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수 2억6500만 회, 시청시간 22억 시간.

넷플릭스 시리즈 콘텐츠 부문 역대 1위 작품의 기록이다. <웬즈데이>, <기묘한 이야기 시즌4> <다머> <브리저튼> <퀸스 갬빗> <종이의 집 파트4> 등 쟁쟁한 작품들이 시청수와 시청시간 TOP10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공고한 1위를 지키고 있는 건 놀랍게도 한국에서 제작한 순수 한국 작품이다. 바야흐로 K콘텐츠 전성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시리즈물 <오징어 게임>이 그 주인공이다.

몇 년 전 해외 OTT서비스 업체 관계자와 만나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서구 작품들에선 좀처럼 만나기 어렵던 만화적 세계관이 있는 작품들, 이에 더하여 시공간을 알 수 없는 배경에서 전개되는 기발한 이야기가 한국 작품 가운데 단연 눈에 띈다 하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파격적 전개를 한국 콘텐츠가 실사 작품으로 해낸다는 점이 특히나 인상적이라고. 그가 아시아, 또 한국 콘텐츠를 얼마나 보았을지는 알 수 없겠으나, 한국 콘텐츠에 대하여 격찬을 하도록 한 데 <오징어 게임>의 존재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오징어 게임>은 <도가니>부터 <수상한 그녀>를 거쳐 <남한산성>까지 꽤나 잘 만든 작품들을 연달아 내었음에도 상업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던 황동혁의 2021년 작이다. 한국에 막 상륙한 넷플릭스와 손을 잡고 만화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펼쳐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각각의 이유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막장 인생들의 사연이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긍정적 평가부터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위시한 비슷한 설정의 작품이 여럿이란 점에서 약간의 변주에 불과한 아류작이 아니냔 비판까지 일었다. 그 모두는 공개 즉시 <오징어 게임>이 거둔 어마어마한 성공과 긴밀히 관계를 맺고 있을 터다.

오징어 게임 시즌2 포스터
오징어 게임 시즌2포스터넷플릭스

넷플릭스 역대 1위, 속편도 성공적?

최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전작의 성공세를 그대로 이어가려 작심하고 제작한 야심작이다. 전작과 동일하게 외딴 섬에서 막장 인생들을 모아두고 진행하는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이 중심된 설정으로, 전작의 주인공이자 우승자인 기훈(이정재 분)이 게임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돌아와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전작에선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책임자 프론트맨(이병헌 분)이 전작의 오일남(오영수 분)이 그러했듯 신분을 위장해 게임에 참여한다.

이야기는 우승 상금으로 수백억을 거머쥔 기훈이 오징어 게임의 실마리를 붙잡으려 고투하는 과정으로 출발한다. 모텔을 통째로 사서 은신처로 삼고 제가 돈을 빌렸던 사채업자들을 역으로 고용해 제 수족으로 부리며 오징어 게임 참가자를 섭외하려는 이들을 뒤쫓는 모습이 여느 첩보영화 못잖게 긴장감이 넘친다.

어려움 끝에 마침내 딱지맨(공유 분)을 찾아낸 기훈이 그를 기화로 다시금 섬에서 열리는 게임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건 필연적 귀결이다. 그 과정에서 제 형을 찾아 섬에 잠입했다 겨우 살아난 경찰 준호(위하준 분)와 팀을 이뤄 안팎에서 협조하기로 한 건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이로써 오징어 게임의 존재를 알고 그를 파괴하려 하는 단 두 명의 인물이 손을 맞잡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게임에 돌입한 기훈은 홀로 이 게임의 잔학성을 예상한 채로 게임을 막기 위해 분투한다. 기대와 달리 잠들어 옮겨지는 사이 몸에 심은 위치추적기가 제거돼 외부의 도움을 바랄 수 없게 된 건 아쉬운 일이나, 그렇다 해서 포기하기엔 그간 치른 희생과 원한이 너무나도 크고 깊었던 것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오징어 게임 시즌2스틸컷넷플릭스

멈추려는 자, 이어가려는 자

<오징어 게임> 시즌2는 게임을 중단시키고 인명피해를 막으려는 기훈과 그의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 상황을 중점적으로 잡아낸다. 이를 위하여 작품은 전에 없었던 설정 하나를 두는데, 하나의 게임이 끝날 때마다 게임을 중단하고 적립된 상금을 나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을 참가자들에게 주는 것이다. 때문에 게임이 끝날 때마다 투표가 이뤄지고, 참가자들은 지속하려는 이들과 돌아가려는 이들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로 인하여 이야기는 전작과 같은 틀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구조로 흘러가지 않는다. 전작은 참가자들 간 내분이 있기는 하였으나 참가자를 줄여 제가 상금을 독차지하려는 것에 그치는 것이었다면, 시즌2는 그와 같은 심리가 고스란히 투표로 이어져 마치 정치적 갈등처럼 공식적으로 표출되게 된다. 두 패로 갈린 이들은 서로를 혐오하고 나아가 증오해 제거하려는 시도를 할 정도에 이른다. 기훈이 이를 막아보려 하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궁지에 몰린 이들이 큰 돈을 눈앞에 두고 쉬이 동할 리 없다.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차별점이자 주된 승부수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룰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끌려온 이들이 게임을 꾸리는 자들과 적대하는 대신, 그들끼리 두 편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광경의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섬 바깥의 법이며 도덕이 그들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으므로, 또 이 섬 안에서 빚어질 일을 섬 바깥의 이들은 알지 못하기에, 이들 중 적잖은 수가 게임을 지속하여 다른 이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을 이어가길 원한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오징어 게임 시즌2스틸컷넷플릭스

전작에 없던 설정, 볼 맛을 더하다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니냐고 나서는 이가 한줌도 되지 않고 그 목소리도 미미하다. 저의 이익 앞에 도덕과 윤리, 가치 따위가 무력하게 무릎 꿇는 광경을 이 드라마는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 편으로 그와 같은 가치가 사회 가운데 얼마만큼 무력하게 휘날리고 있는지도 이 작품은 내보인다. 이야기의 초입, 내가 아니면 네가 죽는 러시안룰렛 게임 가운데서 '가위바위보 하나빼기'에서 하나를 빼지 않아 동료 대신 제가 죽음을 맡는 어떤 이의 희생은 그와 같은 일이 지극히 이례적이란 사실을 더더욱 일깨우게 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전작에서 찾을 수 없던 구성에 더하여 전작보다 짜임새 있는 전개로써 관객을 흥미진진한 이야기 가운데로 이끈다. 이것이 파격적 설정을 가진 작품이 지닌 가장 주요한 문제, 즉 그 설정이 이미 공개된 상황에서 오는 한계를 상당부분 효과적으로 덮어낸다. 바로 이와 같은 장점이 <오징어 게임> 시즌2를 전작에 이어 다시 한 번 글로벌 시청 1위로 밀어올린 것이 아닐는지.

그럼에도 작품은 너무나 큰 문제 또한 노출하고 있다. 그건 성공한 시리즈가 흔히 마주하는 것이기도 한데, 규모를 키우며 더 알려진 배우들을 기용하는 데서 오는 문제다. 특히 한국 배우를 해외에 소개하는 걸 넘어 국제적 스타로 만들 수 있는 확실한 길이기도 한 <오징어 게임> 시즌2엔 전작에 얼굴을 비추지 않은 유명 배우가 수두룩하게 새로 캐스팅됐다. 임시완, 강하늘, 이진욱, 박성훈, 양동근, 이다윗, 최승현(TOP) 등 규모 있는 작품에서 주조연 경력이 있는 소위 스타급 배우들이 여럿 포진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오징어 게임 시즌2스틸컷넷플릭스

안이한 선택이 불러온 한계

문제는 <오징어 게임>이 게임을 통해 죽을 자와 살 자가 갈리는 설정을 가진 작품이란 데 있다. 확고한 주인공 외 주조연 여럿을 알려진 배우로 쓰고, 정말이지 그들 모두가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관객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그 기대를 얼마쯤 배신한다. 알려진 배우는 죽지 않고 모르는 배우는 죽겠거니,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또 한 편으로 영화는 안정된 연출에 치중한 나머지 성공한 작품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을 또 하나 저지르고 만다. 성공한 작품들이 더 많은 관객을 만족시키고자 더 대중적 성격을 갖게 되는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예고된 갈등, 예정된 신파, 적당한 웃음, 적절한 쾌감 따위의 것들. 전작이 기대하지 못한 방식으로 관객에 충격을 안겼다면,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더 많이 손질한 기성품처럼 익숙하게 실망스럽다.

이와 같은 선택이 <오징어 게임 > 시즌2를 더 나은 성취로 데려갈지, 그 반대일지를 쉬이 확신하기 어렵다. 작품은 분명 전작보다 만듦새가 나아진 구석이 적잖고, 또 위에 적은 것처럼 분명한 실망감을 안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황동혁과 제작진을 응원할 밖에 없는 것은, 이 작품이 얼마만큼의 고민과 수고로움 뒤에 만들어진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탓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시즌2 황동혁 이정재 이병헌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