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노스페라투>는 1922년 독일에서 만들어진 F. W. 무르나우 감독의 <노스페라투, 공포의 교향곡>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영국 출신 브램 스토커의 고딕 호러 소설 <드라큘라>(1887)를 각색해 만들었는데 주요 캐릭터와 지명이 바뀌었을 뿐 이야기는 같다. 뱀파이어 이름인 '드라큘라(Dracula)'를 독일 이름 '올록(Orlock)'으로, 제목도 '노스페라투(Nosferatu)'로 변경했다.

아무튼 원작 소설은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사 캐릭터인 좀비(언데드), 마녀, 유령, 괴물(크리처) 등 초자연적 현상과 관련된 기저다. 공포의 원형으로 남아 연극, 영화, 소설,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재해석되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스핀오프 격인 백작의 하수이자 정신이상자 '렌필드'나, 네덜란드 출신의 교수이자 퇴마사 '반 헬싱' 등도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탄생 100년이 된 '노스페라투'는 널리 알려진 뱀파이어의 특징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 창백한 피부에 섹시한 외모로 상대를 유혹하는 냉미남이 아니다. 노스페라투는 매부리코에 콧수염을 기르고 큰 앞니와 뾰족한 귀, 긴 손톱으로 형상화된 흡사 '쥐'를 닮았다. 키는 큰데 약간 등이 굽어있어 처량하면서도 사나운 외모의 소유자다.

특히 햇빛에 타들어 가는 존재감과 그림자를 활용해 어둠의 공포를 극대화한 미장센은 영화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뾰족뾰족한 고딕풍의 성 외관과 그의 날카로운 이빨은 날 선 공포를 부추겼다.

거부하기 힘든 탐닉의 검은 전염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어릴 적부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통제하기 힘든 존재와 마주한 '엘렌(릴리 로즈 뎁)'은 몇 년 뒤 '토마스(니콜라스 홀트)'와 결혼해 행복한 신혼을 즐기고 있다. 기쁨도 잠시, 토마스가 부동산 계약을 위해 멀리 출장을 떠나자 불안감이 극도에 달하며 쇠약해진다. 마치 꿈꾸는 듯 무언가에 홀려 몽롱하고 불쾌한 환각이 토마스를 만나고 말끔히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곁에 없다면 엘렌은 다시금 심연 속을 떠돌 수밖에 없어 불안하다.

한편, 토마스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부동산업자 크록의 심부름을 떠난다. 몸이 허약해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러 오지 못하는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의 성으로 방문해야 한다.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렸다. 힘들고 고된 여정에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들린 여관에서 이상한 일과 마주친다. 그곳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건네며 올록 성(城)에 가지 말 것을 권유한다. 그날 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부관참시를 목격한 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다. 어떻게 뛰쳐나왔는지 모를 발걸음으로 떠돌다가 결국 올록 성에 당도한다.

올록 백작은 숨 돌릴 틈도 없이 계약서를 들이밀며 토마스를 옭아맨다. 피를 빨리고 심신이 허약해져 성을 떠나지 못한다. 자의반 타의 반으로 갇혀 있던 중 사랑하는 엘렌을 위해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 시각 엘렌은 친구 부부 '프리드리히(애런 존슨)'와 '애나(엠마 코린)' 집에 머물며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번 심각한 발작과 몽유병으로 주변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용하다는 명의 방문에도 차도가 없자 연금술과 신비주의 철학, 주술에 능통한 '폰 프란츠(윌렘 대포)' 교수를 찾아 상태를 진단받는다. 하지만 스스로 타파해야 한다는 운명을 직시한 엘렌은 컴컴한 어둠이 깃든 밤 거사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금기를 건드리는 공포의 원형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영화는 공포라는 감정 이상의 다양한 해석으로 읽힌다.

첫째 영원불멸의 욕구를 품고 무의식, 욕망, 터부, 죽음을 이야기한다. 배경인 19세기는 과학과 의학이 발달했던 산업혁명 시대이지만 부활의 호기심과 영원불멸의 삶을 믿었던 혼란의 때이기도 하다. 남의 피를 탐함으로써 불사의 존재가 된다는 제안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솔깃하기만 하다. 아름다움과 젊음을 영원히 간직하면서도 죽지 않는 일은 현대 의학으로도 풀기 힘든 숙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전염병 창궐의 과정이다. 노스페라투 자체는 사람들을 현혹하고 피를 빨아 감염시키는 수괴이자 절대 악(惡)으로 묘사된다. 함께 배를 타고 건너온 어마어마한 쥐 떼는 인류사로부터 이어져온 다양한 전염병(페스트)을 상징한다.

셋째 올록 백작은 영국으로 건너온 소수자를 상징한다. 이민자, 인종, 성(性) 차별 및 자본주의 비판, 전통과 과학의 상충, 본능과 이성의 대비 등 사회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원작 소설은 서유럽권을 향한 동유럽권의 복수로 읽히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욕망의 구현이다. 19세 여성의 진취적인 욕망은 마녀로 치부하며 차별했다. 영화 속 엘렌의 성적 욕망은 악마를 끌어들인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종료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용기를 '사랑'의 힘으로 포장한다.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냈던 여성의 내면은 올록으로 상징되는데 올록을 무너트려야만 끝난다. 여성 욕망의 실현은 곧 죽음을 뜻한다. 엘렌이 토마스에게 준 향갑에 깃든 보라색 라일락(꽃말 첫사랑)의 향이 결국 올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는 것만 봐도 아이러니하다.

한 우물만 팠던 호러 꿈나무의 성과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
영화 <노스페라투> 스틸컷유니버설 픽쳐스

<노스페라투>의 공식적인 두 번째 리메이크 버전을 만든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호러 꿈나무였다. 그 근성으로 <더 위치>, <라이트 하우스>, <노스맨>을 만들며 재능을 꽃피웠다. 호러와 신화, 오컬트에 천착한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과 기괴한 미장센의 조화를 이룬 영화가 <노스페라투>다.

고전 스타일은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스타일로 어둠과 죽음을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금기를 건드린 퇴폐적이고 에로틱한 분위기는 오컬트와 포크호러의 방식과 만나 느릿하고 우아한 공포를 전한다. 점프 스케어나 도파민 과다인 현대 호러 영화에 익숙하다면 지루하겠지만, 요즘 세대에게 색다른 공포로 다가올 수 있겠다.

흥미로운 사실을 덧붙이자면. E. 일라이어스 메리지 감독의 <뱀파이어의 그림자>(2000)에서 배우 막스 슈렉이 연기한 윌렘 대포와 <렌필드>에서 렌필드를 연기한 니콜라스 홀트가 동반 출연한다.

또한 데뷔 이후 맨얼굴보다 변장이 익숙한 배우로 자리매김한 빌 스카스가드는 그로테스크한 올록 백작을 위해 촬영마다 4시간에 걸친 특수 분장을 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변조라고 생각했던 목소리와 억양은 가장 낮은 톤의 본인 육성이다. 육체적 ·정신적 갈망으로 뒤덮인 엘렌을 연기한 릴리 로즈 뎁은 아버지 조니 뎁의 명성을 뛰어넘었다.
노스페라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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