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시즌2의 '타노스' 역할이 아니었다면, 제가 용기를 내기도 어려웠을 거고 캐스팅되지도 못했을 거 같아요. 사실 저로서도 쉽지 않았습니다. 제 과오가 있어서 과거와 직면해야 했고요.

타노스라는 캐릭터가 MZ 세대로 대표되는 이들, 그중에서도 타락한 인물을 대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캐릭터였고, 그런 면에서 사회적 메시지가 있던 캐릭터라고 봤습니다. 전형적으로 실패한 인생, 한심한 '힙합 루저'라는 캐릭터였기에 저도 용기를 냈고 꼭 이 타노스를 연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룹 빅뱅 출신의 탑, 배우 최승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가 언론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건 2014년 영화 '타짜-신의손' 이후 11년 만이다.

최승현은 15일 서울 삼청동 일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십여 년의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러분들에게)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서 "용서를 구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최승현은 지난 2016년 대마초 흡입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개인 SNS에 은퇴성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그러다 8년여 만에 '오징어 게임' 시즌2로 깜짝 복귀했지만, 제작발표회나 쇼케이스 등 작품 관련 스케줄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약 하는 장면 너무 부끄러웠다"

 11년 만에 인터뷰에 나선 배우 최승현.
11년 만에 인터뷰에 나선 배우 최승현.넷플릭스

검정 양복에 검정 넥타이를 한 최승현은 인터뷰 내내 그의 캐스팅부터 연기력과 관련한 논란을 의식한 듯,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앞서 <오징어게임> 시즌2의 새 인물 중 하나가 최승현이라는 점이 알려지자 캐스팅 적합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에 황동혁 감독은 "(마약 등 논란이) 6~7년 정도 지나서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며 "승현씨를 염두에 두고 (타노스를) 쓴 건 아니다.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제일 적합한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최승현 역시 제작사를 통해 오디션 제의를 받고, 캐스팅이 확정되기 전까지 네 차례 이상 오디션과 리딩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그렇게 최승현은 극 중 한때 래퍼로 잘 나갔지만, 이명기(임시완)가 추천한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망한 힙합 서바이벌 준우승자 출신의 래퍼 타노스 역을 연기했다. 타노스는 게임에 참가하기 전 마약을 투약하고 이명기에게 약을 권하기도 하는데, 최승현은 이를 촬영 중 가장 부끄러운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잘 아시다시피 현장에는 배우, 스태프를 비롯해 수백 명이 있잖아요. 그런데 타노스가 (제가 과거에 한 것처럼) 약을 먹으니까... 정말 부끄러웠고, 심리적으로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제가 감당하고 풀어가야 할 숙제이자 이겨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촬영 전까지 7~8년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최승현은 "별도로 연기 수업을 받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마약 중독자의 특징·증상을 찾아보고 약에 취한 듯 발음을 흩트리며 랩 하는 미국 몇몇 래퍼들의 영상을 분석하며 타노스의 캐릭터를 입체화했다.

"타노스는 강력한 각성제 약물에 의존해요. 그래서 이런 약에 중독된 사람들을 찾아봤더니 약을 하지 않았을 때 극도의 초조함·불안함을 느끼더라고요. 몸을 가만히 있지도 못하고요.

그래서 오징어게임의 극초반에 약을 하지 않은 상태의 타노스는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게임에 집중하지 못해요. 불안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거죠. 이후 약을 하고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참가자들이 죽어 나가도 혼자 담담해 하죠. 약 때문에 각성된 상태인 건데, 감독님과 치열하게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중독자인 타노스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차분하던 최승현은 연기 이야기를 할 때 잠시 환한 얼굴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연기한 타노스를 '덜떨어진 또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감독님은 '좀 더 미쳐주세요, 좀 덜 미쳐주세요'라고 하기도 했다"면서 "오디션을 보고 감독님을 만나 대본 리딩을 하는 과정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빅뱅 멤버들에 면목 없어"

 탑이 연기한 '타노스'는 마약으로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다.
탑이 연기한 '타노스'는 마약으로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2가 공개된 후 그의 연기력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모든 대사를 랩으로 하는 듯한 캐릭터 설정과 어색한 감정 연기가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혹평이 나왔다. 동시에 해외에서는 타노스 캐릭터를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여기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해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비평가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캐릭터는 바로 최승현이 연기한 타노스다. 피가 튀는 챌린지 한 가운데서 춤을 추는 것부터 불안할 정도로 경쾌함을 선사한다"며 "올해 최고의 빌런 중 한 명"이라고 극찬했다. 넷플릭스 공식 계정에서 "'오징어게임' 시즌2에 나온 새 캐릭터 중 최애는 누구?"라는 질문에 70만 명이 응답했는데, 50% 이상 타노스를 꼽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는 평가를 두고 최승현은 "어떤 평가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내 연기가 불편하거나 부족했다면, 그 점을 찾고 공부해 점점 나아지는 배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최승현은 그룹 '빅뱅'의 멤버와 팬들을 향한 미안함과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말 '2024 MAMA 어워즈'에 선 빅뱅의 무대도 챙겨봤다"면서 "빅뱅을 통해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이십 대를 보냈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는데, 내 실수로 팀에 피해를 주게 됐다. 내 잘못이 팀에게 큰 피해가 되고 멤버들이 함께 질타받는 게 미안했다"고 탈퇴 배경을 밝혔다.

"팀에 피해를 더는 주고 싶지 않아 팀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 지 5년여 후에 팀과 결별했고요. 그 사이 '봄여름가을겨울'(2022) 프로젝트 제안이 왔고 팬들과 멤버 모두를 위한 빅뱅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응했습니다. 빅뱅으로 컴백할 생각이 있냐고요? 없습니다. 제가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면목이 없어서예요."

다만, 최승현은 <오징어 게임> 촬영 전 7~8년 동안 혼자 음악을 만들어 왔다. 그는 "여러 실수 후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너무 컸다. 부모님, 팬, 멤버들 등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줘서 피폐했을 때 집과 음악작업실만 오갔다"면서 "음악을 만들 때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그때 조금 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음반 발표계획도 있냐'는 질문에는 "아직 말하긴 이르지만 조만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여러분들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대중이 쉽게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에도 "과거에 너무 경솔했기에 대중이 받아들이기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이 (나를) 혹독하게 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내가 풀어야 할 문제이고, 전적으로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라고 밝히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앞으로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고 싶습니다. 어두웠던 제 시간을 반성하며 살겠습니다. 누구보다 건실하게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오징어게임 최승현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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