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스틸컷
㈜미디어캔, ㈜영화특별시SMC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직 동화 집필에 집중하기 위해 힘들게 공무원이 된 단비(박지현)는 불법 음란물 단속이 주 업무인 청소년보호팀으로 가게 된다. 그날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1인 시위 중인 황 대표(성동일)와 접촉사고를 낸다. 가벼운 충돌이라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게 오산. 클래식카 수리비로 1억 원이란 거액을 듣고 당황하게 된다.
공무원 수입으로 1억 원을 선뜻 갚는다는 건 어림도 없었다. 마침 스타 작가가 필요했던 황 대표는 글로 갚으라는 파격 제안을 하게 되고 단비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힘들게 공무원이 됐건만, 낮에 하루 종일 불법 음란물을 보는 처지가 되니 성관념에 혼란이 오고, 밤에는 시간을 쪼개 동화 작가의 꿈을 이루려고 애쓰다 보니 과부하가 걸려 버린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일단 돈부터 갚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뛰어들게 됐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대충 레퍼런스를 참고해서 짜깁기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고장 난 기계처럼 애먹던 하루하루. 청소년보호팀에서 근무하는 선배 정석(최시원)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해 나간다. '아니, 왜 재능이 하필 여기서 터지는 거냐고!' 단비는 순위권으로 쭉쭉 올라갈수록 자신감이 솟아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잘하는 일과 해야 할 일의 내적 갈등
영화는 단비의 내적 갈등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한 성장에 주목한다. 사실 동화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뭔지 모를 목표를 향해 전진하기에 바빴다. 꿈, 명예, 돈도 아닌 아버지의 미완의 꿈을 대신 이루려 했던 부채감을 쌓아갔다. 그게 본인 꿈이라고 착각하며 전력 질주했건만 헛발짓만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좌절한다.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뜻밖의 재능을 발굴할지 누가 알겠나. 채권자이지만 재능을 발견해 준 황 대표에게 엎드려 절해야 할 판이다. 그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글이면 된다는 자본주의 논리를 탑재한 사람이다. 야설이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은 편견일 뿐 성인 로맨스 장르는 엄연한 문학임을 설파하며 단비를 변하게 만든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불완전한 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니기 힘들고 기대 수명도 길어졌다. 그래서일까. 빨라진 정년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일은 흔한 풍경이다. 자연스럽게 N잡러도 늘어났다.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고 먹고살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 해야하는 세상인 거다. 고정수입은 확보했고 플러스로 재능까지 겸비했다면 축복인 셈이다. 바쁘게 사느라 잊고 지낸 꿈이 있다면 한 번쯤 다시 떠올려 보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단비의 이중, 아니 삼중 생활은 MZ 세대에게는 필연으로 읽힌다. 이제는 한 우물만 파서는 생존과 생활에 어려움이 생겨버리는 당연한 이치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도 어려운데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는 호사를 누린다. 내친김에 인기까지 얻자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 먹고살기 어려워진 마당에 수익과 재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일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단비는 꽤 운이 좋은 캐릭터다. 걸림돌 하나 없이 쾌속 진행이다.
주변 사람도 잘 뒀다. 친구와 선배가 나서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 낸다. 어릴 적부터 아빠에게 배운 글쓰기의 기초, 장르를 넘나들어 이야기의 '재미'를 캐치할 줄 아는 능력은 소위 '팔리는 글'을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스스로 혼란 속에 머물기만 한다. 성인 웹소설은 쓰레기라는 편견, 문예창작과 출신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에 얽매여 자아실현의 기회를 잃을 상황이 이어진다.
초반 매력이 떨어지는 후반의 아쉬움,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