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에게 참담한 배신을 당했다. 아들이 1398년에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으로 둘째부인의 아들인 이방번과 이방석을 잃고 건국의 동지인 정도전을 잃었다. 애써 얻은 임금의 지위도 함께 잃었다. 이 때문에 아들에 대한 이성계의 증오심은 대단했다. 그런 심경이 tvN 드라마 <원경>에도 절절히 반영돼 있다.

이성계 역을 맡은 배우 이성민은 분노한 듯한, 이를 가는 듯한 표정으로 이성계의 심경을 표현한다. 지난 6일 제1회 방영분이 10분쯤 지난 뒤, 높은 산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이성계의 모습이 나왔다. 이 장면에서 그는 칼을 맞고 쓰러지는 아들 이방석의 최후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러면서 입술을 파르르 떨며 고함을 친다.

또 하나는 제1회 끝부분과 제2회 초반에는 이성계가 아들 부부인 원경왕후 민씨(차주영 분)와 이방원(이현욱 분)을 사찰 법회에 초대한 뒤, 숨겨 놓은 철퇴를 꺼내는 장면이다. 원경왕후의 비밀 정보조직이 철퇴의 존재를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드라마 속의 이방원은 불귀의 객이 됐을 것이다.

이방원을 미워한 이성계

 tvN <원경> 관련 이미지.
tvN <원경> 관련 이미지. tvN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위 장면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함흥 등을 무대로 복수전을 펼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개경으로 귀환하던 이성계가 개경 교외에서 이방원을 만나는 장면을 서술했다.

이에 따르면, 이성계는 다가오는 아들을 바라보며 얼굴에 분노를 띠다가 갑자기 활을 들어 힘껏 쏜다. 이방원은 신속히 피했고, 화살은 햇빛 가리는 차양의 기둥에 꽂힌다. 이성계는 웃음을 지으며 "천명이로다. 네가 갖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며 옥새를 건넨다. 이방원은 눈물을 흘리며 세 번 사양한 뒤 옥새를 받고, 두 부자는 술자리를 갖게 된다.

그 직후였다. 아들이 술을 올릴 때가 됐다. 이방원의 측근인 하륜 등은 "직접 올리지 마시고 환관에게 줘서 올려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 이방원이 그 말대로 환관을 앞세우자, 이성계는 술잔을 다 들이킨 뒤 또다시 웃는다. 그러면서 소매에서 철퇴를 꺼내놓는다. 여기에서 "모두가 천명이로다"라는 말이 또 나온다.

<연려실기술>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성계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아들을 미워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는 제1차 왕자의 난으로부터 2년 뒤 이방원이 왕이 되고 다시 2년이 흐른 1402년에 벌어진 조사의의 난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강원도 원산 남쪽인 안변의 사또인 조사의는 그 위쪽인 함경도(동북면)의 병력에 힘입어 정변을 일으켰다. 그 시기에 함경도는 이성계의 세력권이었다. 그래서 이성계의 동의 없이는 그곳 병력을 거사에 동원할 수 없었다.

조사의는 이성계의 둘째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의 친족이다. 또 조사의가 거병하기 나흘 전의 상황을 기록한 태종 2년 11월 1일자(1402.11.25) <태종실록>은 "태상왕의 어가가 동북면으로 향했다"고 알려준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조사의의 난이 실제로는 이성계의 난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조사의가 함경도로 들어간 이성계를 대리해 이방원에게 맞섰던 것이다.

이처럼 이성계는 아들을 상대로 전쟁까지 일으켰다. 활을 쏘고 철퇴를 준비하는 <연려실기술> 속의 이성계는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이성계의 실제 증오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골든타임' 놓친 이성계

 tvN <원경> 관련 이미지.
tvN <원경> 관련 이미지.tvN

 tvN <원경> 관련 이미지.
tvN <원경> 관련 이미지.tvN

조사의의 난에서 나타나듯이 제1차 난으로부터 4년 뒤에도 이성계는 내전을 일으킬 만큼의 군사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이방원의 권력은 제1차 난을 계기로 강해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불안정했다.

이방원의 권력이 불안정했다는 점은 제1차 난으로부터 6개월 뒤인 1399년 4월 13일(음 3.7) 개경 천도를 단행한 데서도 나타난다. 그는 후계자 지위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둘러 한양을 떠났다. 민심이 우호적이었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한양으로 되돌아간 것은 임금이 되고 5년 뒤인 1405년이다.

이방원의 입지는 1400년 2월 22일(음1.28) 벌어진 제2차 왕자의 난을 통해 공고해졌다. 이를 계기로 동복형 이방간을 숙청하고 또 다른 동복형인 이방과를 상왕으로 밀어 올렸다. 그런 뒤,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방원이 이방과마저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목격한 이성계는 조사의의 난을 통해 이방원과의 정면 대결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이방원이 훨씬 강해진 뒤였다. 한마디로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제1차 내란으로부터 처음 2년 동안에 단호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이 이방원의 집권을 목도하는 원인이 됐다. 아들의 죽음에 피토하는 심정으로 복수를 다짐했지만 결국 이성계가 이방원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원경 이방원 이성계 왕자의난 내란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