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동양인은 서구인이란 말이 있다. 살고 있는 곳은 동양이되 그 사고방식이며 생활양식 모두가 서양에 가깝다는 뜻이겠다. 결혼식에 더해 일종의 덤 격으로 전통혼례를 치르는 것처럼, 우리는 서구적 삶 속에서 동양의 무엇을 그저 흉내만 내고 있지는 않은지.

서구문명이 과학기술을 앞세워 동양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통합해 오늘에 이르렀다지만, 우리가 과거의 전통을 필요이상 상실한 점은 아쉬울 밖에 없는 일이다. 과거와의 단절이 그저 먹고 입고 쓰는 것의 변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잃은 것이 어디 전통뿐일까. 생활양식과 옷가지, 먹을거리며 기술 따위가 전부일까 말이다. 사고방식과 가치관, 나아가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갈 온갖 재료들을 우리는 낱낱이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스트캣 앙주 포스터
고스트캣 앙주포스터와이드릴리즈

갈수록 찾기 힘든 요괴 이야기

서양에 요정이 있다면 동양에는 요괴가 있다. 도교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나아가 동남아시아 전역까지 널리 퍼진 요괴의 세계관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동식물에 영성을 부여하고, 다시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층적 세계를 구성한다. 여기까지는 서양의 요정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크기가 작고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는 요정과 달리 요괴는 크기도 클뿐더러 인간과 독자적인 관계를 맺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때로는 해를 미치고, 또 때로는 선을 베풀기도 하는 요괴들은 개성 강한 인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지난 시대 서양에선 요정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꾸준히 작품화했다. 최고의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물론이고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요정으로부터 파생됐다 해도 좋을 엘프족을 비롯해 다양한 종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반면 동양에선 <서유기>와 같은 고전은 있으나 요괴를 소재 삼아 새로운 세계관을 펼친 이야기가 좀처럼 힘을 얻지 못한다. 이따금 등장할 때도 있지만 제대로 호응을 받는 작품은 손에 꼽으니, 가능성 있는 소재를 두고 활용하지 못하는 데 적잖이 아쉬움이 남는다.

야마시타 노부히로와 쿠노 요코가 공동으로 제작한 신작 애니메이션 <고스트캣 앙주>는 이 같은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인간화된 고양이 요괴 앙주를 등장시켜 시골마을 산사에 맡겨진 소녀 카린과 나는 한 철을 그려냈다.

고스트캣 앙주 스틸컷
고스트캣 앙주스틸컷와이드릴리즈

성인 남자보다 덩치 큰 말하는 고양이

카린은 어딘지 한량끼가 엿보이는 아빠 테츠야에 의해 한적한 마을에 있는 '소세지절'에 맡겨진다. 테츠야는 며칠 뒤 엄마의 기일까지는 돌아오겠다 하지만, 그의 말은 지켜지는 법이 없었던 듯 불안하기만 하다. 더구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카린이 시골마을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은 호기심으로 그럭저럭 버텨보지만 이내 지루하여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오는 것이다.

카린 곁에는 웬만한 성인 남자만한 고양이 앙주가 있다. 37살이나 먹은 이 고양이가 말도 하고 젓가락질도 하며 오토바이까지 타고 다니는데 그를 이상하게 여기는 이가 이 마을엔 아무도 없다. 그저 요괴니 그렇지 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고스트캣 앙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카린의 고충과 너무나 비현실적인 앙주를 이어 붙여 낯설고도 익숙하며 환상적이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를 빚어내려 한다.

<고스트캣 앙주>의 전반부는 그 자체로 놀라운 나름의 세계관을 소개하는 데 들어간다. 즉 앙주와 그 주변의 온갖 요괴들을 자연스레 등장시키고, 그들이 가진 능력이며 성격 따위를 내보이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카린과 다른 사람 일에 별 관심이 없는 앙주가 차츰 가까워지는 과정이 소소한 위기와 극복 속에서 나름의 재미를 준다.

고스트캣 앙주 스틸컷
고스트캣 앙주스틸컷와이드릴리즈

지옥에서 엄마를 구해온다면

후반부는 본격적인 이야기로 채워진다. 카린 앞에 불운을 관장하는 신이 등장하고, 앙주가 그를 막는 과정에서 카린이 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카린은 그에게 제 엄마를 만나도록 해달라고 청하고, 말이 신이지 신계에선 보잘 것 없는 그가 마지못해 카린을 저세상으로 데리고 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로부터 저승에서 죽어버린 제 엄마와 조우하는 카린, 그녀는 결국 엄마를 데리고 저승에서 이승까지 내달리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저기 유명한 신화 속 오르페우스가 제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저승에서 데려오려 했듯, 카린 또한 제 엄마를 지옥으로부터 빼내온 것이다. 물론 오르페우스가 그러했듯, 카린 역시 필연적 좌절을 겪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영화는 생과 사, 그 사이를 갈라놓는 질서를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제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녀의 마음과, 또 그를 안쓰럽게 여겨 돕고자 하는 요괴들의 한바탕 대소동을 유쾌하게 그릴 뿐이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들을 막아서려는 지옥의 요괴들과 그들을 저지하고 카린을 도우려는 세상의 요괴들이 어우러지는 광경은 <고스트캣 앙주>가 아니라면 만나기 쉽지 않은 진풍경을 빚어낸다.

고스트캣 앙주 스틸컷
고스트캣 앙주스틸컷와이드릴리즈

알지 못하는 세계와 관계 맺는 법

동양적 요괴가 등장하는 영화는 나름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 요정과 달리 인간에게 이롭거나 무작정 인간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채로, 인간 사회와 적극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존재란 점이 그 무궁무진한 쓰임을 가능케 한다. 어떤 요괴는 인간을 해치고, 다른 요괴는 인간을 도우며, 또 어느 요괴는 인간에겐 별 관심 없이 저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요괴들의 세상이 인간들의 세상과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관계 맺는 광경을 통해 인간은 우리가 세상 유일한 주제가 아닐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더불어 다종다양한 요괴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상상의 폭을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 특정한 종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요괴들은 서양의 요정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이채로운 방식으로 등장해 인간들과 독특한 관계를 맺어나간다.

그로부터 <고스트캣 앙주>는 나와 다른 존재, 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과 대면하여 적대하지 않고 어우러지는 방식을 알도록 한다. 마치 영화 속 카린이 그러했듯이.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스트캣앙주 와이드릴리즈 야마시타노부히로 쿠노요코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