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특유의 가치관 중 하나로 '다테마에(겉마음)'란 표현이 있다. 단지 일회성 유행이 아니라 중세 센고쿠 시대로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개념이다. 썩 긍정적인 의미가 아님에도 일본 내에서도 '국민성'으로 수긍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한국인도 겉과 속의 차이가 제법 있다는 평판을 듣지만, 그런 표리부동의 끝판왕 격이다. 우리가 흔히 일본인에 대해 갖는 선입견, 처음에는 정중하고 배려심이 깊은 것 같지만,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일정하게 벽을 치고 속내는 다른 경우가 많다는 이미지가 바로 다테마에다.
어쨌든 대놓고 무례한 것보다 낫지 않냐는 인식도 나올 법하지만, 이런 속성은 필연적으로 '한 사람 몫'이란 또 다른 집단주의적 면모와 연결된다. 겉보기엔 티가 나지 않아도, 좀 유별나거나 집단의 질서를 벗어나면 멸시하거나 따돌리는 '이지메'로 연결된다. 그런 면모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원자화와 맞물려 인간 소외를 불러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가 생겨도 티를 내지 않고 은폐되다 보면 곯는 편이다. 일이 곪아 터진 후에야 비로소 진상이 파악되는 셈이다.
유무형의 상처를 입은 이들, 사회적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공론화하길 꺼리는 풍조는 그들의 상황을 더 은폐하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사회 역시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방관으로 일관한다. 그 결과는 사회 통합력의 저하와 폐쇄적 집단/개인의 확산이다. 상대적으로 종교 영향력이 그리 강하지 않던 일본 사회에서 논란 많은 신흥종교나 그들만의 고립된 집단, '인간 증발' 현상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건 그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에서 일본 영화의 상징적 이름 중 하나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 <파문>은 그런 지점과 딱 맞아떨어지는 접속 통로로 우리를 이끈다.
집 나간 남편이 10년 만에 돌아온 집에서 발견한 낯선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