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재미있다. 하지만 불쾌하다. 3편 제작에 본격 돌입한 픽사 스튜디오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인크레더블> 1편에 대한 감상이다.

픽사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등장한 6번째 장편 애니로, 픽사의 작품 가운데선 처음으로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애니 업계 최고 명문으로 알려진 칼아츠를 대표하는 인재 브래드 버드의 출세작으로, 그는 <인크레더블> 성공 뒤 <라따뚜이>를 만들어 픽사의 한 기둥이 되고,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로 염원하던 실사영화 연출까지 해낸 할리우드의 걸출한 인물이 된다. <토이스토리> 시리즈와 <니모를 찾아서>가 연달아 성공한 뒤 매너리즘에 빠질까 우려했던 픽사 입장에선 브래드 버드의 영입이 신의 한수였던 셈.

실사영화로 한동안 외유했던 브래드 버드가 마침내 돌아와 직접 <인크레더블> 시리즈 속편 제작에 돌입할 수 있었던 건 이 시리즈가 픽사 안에서도 존 라세터 류의 작품과 다른 독특한 영역을 이루고 있는 덕분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인크레더블>은 픽사가 그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마음 따뜻해지는 동화만 만드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린 작품이다. 픽사의 외연을 넓히면서도 기술의 혁신과 서사의 재미, 빼어난 연출솜씨를 빠뜨리지 않아 영화를 20년이 흘러서까지 찾아보는 이 많은 명작 반열에 올렸다. 속편을 기다리는 이 많은 확고한 인기시리즈로 자리매김해 시원찮은 신작들이 고전하는 와중에서도 확실한 선택지가 되어준다. 픽사 입장에선 고마운 작품일 밖에 없는 일이다.

인크레더블 포스터
인크레더블포스터픽사

은퇴한 슈퍼히어로의 권태로운 삶

영화는 슈퍼히어로가 암약하는 세상, 왕년엔 세계 최강이라 불렸던 은퇴한 히어로의 가정을 중심으로 한다. 주인공은 '미스터 인크레더블'이라 불렸던 사내 로버트 밥 파, 그는 제게 걸맞은 여자 히어로 엘라스티 걸과 결혼해 부부가 된다.

한편, 히어로의 활약은 가뜩이나 어지러운 세상에 더욱 큰 혼잡을 야기한다. 의도는 선할지라도 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온갖 문제가 잡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기물이 부수어지고 때로는 평범한 사람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통상의 영화라면 그쯤은 무시하고 살포시 넘어갈 텐데, 이 영화는 도무지 그렇지가 않다. 시민들이 하나둘 히어로에게 소송을 걸고 마침내는 법으로 히어로가 초능력을 쓰며 활동할 수 없도록 제도가 마련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결과 미스터 인크레더블과 엘라스티 걸은 평범한 남편과 아내로 가정에 충실하기로 한다. 히어로에서 은퇴하여 보험회사 직원과 가정주부로 무려 15년을 보내는 것이다. 전부 해피엔딩일 것만 같은 결정 뒤로 흐른 15년의 시간은 이들에게 아들딸 두 아이와 단란한 가정, 그리고 권태를 안긴다. 그동안 흠잡을 곳 없던 왕년의 영웅은 흠 잡힐 곳 많은 평범한 아저씨로 거듭난다. 가정에 충실한 보통의 가장이란 의미 있지만 그다지 멋지지는 않다. 로버트 밥 파는 잘 나갔던 자신이 평범한 중년 사내가 된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학수고대하던 비밀스러운 명령이 하달된다. 본토와 멀리 떨어진 섬으로 가서 웬 기계병기들과 싸우라는 것. 남몰래 다시 히어로가 된 기분일까, 로버트 밥 파의 일상은 그로부터 다시 생기가 감돈다.

인크레더블 스틸컷
인크레더블스틸컷픽사

슈퍼히어로 일가족의 예고된 승리

이후 이야기는 다시금 금지된 슈퍼히어로로 되돌아가고픈 이와 그를 위협하는 음모, 슈퍼히어로를 지키려는 히어로 가족들의 활약이 뒤엉킨 한바탕 활극으로 꾸려진다. 로버트 밥 파가 외딴 섬에서 마주한 건 신드롬이란 이가 꾸민 계략으로, 그는 슈퍼히어로를 섬으로 불러들여 제거한 뒤 도시를 공략하고 마침내 도시가 위험에 처했을 때 영웅처럼 나타나 무주공산이 된 영웅 자리를 차지하겠단 심산이다.

흥미로운 건 신드롬에겐 타고난 초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한때는 그저 슈퍼히어로를 선망했던 어린아이가 그들에게 증오를 품고 그들을 제거한 뒤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마음먹었단 사실, 말하자면 영화는 그로부터 슈퍼히어로와 보통의 사람을 극명히 대비시킨다.

<인크레더블>은 슈퍼히어로 가족의 예고된 승리로 나아간다. 그저 승리에서 그치지 않고 악당인 신드롬의 무참한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 가족의 시선에서 신드롬을 악당으로 그리며, 주인공들과 감정선을 공유하도록 하고 신드롬을 적대하도록 하는 솜씨가 카타르시스라 해도 좋을 만큼의 통쾌감으로 이어진다.

인크레더블 스틸컷
인크레더블스틸컷픽사

나는 이 영화가 불쾌하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에 불쾌감을 느낀다.

어째서 시민은 영웅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어째서 시민은 영웅이 될 수 없는가. 어째서 영웅은 태생적으로 시민들과 다른가. 어째서 영웅의 가능성은 유전되는가. 어째서 영웅을 고소한 시민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는 질책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가. 어째서 혁명은 오직 '신드롬'을 통해서만 일어나며, 어째서 신드롬의 반란마저 끝끝내 좌절되어야 하는가. 어째서.

태생부터 시민과 다른 존재인 영웅들에게도 나름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들이 받는 고통은 태생적으로 영웅이 될 수 없는, 그래서 특별해질 수 없는 일반 시민들의 소외감에 비한다면 그다지 대단치 않을 것이다. 여기서 영웅이 느끼는 본질적 고독에 대해 논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영화 속 영웅들에겐 돌연변이적 영웅의 고독이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스타의 그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신드롬이 느꼈을 고통은 어떠한가. 영웅이 되고 싶지만 태생적으로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통은? 영웅에 대한 소시민적 동경마저 이기적인 스타 앞에서 산산조각 나버린 순간에 그가 느껴야 했던 아픔을 짐작이나 할 수 있는가. 영화 내내 미움 받는 악역이었던 신드롬에게서 '저 위대한 영웅가족' 못지않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음에도 그의 비틀려져버린 심성을 안쓰러워하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어째서 신드롬은 그런 재능을 가지고도 파멸이 예정된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인크레더블 스틸컷
인크레더블스틸컷픽사

비범한 영웅과 평범한 악당의 부조리한 관계

나면서부터 영웅인 그들의 세상을 동경하고 그에 편입되고자 했던 신드롬의 시도는 영화초반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좌절되고 만다. 그 이유는 신드롬이 나면서부터 영웅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후일 영웅들을 위협하게 되는 그의 빛나는 재능은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신드롬이 속한 사회는 시민들과 영웅들을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할 만큼 포용력있는 사회가 아니었던 것이다. 영웅은 영웅으로, 시민은 시민으로 살아가야 했던 이 좁은 사회에서 시민으로 태어나 영웅이 되길 동경했던 신드롬이 가진 꿈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로버트 밥 파, 즉 인크레더블과 그의 가족의 입장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이런 시선 속에서 희생되는 건 인크레더블과 맞서는, 혹은 그의 존재감에 압도되는 이 사회의 소시민들 뿐이다. 영웅이 아닌, 그리고 솔직한 아들의 입에서 나온 진실처럼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이들은, 영웅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도 멋있지도 훌륭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존재들이다. 그런 인간이 영웅이길 꿈꾸었던 대가는 그 얼마나 컸던 것인가.

물론 신드롬의 파멸은 상당부분 그 자신의 탓이었음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신드롬을 대하는 시선은, 신드롬이 어째서 파멸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신드롬과 같은 꿈을 가진 또 다른 소년에게 그의 주변인들이 신드롬이 받았던 것과 같은 시선을 던진다면 그는 또 한 명의 신드롬이 될 것이다.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생활 속 많은 분야에서 영웅들에 익숙해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또 한 명의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영화가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에 반대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크레더블 픽사 브래드버드 애니메이션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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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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