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리티+> 스틸컷
찬란
03.
"칩을 장착한 멤버들은 이제 새로운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 리얼리티 + >에서 핵심은 목뒤에 삽입하는 형태로 작동하는 '리얼리티+'라는 이름의 칩이다. 이 칩을 삽입하고 나면 초기 설정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외형과 목소리를 구현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마치 RPG(Role-Playing Game)에서 캐릭터의 외형을 커스터마이징하는 듯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유일한 제약 사항은 12시간의 발현 작동 이후 12시간은 뇌를 쉬어줘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선택이나 권고적 사항이 아닌 강제력을 가진 사항으로 사용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셧다운(Shut-down)된다.
타인이 리얼리티 칩을 삽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목뒤의 십자가 표식을 확인하는 일이 유일하다. 그의 칩이 활성화되는 12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함께하는 일을 제외하면 그렇다. 사실 영화 속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기술을 활용해 외면을 수정한 상태로 일상생활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렇다고 길거리의 모든 행인까지 목뒤의 표식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태생의 자연스러움과 기술에 의한 인위적인 형상에 대한 근원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시각이 담겨있다. 리얼리티 칩을 활용해 외형을 바꾸는 일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시대적 설정이 이 작품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주인공인 뱅상(빈센트 콜롬보 분)이 리얼리티 칩을 활성화해서 뱅상+(아우렐리엔 뮬러 분)가 된 상태로 스텔라+(바네사 헤슬러 분)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서로가 활성화된 상태로 가상의 외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채지만, 그 사실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되레 호감을 느낀다. 이후 가까워지는 과정에서도 서로의 활성화 시간에 대해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식의 대화가 이어진다. 첫 연락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뱅상이 자신의 활성화 시간을 숨기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이는 잘 보이고 싶은 대상 앞에서 굳이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본능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04.
"10분 남았어요.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리얼리티 칩을 둘러싼 첫 번째 사건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이 CLUB+로 향하며 발생한다. 입구에서 목뒤의 칩을 확인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CLUB+에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것 같다. 실제로 클럽 내부에는 인위적인 외형을 가진 예쁘고 잘생긴 이들만 존재한다(이쯤 되면 보조 출연자를 포함한 캐스팅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뱅상+는 이곳에서 사고로 인해 칩의 시스템 오류를 경험하게 되며 순간적으로 활성화 상태가 해제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모두가 서로의 가면을 쓰고 보는 공간에서 혼자서만 현실을 마주하고 내보이게 되는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그는 홀로 도망쳐 나온다. 리얼리티 칩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뱅상은 뱅상+와 달리 배 나온 아저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어서다.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외형을 변화시키는 기술에 기대어 현실의 자신을 감추는 건 활성화 일정이 12시간뿐이다. 이런 강제적 제약으로 인한 여러 불편함 - 일정이 엇갈릴 경우 서로 만날 수 없을뿐더러, 실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 아니라면 활성화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 만나는 도중에도 헤어져야 하는 일 - 외에도 불의의 경우 자신의 민낯을 의도와 무관하게 내보여야 한다는 불안을 담보로 한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자면, 사회의 어두운 쪽에서는 이 불안을 없앨 수 있다는 믿음을 거래의 용도로 삼아 '영구적 활성화'에 대한 욕망을 일으키는 이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칩 영구 삽입(Last longer)이 여기에 속한다. 30~40유로 정도만 지불하면 원래의 제약을 깨고 24시간 동안 활성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물론 합법의 영역에서는 벗어나 있다. 극 중에서는 클럽 사건을 겪은 뱅상이 집으로 돌아와 꾸는 꿈속의 일화로 그려지지만 (이 장면에서 영화 <서브스턴스>와의 연결 고리가 되는 이미지가 등장한다.) 클럽 화장실의 문 뒤편 등에서 광고성 스티커를 발견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존재하는 불법적인 기술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