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엔딩을 이야기할라치면 빠지지 않고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며 예술이 늘상 그러하듯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사실이겠으나, 그 안에도 엄정히 수준이며 만듦새, 예술적 완성도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반전영화 가운데선 보는 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유주얼 서스펙트>를, 액션 영화 가운데선 'Extreme Ways'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멋이란 무엇인가를 내보이는 <본> 시리즈를, 그리고 스릴러나 드라마 가운데선 <타인의 삶>과 같은 작품을 즐겨 이야기하곤 하는 것이다.

<타인의 삶>, 영화의 끝맺음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일 테다. 그건 그 엔딩이 그저 영화를 잘 갈무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스스로 작품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삶의 어느 곡절 가운데 때때로 영화를 떠올려 돌아보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대체 어떤 엔딩이기에 <타인의 삶>을 그토록 남다르게 하는가.

나는 이 영화의 엔딩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닮았다고 여긴다. 그건 이 소설이 추구하는 승부수, 그러니까 소설 한 권을 전복하며 증폭하는 마지막 한 문장과 영화 <타인의 삶>의 엔딩 속 장치가 통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

타인의 삶 포스터
타인의 삶포스터트리플픽쳐스

이야기를 끝맺는 최고의 방법을 묻는다면

주지하다시피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어느 해변 술집에서 만난 노인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다. 그는 실제 인물을 연상케 하는 쿠바섬 해변의 어느 늙은 어부가 바다로 나가 겪는 일을 한 편의 짤막한 이야기로 써냈다. 늙은 홀아비 어부 산티아고는 견습이라 해야 좋을 소년 마놀로를 데리고 작은 어선을 몰아 멕시코만까지 나아간다. 벌써 84일째 무엇도 낚지 못하는 불운 끝에 그는 마침내 배보다 큰 청새치를 낚아올리는 것이다.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는 고기의 어마어마한 힘에 맞서 노인은 사력을 다해 버틴다. 며칠을 싸운 끝에 겨우 고기가 수면으로 올라오지만 노인 또한 지칠 대로 지친 상태. 고기의 옆구리에 작살을 꽂고 마침내 그를 배 옆구리에 달아매는 일련의 이야기가 거의 격투며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처절하고 격렬하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엔 고기를 노리는 상어들이 달려들고 그를 지키려 노인은 몸을 일으켜 배를 해변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실존적 투쟁이며 불굴의 의지의 표상이라고까지 일컬어진 이 걸작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 문장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의 끝에서 상어들에 의해 뼈밖에 남지 않은 물고기를, 그걸 물고기라 부르기도 민망한 노릇이지만, 무튼 그를 해변으로 가져온 노인은 지친 걸음으로 침실로 향해 쓰러지듯 눕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문장.

'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the lions.'

고기와 또 상어와 싸운 끝에 건진 것이라곤 쓸모없는 뼈다귀 밖에 없는 늙은 어부가 꿈에서마저 사자와 싸우는 것이다. 한 문장이 이제껏 펼쳐진 소설 속 이야기 전부만큼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얄팍한 소설을 그 두 배 쯤으로 만들어낸다는 것, 나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로부터 읽었다.

타인의 삶 스틸컷
타인의 삶스틸컷트리플픽쳐스

타인의 삶이 내게 스며들 때

말하자면 <타인의 삶> 또한 그와 같은 결말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제목이 넌지시 비추듯 다른 이들의 삶을 지켜보아야 하는 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뮤흐 분), 우리말로 귀때기, 즉 남몰래 요주인물의 일상의 도청하는 게 그의 업이다.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인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 분)과 그 애인인 배우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 분)가 그의 새로운 타깃이다. 하루 종일, 24시간 동안 지근거리에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도청하는 비즐러는 차츰 그들의 삶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는 도청이란 소재로 관찰자가 객체의 삶에 제 감정을 이입하는 과정을 점층적으로 표현해낸다. 냉철한 이성으로 동지와 배신자, 또 찬동과 반동을 구분해내던 비즐로가 드라이만의 삶을 함께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무리 없이 그려낸 것이다. 도청과 이입, 동질화되는 감성과 그럴 수 없는 환경의 조합이 그 자체로 극적 긴장과 묘미를 함께 자아낸다. 마치 비슷한 설정을 차용해온 한국 역대급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그러했던 것처럼.

영화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가 놓인 불안한 일상, 또 외부로부터의 침탈에 고난을 겪는 이들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비즐로는 그 모든 순간에 관찰자이자 도청자로서 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예술에 대한 이들의 진지하고 열의 있는 자세를, 서로에 대한 두 사람의 정성스런 마음이며 공고한 관계를, 무엇보다 그들이 마주한 무참한 현실을 반동자를 척결하려는 비밀경찰의 마음으로만 볼 수는 없게 되어버린다.

타인의 삶 스틸컷
타인의 삶스틸컷트리플픽쳐스

도청하던 이가 비호하게 되다니

그리고 어느 순간 비즐로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제가 신봉하던 국가 권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시작한다. 이는 임무의 실패로 이어지고, 비즐로는 좌천되어 더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게 된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독일은 자유와 민주의 기치 아래 통일을 맞이한다. 전과 다른 독일에서 비즐로를 찾은 드라이만이 그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돌아서는 장면에서의 감상은 이 영화가 어째서 훌륭한 작품으로 오랫동안 거론되는지를 알도록 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 영화가 특별해지는 건 그 이후, 즉 비즐로가 서점을 찾아 드라이만이 쓴 책을 구매하는 장면에 있다.

때는 드라이만이 비즐로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린 때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흐른 뒤다. 비즐로는 언제나처럼 편지를 배달하러 서점 앞을 지나다 드라이만의 신간 포스터가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서점에 들어가서 그 책을 들고 책장을 넘긴다. 화면은 비즐로의 암호명인 'HGW XX7(비즐로의 암호명)에게 헌정함'이라 적혀있는 책장 위에 가만히 멈추고, 음악이 부드럽게 여백을 채운다.

타인의 삶 스틸컷
타인의 삶스틸컷트리플픽쳐스

"아니요, 저를 위한 선물입니다"

감상에 젖은 듯한 비즐로의 표정, 그는 책 한권을 집어 들고서 계산대로 걸어가 내려놓는다.

"29.8 유로입니다. 선물이세요?"하고 묻는 점원에게 비즐로가 답한다.

Nein. Das ist fuer(für) mich

"아니요, 저를 위한 겁니다"하고 답하는 비즐로의 모습을, 두 눈을 또렷하게 뜨고 있는 그를 아이리스로 잡아내며 영화는 그대로 암전. 엔딩크레디트가 오른다.

다른 누가 아닌 저 자신을 위한 것이란 대답, 마땅한 수고와 결심, 선택으로부터 뒤늦은 감사를 챙겨 받은 비즐로가 그 스스로를 긍정해냈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보여준다. 그가 그저 드라이만에게 동화되어 그들 커플을 돕고자 한 게 아니라는 걸, 비즐로가 저 자신의 삶에 새로이 눈 뜬 결과라는 사실을 관객은 비로소 이 대사를 통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보다 훌륭한 마지막 대사와 엔딩은 흔치 않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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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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