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내한 공연
본인 촬영
지난 6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 예스 24 라이브홀에서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이 열렸다. 어두운 조명과 연기 가운데에서 첫곡 'Reckless'를 부르던 세인트 빈센트(본명 애니 클라크)의 희미한 실루엣이 들숨과 함께 뚜렷해졌다. 관객을 위해 포효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번 공연은 뻔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1982년생인 세인트 빈센트는 2007년 데뷔 후 단 한번도 뻔했던 적이 없는 아티스트다. 신스팝부터 인더스트리얼 록, 슈게이징, 소울, 월드뮤직에 이르기까지 커리어 내내 수많은 장르를 해체 후 재조합하기를 반복한 실험가다. 음악사의 거장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최정상급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최절정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물론, 거장 데이비드 번과도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스펙트럼 역시 흔치 않다.
세인트 빈센트의 음악 문법은 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팝의 절대 권력이 된 빌리 아일리시는 물론, 이날 오프닝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 세인트 빈센트의 노래를 커버한 백예린까지 모두 그녀의 영향권에 있다.
이번 내한 공연은 세인트 빈센트가 지닌 다채로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됐다. 세인트 빈센트는 두번째 곡부터 자신의 시그니쳐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듯 육중한 퍼즈 사운드, 정교한 태핑 연주에서는 잭 화이트 같은 정통파 기타리스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6일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린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의 내한 공연본인 촬영
부끄러운 가정사를 담은 노래 'Pay Your Way In Pain'에서 눈을 치켜뜨고 적극적으로 몸짓을 펼칠 때는 영락없는 연극 배우나 행위 예술가였다."내가 누구라고 생각해!"라며 비명을 내지르고 무대 위에 드러눕는 'Broken Man'의 카타르시스도 상당했다. 이는 이는 올해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얼터너티브 앨범상 후보에도 오른 신보 < All Born Screaming >(모든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태어난다)의 주제 의식과도 가장 잘 어울렸다. 세인트 빈센트는 '비명'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음악으로 승화하고자 했다.
음악은 다소 난해하고 실험적일지언정 관객에게 다가가는 태도는 한없이 가까웠다. 무언가에 홀린 듯 땅을 기어다니다가도 관객의 손을 잡고, 그들의 휴대폰을 집어드는 모습은 여느 팝스타와 다르지 않았다. 잔잔한 노래로 알려진 'New York'을 부르다가 관객들 위로 드러눕는 모습은 모두의 예상을 깼다. 세인트 빈센트에게 라이브 공연은 단순히 준비한 곡을 연주하고 끝내는 곳이 아니라 친절한 만남의 장이기도 했다.
이날 세인트 빈센트는 공연 중 '최고의 동료들과 세계를 여행하며 팬들을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직업'을 예찬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유작 < Blackstar >에서 연주를 맡았던 드러머 마크 길리아나, 벡(Beck)과 노엘 갤러거의 투어 기타리스트 제이슨 포크너, 베이시스트 샬롯 켐프 뮬 등 각자의 음악 세계를 갖춘 뮤지션들도 '원 팀'이 돼 세인트 빈센트의 정교한 음악 세계를 완성했다. 함께 호응을 유도하고, 연극의 출연진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Flea' 같은 곡에서는 소소한 안무를 선보이기도 했다.
21세기 뮤지션 세인트 빈센트는 20세기 전설들의 이름을 소환한다. 묘한 분위기의 목소리는 케이트 부시를, 커리어 내내 온갖 장르의 벽을 해체하는 아방가르드의 미학은 생전 그녀에게 기타를 선물한 데이비드 보위를 닮았다. 정제되지 않은 막춤은 2012년 앨범을 협업한 데이비드 번을, 기타를 치면서 선보이는 현란한 스텝은 프린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제는 베테랑 아티스트인 그녀에게 전설들의 이름을 빌린 수식어도 너무나 상투적이지 않는가. 재능 있는 예술가는 전세계에 많다. 그러나 이 세상에 세인트 빈센트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세인트 빈센트뿐이다. 전설의 길을 걷고 있는 아티스트를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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