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 예스24 라이브홀에서 데미안 라이스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데미안 라이스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1973년생인 데미안 라이스는 록밴드 '주니퍼'를 거쳐 2002년 첫 정규 앨범 < O >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만 'The Blower's Daughter'를 비롯해 'Amie', 'Cannonball', 'Volcano' 등 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면서 단순에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아일랜드의 서정성과 포크를 결합한 그의 음악은 영국의 에드 시런, 한국의 로이 킴 등 많은 후대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 아티스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1년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이후 2023년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이르기까지, 많은 무대에서 한국 팬들과 조우했다.
▲지난 1월 14일, 15일에 열린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의 내한 공연이현파
거리의 악사, 이야기꾼 데미안 라이스
비니 모자와 투박한 느낌의 재킷을 걸친 데미안 라이스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걸어 나와 'Cannonball'을 부르며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공연장 내에서 벌어진 모든 풍경이 자연스러웠다. 공연 도중 술을 마시고는 'I Love You'를 외치는 관객을 무대 위로 불렀다. 2집의 수록곡 'Rootless Tree'를 부르기 전, "기타 버전과 키보드 버전 중 무엇을 부르는 게 좋겠느냐"며 관객에게 의사를 묻기도 했다.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라기보다는, 길거리 위에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거리의 악사를 보는 듯했다.
'악사' 데미안 라이스는 버스킹, 또 스탠딩 토크쇼를 하듯 공연을 이끌어 나갔다. 공연 초반부터 "나라도 내 공연에 안 오고 싶을 것 같은데, 이 공연에 오는 사람은 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 아니겠나"라며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다소 짓궂은 농담이지만, 팬들은 대부분 그의 말에 공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이 대부분 처연한 슬픔과 우울의 감정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Love it taught me to lie. Life, it taught me to die
(사랑은 내게 거짓말하는 방법을 알려줬고, 삶은 내게 죽는 방법을 알려줬다네)
- 'Cannonball(데미안 라이스)' 중
그의 말대로라면, 이 공연은 하나의 거대한 치료 세션과 다름없다. 'Delicate', 'Cannonball', 'Rootless Tree', '9 Crimes' 등 슬픔과 우울을 직시한 명곡들이 한없이 가깝게 다가왔다. 심플한 편곡은 오히려 관객과 아티스트 간의 거리를 좁혔다. 데미안 라이스의 목소리는 모든 특수 효과와 영상을 대체했다. 때로는 냉소를 머금었고, 때로는 폭발했다. 1집 < O >가 발매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때와 비교해도 힘을 잃지 않은 보컬이라 설득력은 더 높았다. 데미안 라이스가 입을 뗄 때마다, 감탄한 관객들이 숨을 죽이는 소리가 들렸다.
데미안 라이스는 공연 초반부터 노래에 엮인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을 즐겼다. 다소 익살스러운 설명은 대개 서글픈 이별의 노래로 귀결되었다. 이야기꾼의 공연은 단출했다. 미니멀한 조명과 드라이아이스, 기타와 피아노 한 대 외엔 다른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공연을 함께 한 구성원도 리사 해니건의 대체자인 첼리스트 겸 가수 프란체스카 베레타 한사람 뿐이었다. 따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어떤 조건이든 충분하다. 이것이 이 공연의 본질이었다.
데미안 라이스는 2014년 발표한 3집 < My Favourite Faded Fantasy > 이후 11년 동안 새로운 앨범을 내지 않고 있다. 적은 앨범 개수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잊히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지난한 우울의 늪 속에서 피워낸 꽃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데미안 라이스는 15일엔 로이킴, 박한솔(솔루션스) 등 한국의 다양한 뮤지션들과 협업 무대를 펼쳤다. 자신의 퇴근길을 기다린 팬들에게 기타를 들고 'Cannonball'의 버스킹 라이브를 선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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