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반드시 완벽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야기에 따라 미완성형 주인공들이 완성형이 되어 가는 과정도 대중에겐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은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 12월 26일 시즌2 공개 후 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중에 주인공 기훈(이정재)에 대한 다양한 평과 감상이 나오는 중이다.

시즌1 때 게임 우승자로 456억 원을 손에 넣었지만 자신을 빼고 모두 사망한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기훈은 폐인처럼 지낸다. 상금으로 게임을 설계한 주체와 사람들을 게임장으로 이끄는 딱지남(공유)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시즌2에선 보다 긴장감 넘치는 게임 진행 중 기훈은 본인의 경험을 살려 사람들을 독려하고, 나아가 서로 싸우는 게 아닌 같이 주최자를 잡자며 이끌기까지 한다. 정작 캐릭터를 연기한 이정재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지난 2일 서울 삼청동에서 배우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바보같은 성기훈? 의도된 것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 공식 예고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 공식 예고편.넷플릭스

온라인 커뮤니티나 해외 유튜브 채널을 보면 유독 성기훈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보는 평가가 이어진다. 거액의 상금을 받은 자가 왜 다시 게임장으로 갔는지, 그리고 사람들을 살리겠다며 시도한 것들이 모두 처절한 실패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론 등 말이다. 일부에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 리더가 되면 벌어지는 일이라며 성기훈 캐릭터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당연히 그런 반응은 나올 거라 생각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그 게임에 다시 참여한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경각심을 주는 어떤 리더의 역할을 하려 한 것이지. 결과가 좋았다면 기훈이 바보 같아 보이진 않으셨을 텐데, 노력하는 데도 실패하니까 답답함이 드실 것이다. 거기다 절친한 친구까지 죽음을 맞이하잖나. 기훈이 가장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과 상황을 추슬러서 헤쳐나갈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기훈이 너무 어두워졌다는 것도 흐름상 맞다고 본다. 456억 원이 통장에 찍힌 걸 봤지만 결국 노숙자로 살아왔잖나. 그리고 두 번째 게임장에선 오영일이라는 캐릭터를 만나며 무언의 심리적 싸움도 한다. 기훈이 아닌 다른 캐릭터를 통해 웃음을 주니 그 부분에선 저도 욕심을 버렸다."

시즌2에선 게임 진행자인 프론트맨이 노골적으로 기훈을 조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훈 또한 시즌1에선 순수하게 자신들 주변 사람을 챙기고 지키려 했다면, 이번엔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은 불가피하다며 눈앞에서 희생당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모습을 보인다.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겠다는 생각은 전편의 기훈이라면 전혀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로 시위할 때도 소수든 다수든 희생은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었잖나. 그랬지만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막기 위해 그런 방법까지 써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이지. 그걸 아주 예리하게 오영일(이병헌)이 지적한 것이고. 그래서 프론트맨의 '영웅놀이가 재밌었나'라는 대사가 굉장히 재밌는 것이다. 사람 살리겠다고 한 기훈의 모든 노력들은 사실 하지 말았어야 한다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훈의 좌절감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대사지."

양심의 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성기훈을 연기한 배우 이정재.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성기훈을 연기한 배우 이정재.넷플릭스

이정재는 바닥까지 떨어진 기훈이 시즌3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 짚었다.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 또한 인터뷰에서 세 개의 시즌 중 가장 좋아하는 게 시즌 3라고 말했듯, 모든 이야기가 완결되는 시즌3에 대한 기대감이 이정재도 커 보였다.

"시즌1 때 주제가 제 개인적으론 선한 마음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고 느꼈다. 근데 시즌2, 3을 찍으면서 가장 크게 와닿은 건 양심이란 단어였다. 남에게 보이지 않지만, 기훈은 자신이 아는 양심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런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아졌으면 하는 게 감독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양심을 감추고 좋지 않은 상황을 피하거나,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랬다 할지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도망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 뿐 아니라 이정재는 지난해 스타워즈 세계관의 스핀오프인 <애콜라이트>에 출연하면서 글로벌 활동에 본격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중에 마블 영화 시리즈에도 나오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까지 나온 상황. "마블 이야기는 나조차도 들은 게 없어서 미국 에이전시에 물어보기도 했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워낙 보안이 중요하니까(웃음). <애콜라이트> 때도 내가 출연하는 분량까지만 시나리오를 받았다. 촬영장에선 사진을 못 찍게 하고. 그게 할리우드 방식이지. 넷플릭스도 그렇다. 개런티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제게 중요한 건 얼마인지 보단 넷플릭스와의 관계였다. 국내 계약이야 제 소속사에서 하지만 미국 활동 계약은 CAA에서 다 하거든. 딱 하나만 부탁드렸다. 다른 조건들은 다 괜찮으니 넷플릭스와 관계가 너무 경색되지 않게 유연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관계가 안 좋을 정도로 무리한 요구로 계약하면 한국에서 내가 욕 먹는다고 했지."

영화 <헌트>를 연출하며 감독의 자질도 선보인 이정재는 한국영화산업 침체기지만 더욱 다양하고 재밌는 한국 콘텐츠를 만들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징어 게임>의 성과라면 전 세계에 한국 콘텐츠의 재미를 알린 것인데, 너무 지금 제작 편수가 줄었다"며 "1년에 150편 가량 나오던 대중영화가 30편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일단 편수를 늘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복수 이상의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제가 아니더라도 재밌는 시나리오들이 나와서 제2의 <기생충> <오징어 게임>이 나와야 한다. 해외 합작 프로젝트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기회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해외에서 관심이 많다. 이럴 때 일수록 협업이 중요하다."
이정재 오징어게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