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페리먼트의 '배리스와 트래비스'
(주)새인컴퍼니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간수와 죄수, 간수와 간수, 죄수와 죄수 사이의 직·간접적 커뮤니케이션은 계속해 일어난다. 그러나 영화에서 나타나듯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옳지 않다고 느꼈어도, 고립과 소외에 대한 두려움 및 힘 있는 주류에 속하고 싶은 인간의 강한 욕망이 '침묵의 나선'을 그리며 상황을 바로 잡지 못한다.
간수 중에도 분명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 자는 있었다. 그러나 소수인 그의 의견을 계속해서 피력했을 때 행여 본인이 짊어져야 할 소외와 압박, 그리고 간수라는 힘 있는 주류의 자리에 끼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운 심리는 스스로 목소리를 닫게 했다. 본인의 도덕 의지와 인간성에 따라 영화 내 약자인 죄수의 편에 서서 도움의 행위를 보인 간수는 결국 권력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주류의 위치에서 배척당하게 된다. 많은 죄수들 중 유일하게 소신의 목소리를 냈던 트래비스 역시, 혼자 하는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서 '노엘레 노이만(Elisabeth Neolle Neumann)'이 주장한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의 하나인 '침묵의 나선 이론'이 떠오른다. 소수의 입장에 속한 인간이 침묵하게 되는 원인은 곧 인간 심리 저변에 깔린 타인으로부터 오는 부정적 평가와 소외의 두려움, 혼자 짊어져야 할 목소리의 무게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어디에서나 형성될 수 있는 여론이 결국 감옥 실험 내에서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발현된 것은, 힘 있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며 결국 승자의 편에 서고 싶은 인간의 강한 권력 의지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건 권력에 주눅들지 않는 미약한 저항의 힘이 시작됐고, 지금 우리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말한다. 스스로 권력 있다 하는 자, 스스로를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약자라 여기는 자, 스스로를 제한하지 말기를 바란다. 인간성의 '건강한 회복'이 있을 때 비로소 '참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약하고 슬픈 '인간성 상실'에 단호히 안녕을 고하고, 회복된 인간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민낯'이 진정 깨끗하고 아름답길 기대한다.
▲영화 속 '죄수와 간수'(주)새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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