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密室)은 '밀폐된 방'을 의미한다. 요즘에는 외기를 차폐한 공간이라는 의미보다는 외부의 침입을 적극 방어하는 장소의 의미가 크다. 패닉룸, 벙커, 쉘터, 안가 등의 이름으로 최근 우리에게 친숙한 말이 되었다. 밀실 안의 사람이나 밖의 세상이나 두려움과 답답함을 가지기는 한 가지일지라도 말이다.

밀실의 서스펜스를 그려낸 이야기가 개봉되었다가 최근 OTT에 스트리밍 하기 시작했다. <인간중독>으로 임지연이라는 배우를 선보인 김대우 감독이 헤로인만 바꾸어 비슷한 분위기의 치정 스릴러를 내놓았다. 이 밀실 서스펜스의 <히든 페이스>는 여러 모로 다양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상징이 드라마 서사의 단골인 불륜과 복수라는 치정 상황이고, 특히 '밀실'이라는 공간적 특징이 주는 함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촉망받는 마에스트로 성진은 결혼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하다.
촉망받는 마에스트로 성진은 결혼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하다. 넥서스엔터테인먼트 앤뉴

마에스트로 성진(차승원)의 약혼자 수연(조여정)은 결혼을 앞두고 돌연 영상편지 하나를 남기고 자취를 감춘다. 수연의 모친 혜연(박지영)마저 카드 사용, 출입국 기록 등 생활 반응이 없자 수상함을 느끼지만 좀처럼 그녀의 행방을 알아낼 수가 없다. 이때 수연의 자리를 대신할 첼리스트 미주(박지현)의 등장으로 성진은 흔들리는 본능과 수연의 행방불명에 대한 걱정이 교차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수연이 차갑게 식은 성진을 각성하기 위한 자발적 밀실 감금이 원인이 되는데, 수연은 밀실에서 벗어나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까.

밀실이라는 공간의 이중성

밀실과 관련된 이야기는 제법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다. 1919년 작의 고전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부터 좁은 관 속에서의 사투를 그린 <베리드>, 익숙한 <올드보이>의 초반부가 떠오른다. <페르마의 밀실>, <큐브>나 <쏘우>등 방탈출 게임 형식의 작품과 그 옛날 명화 극장의 <빠삐용>의 독방신도 떠오른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주된 인물이 특정한 작은 공간에 갇혀 있는 처지라는 점이다. 타의에 의해 자유와 인신이 구속된 상태에서 탈출을 도모하는 궁극의 과제 달성의 서사가 있다.

 밀실 스릴러의 대표작 <패닉룸(2002)>
밀실 스릴러의 대표작 <패닉룸(2002)> 출처=소니 픽쳐스 코리아

반대의 경우가 있다.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자발적인 감금을 하는 경우다. 제목만 들어도 알게 되는 조디 포스터와 어린 시절 크리스틴 스튜어드의 <패닉룸>이 대표적이다. 외부의 침입과 공격을 대비해 은폐와 엄폐가 수월한 공간으로 찾아드는 설정은 의외로 많다. <클로버필드 21>도 외계생명체의 침공을 피해 찾아든 쉘터에서의 사건 사고를 다룬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자발적 감금을 하는 이야기도 있다. 배우 조재현이 첫 연출한 <화려한 휴가>의 주인공 강재(박혁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밀실의 서사는 다양한 형태지만 크게 두 가지의 양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갇혀있는 사람의 시선에서 나가려는 의지와 스스로 가두려는 노력이다. 자유와 인신의 구속을 피해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사투도 있지만, 외부의 위험과 자극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발적 폐쇄도 있다. 영화 <히든 페이스>에서의 밀실은 이 두 가지의 의미가 모두 작동하는 혼재의 공간이 주인공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심리의 이중성, 자아의 이중격을 의미하는 '히든 페이스'라는 제목은 제법 적중한다.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라는 삼각관계의 설정과 첼리스트라는 소재의 스릴러는 2004년 고 이은주, 엄지원, 한석규 주연의 <주홍글씨>도 잠시 떠오르게 해 준다. 밀실이 설계된 옛 집주인이 성공한 친일파의 후손이며, 그 친일 행위가 생체실험 의사였기에 외부와 단절된 패닉룸이자 쉘터가 필요했다는 설정 또한 작금의 현실을 투영하는 듯 해 흥미롭다.

 첼리스트 수연과 미주
첼리스트 수연과 미주 넥스트엔터테인먼트 앤뉴

욕망과 관음의 이중주 스릴러

영화 <히든 페이스>의 스토리라인은 제법 단순하다. 서사만큼 결말마저 밋밋한 이야기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영화 작품 하나가 아닌 장르와 콘셉트의 중의적 설정이 여러 다른 영화들을 호출하고 이야기 서사가 주는 의미가 지금의 시대적 상황을 빗대어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은 의외의 수확이 아닐까 싶다.

밀실은 감금과 폐쇄라는 상황이 주는 압박의 공포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밀실의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관음의 장치를 만나게 된다. 밀실에 갇힌 자들을 감시하는 일도 관음의 일종이고 반대로 밀실에 숨어든 시선에서 밀실 밖을 주시하고 모니터링하는 일도 일종의 엿보기가 된다. 영화 <히든 페이스>에서의 관음도 일방이 아닌 갇힌 자와 가둔 자의 쌍방 행위로 묘사된다.

 관음은 어쩌면 쌍방의 상호적 작용일지도 모른다
관음은 어쩌면 쌍방의 상호적 작용일지도 모른다 넥스트엔터테인먼트

타인의 수치와 괴로움은 이따금 구경거리가 되곤 한다. 당사자가 아닌 제 삼자의 이야기는 늘 위험하기 마련이다. 타인 주장의 배척으로 이유로 삼는 경험, 주장, 추측은 반박의 변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실보다 관념이 앞선 주장에는 늘 나는 되고 너는 안돼 식의 억지가 섞이기 마련이다. 이렇듯 관음의 타당 여부에도 늘 자기만의 올바름이 존재한다. 늘 자신만의 올바름으로 세상을 애써 가르는 마음을 '진정성'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극 중 미주는 수연에게 "진짜 삶이라는 것이 있냐"라고 묻는다. 진짜, 즉 진실과 사실이 충만한 것 말고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진짜라고 우기지 않냐고 말이다. 지금 우리는 커다란 관음의 세상을 살고 있다. 관찰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인플루언서와 셀럽의 일상을 엿보고, 인스타그램 등 SNS 도 온통 그 연장선이다. 지지리도 복 없는 빈곤과 곤궁의 모습을 내보내 모금을 유도하는 빈곤 포르노식의 기부 마케팅은 어떠한가? 그 안에 진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가두는 것은 폭력이지만, 꺼내 주는 일은 호의

어릴 적 술래잡기가 기억난다. 좁은 집에 대식구가 북적대던 유년기에 이층 집에 살던 녀석의 초대는 특별한 일이었다. 방방이 문을 열고 닫아도 몇 개를 여닫았는지 금세 잊어버리게 만드는 당시 기준 저택에서의 술래잡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 좁디좁은 집에서도 척척 숨어대던 나였기에. 술래의 열 세기 시작이 되기 무섭게 이층으로 올라 먼저 봐두었던 구석방의 다락장으로 숨어 몸을 납작히 뉘어 숨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술래는커녕 인기척 없는 컴컴한 다락방 안에는 쌕쌕이는 내 들숨 날숨만 커져 가고 있었다. 술래는 절대 못 찾을 것이라는 뿌듯함은 이내 나를 잊은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스스로 나가 잡히고 말까, 아니 못 찾겠다 꾀꼬리에 맞추어 짜잔 하고 나타나야지 하는 어디 쓸데없는 딜레마로 시간을 보내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누군가 어깨 흔들어 깨운 밖은 저녁 때가 되었고, 친구들은 집에 가버렸다는 식모 누나의 핀잔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나를 못 찾은 것인지, 일부러 안 찾은 것인지, 아니면 잊어버린 것인지 속모를 집주인 녀석 속셈 헤아림에 쉬이 잠들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밀실이라는 공간은 자의와 타의를 통틀어 갇힌 입장에서는 단절과 잊힘이라는 공포를 안기 마련이다.

 한 사람 때문에 세상 모두가 스토커가 된 기분이다.
한 사람 때문에 세상 모두가 스토커가 된 기분이다.김택환

요즘 언뜻 이해가 어려운 사건의 보도가 연일 뜨겁다. 언뜻 들어 떠올릴 개념조차 없는 말들이 넘쳐 난다. 그 뜨거움을 유지하는 이유는 변죽들의 거들먹 거림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이념과 주장 이전에 진실과 상식이 작동해야 제대로 된 세상이 유지될 것이다. 관념과 이념 뒤에 늘 사건, 사고의 진실은 숨어 버린다.

지금 세상은 한 사람의 셀프 감금으로 혼란 그 자체다. 한때 고위 공무원이었고, 한 시절 국가의 통수권자라는 사람이 자신의 위법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피하고자 권한에도 없는 인의 장막과 실제 철조망, 차벽을 두르고 커다란 밀실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고 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을 미필적 고의의 관음자로 만들고 있다. 매시간 동태를 살피고 변동 사항을 체크한다. 이것이 '정치적 관음증'이라 지적받아도 어쩔 수 없다. 한 사람 때문에 나라가 온통 병들었다.

가두는 것은 폭력이 될지 모르지만, 꺼내 주는 일은 언제나 호의가 있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늦지 않게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밀실 스릴러 한 편을 소개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 예정입니다.
영화리뷰 조여정 송승헌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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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T컴퍼니(IBM, NTT)에서 비즈니스 디벨로퍼로 퇴직 ; 바람들어 사랑하는 아내 여니와 잘 늙어 가는 백수를 꿈꾸는 영화와 야구 좋아라하는 아저씨의 끄적임. 정치.경제.사회 그리고 일상에 대한 글을 나눕니다. <원순씨를 부탁해>의 저자. 다수의 독립잡지에 영화, 드라마 리뷰, 비평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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