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카페인, 필로폰 등의 각종 마약의 남용과 그에 따른 신경학적 변화로 유발되는 상태. '중독'의 정의다. 특히 마약 사용에 있어 법적으로 엄격한 한국사회에서는 중독 문제가 본격적인 화두로 올라오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마약 중독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청소년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 이상 덮어놓을 수 없는 문제가 됐다.
류사라 연출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약물에 중독됐던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처음 중독 장애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한다. 마약 이슈가 자극적으로 보도되기 쉬운 만큼, 중독장애를 좀 더 자세하게 다루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극단 선단 사일의 <신의 바늘>은 마약에 중독된 두 청소년 명진(문병설 분)과 지우(김하람 분)의 이야기다. 마약을 기반으로 위태로운 우정을 나누는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간다. 지난 2024년 12월 13일부터 22일까지 더줌아트센터에서 공연됐다.
지난 12월 30일, 서울 모처에서 류사라(활동명) 연출을 만나 연극 <신의 바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류 연출과의 일문일답.
축소하지도, 증폭시키지도 않고 중독 장애를 다루다
▲<신의 바늘> 공연 사진
류지원 연출 제공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류사라라고 하고요, 3년 전부터 연극으로 작·연출을 하게 된 '작업인'입니다. 연극을 하기 전에는 폭력의 관성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신화적인 메타포를 통해 벽화 같은 그림을 그려내는 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 극단 선단 사일 소개도 부탁드려요.
"선단 사일은 만든 지 1년밖에 안 된 단체예요. 첫 작품을 할 때 함께했던 친구들을 모아서 만든 예술인 그룹입니다. 기존의 극단 같은 형식보다는 정신적인 유기체 같은 모임인데, 독립적인 예술인들이 각자의 배를 가지고 함께 모여있다는 의미로 '선단(船團)'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보통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잖아요? 한 배에 예술인 사공들이 많이 탄 게 아니라 예술인들이 각자의 배에 사공인 채로 만나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어요, 기존의 극단 형식은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유기체로 인식되기에 너무 좋았거든요."
- <신의 바늘> 공연을 끝낸 소감이 어떠신가요?
"아무도 다치지 않은 채로 잘 끝내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막상 끝나고 나니까 막 기쁘진 않습니다. 충족감이 들지는 않아요, 제가 만들어 내는 것들이 대부분 저랑 맞닿아 있는 것들인데, 이렇게 가상의 재현이 끝났어도 실제 삶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게 더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무력한 것 같기도 하고 좀 복잡한 감정이 있어요."
- 관객들의 반응들이 잘 느껴지시나요? 관객들이 이 작품에서 어떤 부분을 매력적이라고 느꼈다고 생각하시는지.
"SNS 반응들을 보면 여러 방식으로 읽혔던 것 같아서 좋았어요. 안전망으로서의 책임이 필요하다는 지점을 읽어내신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내가 왜 청소년이 마약을 한 얘기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불평하시기도 하고요. 위태로운 구조 안에서 쉽게 중독 장애를 판단하는 우리를 돌아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마약이라는 주제 자체는 늘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주제를 자극적인 부분만 다루는 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다뤘다는 점, 그리고 두 주인공이 중독을 경험하는 과정들을 관객이 목격할 수 있다는 점들이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 연출님의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된 작품이잖아요. 중독 장애에 대해 고민하게 된 특정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미국에서 유학할 당시 약물은 흔하게 접할 수 있었어요. 중독 문제는 어디 가면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이슈였거든요. 제 아래층에 살던 남자의 여자친구랑 친해지게 됐는데 그 애가 자기 오빠의 중독 재활을 도왔던 일을 얘기하면서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앞으로 한국도 이런 일을 겪게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이 문제의 명암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신의 바늘> 공연 사진
사진 제공 : 류사라 연출
- 사실 미국은 주마다 약물에 관한 법이 다르잖아요. 미국에서의 경험과 한국적인 맥락을 결합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한국에 와서도 여러 약물 사용자들을 접하면서 미국과 다른 한국만의 약물 사용 문화도 알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미국과는 양상은 다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위험한 형태를 띠기도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는 자연 성분의 약을 구할 수 있는데 한국은 어려우니까 더 심한 의료용 약물을 구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저는 한국인들이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회복 탄력성이 더 적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거죠."
- 그런 다른 맥락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신경 썼던 부분이 있을까요?
"리서치의 일환으로 약물 중독 상담 센터를 찾아서 교육을 받았어요. 성인과 청소년의 중독 양상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을 듣기도 했고요. 특히 저희가 약물 중독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약의 기운을 과장하거나 중독의 감정을 좋고 나쁨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했어요. 중독 때문에 갑자기 쓰러져서 죽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고 막 행복하다는 것도, 어느 하나가 유일한 사실은 아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과장하거나 증폭시켜서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 특히 배우들이 연기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연출적으로 조언했던 부분이 있다면.
"외적인 부분에선 각성과 이완의 상태를 나눠서 신체적인 반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조언을 했던 것 같아요. 각성 상태에서는 말초 신경이 자극되니까 눈을 깜빡이는 속도나 자극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요. 반면에 이완 상태에서는 서 있는 자세나 말하는 속도, 발음의 정확성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고요.
내적으로는, 삶에서 경험하는 기쁨과 고통이 약물을 통해서 얻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약물이 경험하게 해주는 기쁨과 고통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며, 그 바깥에 무언가 의미 있는 게 있지는 않다는 얘기를 자주 했어요. 이걸 잊으면, 약물 표현이 과장되기가 쉬워요. 그래서 감각을 침범하는 강한 자극을 표현할 때는 과도하고 불필요하지 않도록, 그 이유가 명확한지를 고민했습니다."
-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사운드와 조명이 반복되죠. 연극 시작 전에 트리거 워닝까지("3초 뒤에 이 연극에서 가장 큰 소리/가장 밝은 불빛/가장 어두운 암전 상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려 깊은 배려가 인상 깊었습니다. 중독 장애를 이렇게 표현하고자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누군가에게는 트리거가 될 수 있으니 응당 사전에 말씀드리는 게 맞지만, 그러한 통제할 수 없는 자극만큼 약물의 효과나 부작용에 대해 표현하기 적절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런데 트리거를 유발할 수 있는 작품의 경우 이렇게 사전에 고지하는 공연들은 꽤 많아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여러 노력의 일환인거죠. 처음에는 빔프로젝터로 자막까지 띄우고 싶었는데 무대 여건상 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가지고 창작하기
▲<신의 바늘> 공연 사진사진 제공 : 류사라 연출
- '작업인'으로 활동하시면서 다양한 사회적 이슈도 다루실텐데, 이런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는 지원님만의 방식이나 태도가 있을까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창작자라면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이슈를 '갖다 쓴다'는 자각이 있어야 해요. 지금의 연극에는 소수자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거든요. 미투와 세월호 이후에 점점 더 그런 주제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추세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키워드만 갖다 쓴 채 대상에 대한 리서치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요.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걸 다루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럽고 죄책감이 들어야 마땅해요."
- 재현 윤리에 대한 고민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혹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으셨는지.
"제 나름의 해답은, 저와 연관된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연관되지 않거나 알 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하고 싶지 않고요. 내 죄책감을 살짝 추동시켰다는 이유만으로는 갖다 쓰지는 않으려고요."
- 다음에 준비 중인 연극이 있으신가요.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지금 준비 중인 작품 중에는 몸의 털을 다루는 게 있어요. 그 외에도 시의성 있고 공연화되기 좋은 한국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찾아다니고 있는데요, 그걸 계속 기다릴 순 없으니 제가 직접 쓰기도 하고요. 항상 땅에 붙어 있는 한국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 이번 작품도 그렇고 몸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가장 직관적으로 여러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더 많은 관객과 다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몸은 각기 다르지만, 그 다른 부분들에서 느끼는 감각들을 분해하고 심화시켜서 고찰하다 보면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 외에는 고립된 자매가 겪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어요. 그런데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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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중독된 두 주인공,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