.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파나마 운하를 다시 자국 관할 아래 두겠다고도 선언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합병 주장도 되풀이했다. 노골적인 자국 우선주의가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에 결합하는 시대가 열렸다.
미국 예외주의는 세계질서를 구축하고 수호하는 초강대국 미국은 타국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기준을 벗어난 존재라는 논리다. 미국은 보편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세계 경찰' 역할로 보장하는 책무를 짊어진 국가이기에 자국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는 타국과 비교를 불허하는 특수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자국 이익 우선 논리는 그런 미국의 위상을 긍정하는 이들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과연 과거 제국주의 패권 주장과 어떤 변별력을 갖는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손해는 보기 싫지만, 일방적 영향력은 행사한다는 데 수긍할 동맹국이 있을까? 다른 국경과 달리 중남미 국경만 특정해 범죄자와 불법 이민을 차단하기 위해 장벽을 쌓고 격리하겠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먼로주의'를 표방하며 아직 미국이 지역 강국 정도에 머물 땐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 열강의 간섭을 막겠다던 입장은 어느새 대륙 전체를 자국의 안마당처럼 간섭하고 마음대로 개입하는 새로운 제국주의로 변하고 만다.
그 결과가 지난 세기 내내 힘의 논리로 미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부를 전복하는데 노골적으로 개입한 중남미 역사다. 쿠바나 그라나다, 파나마처럼 직접 침공하기도 했지만, 대개 해당 국가 내 군부나 친미 기득권층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방식을 취했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중남미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한 군부 쿠데타와 백색 테러는 그 지울 수 없는 흔적이다. 소수의 정치적 반대파만 국가 폭력의 희생양이 된 게 아니다. 조금만 의심이 들거나 그저 공포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그런 비극의 역사를 현재형으로 되살리는 기획의 일환이다.
월드뮤직 취재에서 남아메리카 군부독재의 범죄 추적으로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찬란
뉴요커 지에 음악 칼럼을 기고하는 유명 저널리스트 '제프 해리스'는 브라질에서 기원한 '보사노바'의 황금시대를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한다. 그곳에서 취재원들과 접촉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무명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매료된다. 그 주인공은 '테노리우 주니오르', 보사노바 초창기 대가들과 함께 공연하던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였다. 제프는 이런 연주자가 어떻게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나 의아해하며 그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제프는 몰랐지만, 알음알음 보사노바 전문가와 음악인들에겐 대가로 기억되던 테노리우 주니오르다. 하지만 동료 음악가들이 브라질을 넘어 대중음악 본고장 미국에서 주목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게 된 데 반해, 그는 이미 30년 넘게 음악 활동을 멈춘 건 물론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물론 1960 ~ 70년대 활동하던 음악가가 장르 불문하고 은퇴해 은둔하거나 사망한 건 드문 일이 아니기에, 제프 역시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미스터리는 이어진다.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뚝 끊어지듯 사라진 것이다. 이제 칼럼을 보강해 보사노바 관련 서적을 집필하려던 계획 대신에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행적을 재구성하는 추적으로 본말이 뒤바뀐 지 오래다.
칼럼니스트는 지인들의 협조로 생전의 음악가를 알던 이들과 인터뷰를 이어간다. 흩어진 가족을 수소문해 산골 오지를 누비는 건 물론, 함께 활동하던 음악인들을 일일이 발품 팔아 찾아다닌다. 브라질은 물론 아르헨티나, 미국의 전설적인 보사노바, 재즈 명장들이 차례로 제프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다. 테오도르 주니오르라는 이름이 마치 마법의 주문인 것처럼 말이다.
마침내 제프는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한다. 테노리우 주니오르는 1976년, 브라질 음악 동료들과 함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공연 여행을 떠났다가 새벽에 호텔에서 잠깐 외출한 뒤 사라져 버렸다. 그는 현재까지 실종자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누구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 그의 실종을 추적해온 몇몇 지인들은 음악가의 사망을 확신하지만, 그의 시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감미롭고 세련된 보사노바 음악 여행 vs 중남미 군사독재의 어두운 그림자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찬란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이질적인 요소가 물과 기름처럼 뒤섞인 작업이다.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과 일러스트레이터 하비에르 마리스칼이 협업한 2010년 전작 <치코와 리타>의 속편 격 작품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예상과 동떨어진 전개에 뒤통수를 잡을지도 모른다. 쿠바 재즈 연주자 '치코'와 가수인 '리타'가 음악적 성공과 사랑을 위해 벌이는 로드무비를 감미로운 음악과 세련된 애니메이션 효과로 장식한 이국적 영상에 매료된 이들은 쿠반 재즈에 필적하는 보사노바 선율에 맞춰 어깨춤을 줄 준비를 마쳤지만, 신작은 그런 기대를 사뿐히 짓밟으니 말이다.
물론 보사노바의 거장과 그들의 위대한 음악은 본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화면에 스며들고 관객의 귓가를 파고든다. 엘라 피츠제랄드가 리우 공연을 마치자마자 하이힐을 손에 쥔 채 거리의 클럽으로 달려가 무명 연주자들의 보사노바 공연에 합류해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대중음악사에 길이 빛날 역사적 순간이 재현되고, 태평양 건너 한국의 음악 애호가에게도 익숙하기 그지없는, 보사노바라는 매혹적 장르를 브라질을 넘어 전 세계에 알린 < Getz/Gilberto > 앨범이 제프 해리스의 뉴욕 아파트 거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찰나는 흥분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영화에는 그런 음악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할 장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영화는 충실하게 우리에겐 그저 재즈의 하위 장르로 이해되던 보사노바의 개괄과 그 태동기, 그리고 확장과 변천 과정에 대하여 해설한다. 한 번 이름은 들어봤을 거장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과 역할을 담당했는지 웬만한 음악사 서적 못지않게 물 흐르듯 술술 풀어낸다. 제프의 실종된 음악가를 수소문하는 여정을 통해 보사노바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구현되는 전개는,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얼마나 중요한 위상을 갖는지 생소한 관객에게 각인하는 효과도 동시에 발휘하는 셈이다.
그런 진행 경과는 중반 이후 차츰 드러나는 그의 운명을 더 비극으로 치닫게 안내하는 역할도 소화한다. 딱히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거나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한 적이 없던 음악가가 왜 군사독재의 제물로 희생당했는지 진실을 찾는 여정은 흔히 우리가 갖는 고정관념,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그저 중간만 가면 된다는 안일함을 정면으로 부정하게 만든다. 그저 음악에 몰두하며 자유롭게 살던 한 음악가, 그것도 브라질 현대 중산층의 세련된 취향을 형상화한 보사노바 장르의 숨은 대가가 왜 정치적 반대파 테러 제물이 되어야 했는지 자체가 미스터리로 기능한다.
제프 해리스는 처음엔 그의 죽음에 미국이 배후라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하수인들이 실수로 애꿎은 외국 음악가를 테러한 것일 뿐,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비극은 음악 애호가로서 애석한 일이지만, 지나친 음모론 아니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혹을 풀기 위해 전문가들과 만나면서 그는 중남미 군부가 결탁하고 미국이 배후에 있던 '콘도르 작전'에 대해 소상히 알게 되고 당혹감에 빠진다. 브라질 국민이 아르헨티나에서 실종되고, 그들의 아이는 칠레에서 베네수엘라인에게 목격되는 다국적 백색 테러 연계망이 속속 밝혀진다. 미국의 앞마당에서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국경을 초월한 친미 군부 세력의 제휴가 실재한 것이다.
자유와 해방을 희구하는 음악을 죽인 독재와 테러의 그림자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찬란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찬란
테노리우 주니오르는 그저 공포정치를 위한 애꿎은 희생양에 재수 나쁘게 걸려든 결과로 무덤에 묻혀 안식을 찾지도 못한 채 영원한 실종자로 머물러 있다. 그리고 보사노바의 황금시대도 그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물론 살아남은 이들은 그의 음악을 기억하고 그리워하지만, 30대 중반에 멈춰버린 잊힌 거장의 무한한 가능성은 그저 '만약에?'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보사노바는 브라질의 인종적 다양성과 국경을 초월한 팝 음악이 결합한 장르다. 테노리우의 전기영화를 작업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인터뷰에서 포르투갈어 '보사노바'는 곧 영어 '뉴웨이브'이자 프랑스어 '누벨바그'와 동의어라 설명한다. 1950년대 말 고다르와 트뤼포 등이 새로운 현대영화를 창안할 때, 대서양 건너편에선 재즈와 삼바를 결합해 현대화된 새 음악 장르를 창조한 것이다. 그런 동시대 물결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독재와 테러로 억지로 통제하려던 제국주의와 결탁한 국가 폭력은 순수한 음악가의 예술혼조차 가만두지 않았다. 악은 뭐든 장악하고 통제하려 한다.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결국 진실에 다가선 제프가 그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책의 출판기념회로 대미를 장식한다. 현재의 대도시 뉴욕 한복판에서 그저 세계의 음악을 사랑하며 알려온 그가 보사노바의 매혹을 추적하다 위대한 음악의 싹을 짓밟은 자국의 위선에 도달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이를 창조한 비운의 음악가를 기억하는 가상의 공간으로 책을 헌정하는 결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 물과 기름처럼 이물감이 드는 혼란은 우리가 문화를 도피처로만 여기는 편견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진통에 가깝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유독 보사노바가 슬픈 애상으로 다가올 테다.
<작품정보>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THEY SHOT THE PIANO PLAYER
2024|스페인|애니메이션
2025.01.29. 개봉|104분|12세 관람가
연출 페르난도 트루에바, 하비에르 마리스칼
더빙 제프 골드블럼
수입/배급 찬란
공동제공 퍼스트맨스튜디오, 소지섭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호텔에서 갑자기 사라진 연주자,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