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혼란의 정국 속에서 사회 전 분야가 좋건 싫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연말연시 대중문화 시상식과 각종 이벤트 역시 그 여파 아래 놓였다. 미증유의 국난 속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화려한 조명과 무대의상으로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웃고 즐기는 게 온당한 처사인지 물음은 이어졌고, 한편에선 과도한 정치 중심주의, 검열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연예인들의 정치적 의사 표시가 금기시되던 풍토에서 이례적으로 다양한 입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시국에 관심이 없다거나 구설에 오를 법한 행태로 비판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표현할 자유는 침묵할 자유까지 포함하기에, 굳이 모든 이에게 입장을 강요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중요한 정치·사회적인 국면에 영향받지 않는 이는 존재할 수 없다. 직접적인 표시를 하지 않더라도 일정하게 그 거대한 중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특히 대중문화의 경우 심지어 창작 과정이 전혀 무관하더라도 사회적 해석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새로운 민중가요로 자리매김한 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근래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대중문화 파급력이 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현대 사회는 더욱 그렇다.

이런 시대적 변화의 효시가 된 건 역시 1960년대 문화혁명의 시기이다. 2차 대전 전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와 기성세대의 충돌, 불의한 베트남 전쟁과 제국주의 잔재에 대한 항의, 식민지 독립전쟁과 민족해방운동, 성 해방과 문화대혁명 운동 같은 격동의 사변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던 청년세대의 욕구를 그들 자신이 속한 세대의 목소리로 반영하고자 한 도전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21세기까지 영향력을 드리운 거대한 문화 운동으로 승화되었다. 미국 사이키델릭 록의 표상이라 할 그룹 '도어즈', 그리고 밴드의 아이콘이 된 보컬 짐 모리슨은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전설적 밴드 '도어즈'의 보컬을 넘어 한 시대의 상징 일대기

"도어즈"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도어즈"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1943년생 짐 모리슨은 어릴 적 가족여행 중에 서부 사막지대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 일가의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다. 부모님은 아들이 사건을 잊길 원했지만, 아이의 눈에 각인된 생사의 경계는 그의 일생을 규정하고 만다. 예민한 감수성과 천재적인 지적 능력을 겸비한 짐은 UCLA 영화과에 진학하며 LA로 이주한다. 평생의 동반자 '팸'과 사랑에 빠진 것도 이때부터다. 의욕적으로 실험영화를 선보이지만, 교수와 동료들은 그의 작품성을 온당하게 평가해주지 않는다(하지만 소수의 동기는 그를 매우 비범하게 평가했다. 그들은 바로 프랜시스 코폴라와 하길종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만난 동기 레이 만자렉은 그의 비범함을 간파하고 밴드 결성을 제안한다. 로비 크루거와 존 댄스모어가 합류한 팀의 이름은 짐 모리슨이 평소 좋아했던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천국과 지옥의 결혼> 구절에서 따왔다. 미국 사이키델릭 록의 상징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더 도어즈'가 그렇게 탄생한다.

이들은 밴드 결성과 함께 과제를 준비한다. 각자 자작곡을 작업해 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넷 중 기타리스트 로비와 보컬 짐만 과제를 이행한다. 로비의 숙제는 'Light My Fire', 짐이 제출한 숙제는 'The End'였다. (두 곡은 훗날 전설적인 명곡으로 평가받으며 그룹의 대표곡이 된다)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해 처음엔 악보도 볼 줄 몰랐고 수줍음 많던 짐은 클럽 공연에서도 관객을 똑바로 보지 못해 등을 돌린 채로 노래할 정도였지만, 다른 음악인들과 교류하며 과격한 공연 퍼포먼스를 익힌다. 그룹은 곧 유명해지지만, 1960년대 후반 당시 전 세계를 뒤흔든 청년 대항문화의 기운과 결합한 그들의 공연은 외설 시비에 허다하게 오르내리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스타성에 눈독을 들인 음반사의 권유로 정규앨범을 발매하고 곧 전미 1위를 석권하며 미국 최고의 그룹에 등극한다.

하지만 세속적 성공의 정점에서 부와 인기를 누리면서도 짐은 만족할 수 없다. 당대 반문화 조류를 주도하던 이들과 교류하며 더 높은 예술적 성취를 추구함과 동시에, 격동의 시대에 조응해 더 강렬한 퍼포먼스와 전위적 실험을 추구하던 그는 자기파멸에 가까운 좌충우돌 행태를 거듭하며 수많은 구설수의 주인공이 된다. 밴드 활동에 집중하려는 다른 구성원과 갈등이 깊어지고, 연인인 팸 역시 브레이크 없는 짐의 폭주에 지쳐간다. 그의 기행은 과연 시대와의 불화인가 이른 성공을 맛본 스타의 무절제함인가.

신화화된 짐 모리슨의 생애와 도어즈의 음악 해부하기

"도어즈"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도어즈"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1946년생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은 자신의 재능을 1980년대부터 만개한다. 자신이 현역으로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의 위선과 허무함을 양심에 따라 표현한 <플래툰> (1986), <7월 4일생> (1989), 미국의 정치와 경제적 모순 심층을 해부한 <월스트리트> (1987), < JFK > (1991) 등이 전부 이 시절 거의 매년 쏟아낸 작품이다. 하나같이 현대 미국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들이다. 감독은 진보적 지식인의 시선으로 자신이 경험한 헛된 전쟁과 격동의 시대를 마치 역사가의 입장이 되듯 차례로 작업해 나간다. 본인과 동년배 세대로 구성된 데다 자신이 공감했던 문화운동의 상징과 같던 그룹 '도어즈'의 전기영화 제작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인 셈이다.

신화가 된 그룹 도어즈의 전기 형태를 취하지만 영화는 명백하게 그중에서도 보컬 짐 모리슨의 파란만장한 삶에 초점을 맞춘다. 숨 쉬듯 사건을 일으키던 반항아이자 다방면에 재능이 넘쳤던 지적 천재, 관객을 미치게 만들던 마성의 주인공에게 감독 또한 매료될 수밖에 없었을 테다. 표면적으로 영화는 짐 모리슨이란 풍운아의 일대기로 그려지지만, 올리버 스톤 자신이 속한 세대의 비망록으로 구현된다. 밴드 명이 탄생한 유래처럼 마치 '도어즈'란 '문'을 통해 이제 중년이 된 과거의 청년세대가 집단으로 체험한 공통의 기억을 회고하는 느낌이 짙다.

우리 세대는 그 시절 무엇을 꿈꾸며 체제에 반항했던가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그저 낭만적 추억이 아니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가까운 태도다. 어쩌면 전작 <월스트리트>에서 과거의 히피와 평화운동을 경험한 청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성공적으로 주류 사회에 편입되어 '여피' 세대가 된 결말, 재테크와 주식 투자, 헬스와 다이어트에 열광하는 새로운 기득권이 된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에 뒤를 이은 반성과 복기로서 <도어즈>가 탄생한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짐 모리슨과 도어즈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음악으로 구현하려 했다. 짐은 학창시절 과제로 제출한 단편영화부터 파격적 도전을 시도한다. 파시즘 발흥과 무력한 개인, 반문화적 상징 표현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누군가는 혹평하지만 누군가는 영상으로 구현하는 산문시 같다고 언급한다. 현란한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선동적 퍼포먼스에 묻히곤 하는 도어즈의 시적 가사와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은 몽환적 음악은 어쩌면 짐 모리슨이 일관되게 기성 사회와 세계관에 매몰되지 말기를 추구하던 도전의 연장선일 테다.

물론 도어즈는 짐 모리슨만의 것이 아니다. 후세의 우리는 여전히 (영화 속 재현된) 짐 모리슨을 상징하는 사진 작품으로 이 불세출의 밴드를 떠올리지만, 그룹 결성 주축이자 밴드의 음악을 책임진 레이 만자렉을 위시한 다른 구성원의 역량 역시 도어즈를 구성하는 주축이다. 대표곡 중 상당수도 이들 협업으로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짐 모리슨을 도어즈의 심장으로 기억한다. 그저 낭만적 추모가 아니라 실제 짐의 사후 발매된 밴드의 앨범들이 범작으로 취급받는 것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시대의 징후를 구현한 짐 모리슨에게 바친 헌정

"도어즈"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도어즈"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그런 주인공의 생애를 영상으로 구현한 전기다. 짐이 벌이는 온갖 사건마다 배경음악으로 도어즈의 명곡이 깔리고, 실제 그가 벌인 주요 상황마다 찰떡처럼 음악이 스며든다. 마치 영화 자체가 하나의 록 뮤지컬이다. 이야기는 시대정신의 엇박자 구현처럼 짐 모리슨과 도어즈의 일대기를 묘사하고, 미국 사회 보수화와 반문화 운동의 소멸과 함께 도어즈의 전성기가 종말을 맞이하는 것처럼 전개된다. 실제로도 그랬다.

짐 모리슨과 레이 만자렉이 해변에서 밴드 결성을 상의할 때, 둘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은 투사와 죽음, 사랑을 원하고 있고', '베트남 (전쟁은) 저 너머에 있던 시대'에 주류 문화가 은폐한 것을 폭로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문을 열어젖히자! 그렇게 전설은 시작되었다. 전쟁에 반대하고, 제도화된 삶을 거부하고, 타인을 해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자유분방하게 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시대정신에 조응한 음악은 귓가를 사로잡고, 격렬한 무대는 '다른 세계'의 입구이자 '해방구'가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 인간이 감당할 몫은 한계가 있다. 거대한 성공을 이루며 주류 질서에 편입되어 거대 기업에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된 처지를 체감한 짐의 상처 입은 영혼은 구속을 벗어나지 못해 파멸적 일탈만 반복한다. 성실히 음악 활동에 임하는 다른 구성원이 속물처럼 보이고, 옥죄는 시선 속에 더 위악적으로 벌이는 기행은 지인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런 가운데 미국 사회는 패색이 짙어가던 베트남 전쟁과 경기 침체로 인해 우경화의 길을 걷는다. 도어즈에 열광하던 이들은 어느새 짐이 벌이는 기행을 가십으로 소비하기 시작한다. 그의 영혼은 이를 견딜 수 없었고 더 파괴적으로 치닫는다. 그런 파행이 영화에 고스란히 재현되어 보는 이를 힘겹게 만든다.

도어즈의 팬이라면 30여 년 만에 돌아온 재개봉이 반가울 수밖에 없지만, 다시 본 영화는 그저 예찬에 그치지 않는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룹의 전기물을 넘어 자기 세대의 영광과 좌절을 전설이 된 밴드 역사를 통해 재현하는 건 물론, 어느새 과거를 잊은 옛 청년들에 성찰을 촉구한다. 한 세대의 씁쓸한 현주소를 지적하는 영화 후반이 혼란하고 우울해지는 이유다.

<작품정보>

도어즈
The Doors
1989|미국|드라마틱 록 무비
2025.01.23. (재)개봉|141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올리버 스톤
출연 발 킬머, 멕 라이언, 카일 매클라클런
수입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배급 (주)라이크콘텐츠
도어즈 올리버스톤 발킬머 멕라이언 카일매클라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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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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