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지? 구슬땀을 흘리며 300배를 마치고 속으로 생각했다. 풀리지 않는 고민을 따라가다가 작년부터 불교 공부를 시작한 터였다. 전공 교수님도, 진로 상담사도 해결하지 못한 나의 마음에 부처님은 다르지 않을까. 마침, 청년들을 위한 수련 캠프가 열렸다고 해서 잽싸게 신청했다. 고행을 마치고 쭈뼛쭈뼛 법사님께 향했다.

: "뭐든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살고 싶어요."
법사님 : "그런 건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 "노력하고 약간의 운이 따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법사님 : "완벽하게 사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 자기 자신을 인정하거나, 그냥 만족하세요."

절까지 찾아갔는데, 똑같은 대답이 돌아오다니. 사실 교수님과 진로 상담사의 조언도 같았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못난 나를 견뎌야 한다나. 하지만 모자란 20대는 해가 넘어가도 집착을 버리지 못했고. 새해가 밝은지 겨우 일주일 지났는데, 일기장에는 벌써 '부족한 내가 답답하다'고 적었다. 날이 선 일기장을, 누군가 뺏었다.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어. 내가 장담하지. 아무래도 오랫동안 기다려 온 현자(賢者)를 만난 거 같다.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영화 <서브스턴스> 장
영화 <서브스턴스> 장(주)NEW

내가 만난 현자는 영화 <사랑과 영혼>, <어 퓨 굿 맨>, 그리고 <서브스턴스>의 배우 '데미 무어'다. 그가 밟아온 필모그래피나 유명세를 보면 삶에 그림자가 없었을 거 같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2019년 발간한 자서전 <인사이드 아웃>에서 그는 어머니에 의해 매춘을 강요당했던 어린 시절, 순탄치 않았던 사랑, 화려한 톱스타로 살아가며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고통받은 지난날을 고백했다.

그렇게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버텨온 45년을 지나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서브스턴스>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의 쾌거를 터뜨렸다. 상을 받기 위해 오른 무대, 무어는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충격에 빠졌다. 45년 넘게 이 일을 하며 배우로서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운을 뗐다.

그리고 30년 전, 자신을 만난 한 제작자가 '연기는 별로지만, 인기는 많은 배우'라 의미로 "팝콘 배우"라고 비꼬았던 순간을 회고하며 "연기자로서 인정받지 못할 거라고 믿어왔다"고 돌이켰다. "그러다가 마법 같고, 대담하고, 용기 있고, 완전히 미친 대본이었던 <서브스턴스>를 만나게 되었다. 우주가 나에게 아직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고 했다.

무어는 "이 영화가 전하고 있는 한 가지 메시지를 말하고 싶다"며 "스스로 똑똑하지 못하거나, 예쁘지 않거나, 날씬하지 못하거나,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적 있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한 여성이 내게 '당신은 결코 충분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런 잣대를 내려놓으면 당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이 상은 나의 온전함과 사랑의 표시이자, 사랑하는 일에 속했다는 걸 상기시켜 준다"고 했다.

무어가 말한 것은 '충분하지 않음'의 감각이었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적어도 나만은 그 기준을 내려놓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할 때 찾아오는 자유와 평안에 대한 경험담이었다. 누구보다 빛나게 살아온 그조차 완벽함을 손에 얻지 못했고, 이젠 얻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의 수상 소감은 유유히 흘러가 나의 불완전함과 만났다.

불완전해도 괜찮은 '나'

 5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서브스턴스>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미 무어.
5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서브스턴스>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미 무어.로이터=연합뉴스

20대는 누구나 불안정한 시기라고 하지만, 나의 발은 유난히 후들거렸다.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간극이 커서 그렇다고 믿었다. 원하는 일에 붙고, 좋은 성적을 받고,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이상하게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결점투성인 내가 언젠가 들통날 거 같아서. 바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거품' 같은 사람이라는 걸 들킬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간극이 컸던 건 내가 보는 나와 진짜 나의 차이였다. 사람들의 눈이 틀린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보는 거울이 깨진 거였다. 그 사실을, 불교를 공부하며 깨달았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공(空)하다. 그렇다면 쪼그라들고 거품 같은 나도 괜찮지 않은가. 보들보들한 불완전함의 감각이 나를 훑고 갔고 일기장의 내용이 조금씩 바뀌었다.

악플러라고 해도 믿을 만큼 나의 일기장에는 부끄럽게도 자기 비하가 많았다. 똑똑하지 못하고, 예쁘지 않고, 밑바닥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적었다. 마치 데미 무어가 자신을 "평생 배우로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 단언한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 예감은 사실일지 모른다. 무어만이 행운을 만나 비껴간 거일 수 있다. 나는 평생 무엇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끝끝내 완벽함과 멀어진 채 부유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나. 충분하지 못한 나의 20대를 끌어안으면 안 될까. 그렇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무어의 나이가 된다 해도. 그처럼 웃음진 얼굴로 주름들 수 있다면 충분할 거 같다. 그렇게 2025년 일기장의 첫 줄을 지우고 다시 쓴다. 부족한 내가 답답하지 않다. 답답하다 해도 나는 충분하다. 불완전해서 완벽하다. 나는 온전한 사람이다.

영어에서 'im'은 부정적인 뜻을 의미하는 접두사인데, '나(I'm)'를 뜻하는 축약어도 된다. 완벽하다는 'perfect' 앞에 붙이면, 불완전한 혹은 결함이 있다는 뜻인 'imperfect'가 된다. 또는 '나는 완벽하다(I'm perfect)'가 되기도 한다. 불완전하지만, 그 상태로도 충분하기에 완벽한 나라고 해석해보면 어떨까.

올해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보려 한다. 완벽을 추구하는 뾰족한 잣대를 내려놓고 온전한 자신을 찾은 데미 무어처럼 말이다. 그의 수상 소감 덕분에 숨 쉬는 게 빠듯하지 않은 새해다.
데미무어 서브스턴스 골든글로브 20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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