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언 머피는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다. 천의 얼굴을 연기로 표현하는 뛰어난 배우이지만, 묘할 정도로 깊고 푸른 눈빛, 서글서글하지만 속 깊어 뵈는 선이 굵은 얼굴을 가진 연기자다. 할리우드에서 촉망받고, 현대의 거장인 크리스토퍼 놀란을 비롯 명감독들의 러브콜을 쉴 새 없이 받으면서도 그는 다양한 연기와 독립영화에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특히 고국 아일랜드에 대한 깊은 애정을 안팎으로 자주 피력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배우의 2편의 주연작을 근 20년의 시간 차이를 넘어 연결해볼 기회가 생겼다. 200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최신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그 주인공이다. 전자는 1920년 전후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대영제국에 맞서 절망적인 투쟁을 거듭하던 독립투사로, 후자는 비교적 현재와 근접한 1985년, 독립을 획득한 아일랜드 지방 소도시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중년 노동자로 분하는데, 마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주인공 '데미안'이 살아서 후손을 남겼다면 어쩌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빌'이지 않을까 상상할 정도다.
물론 총을 들고 생사를 넘나들던 데미안과 평범한 노동자 빌이 처한 환경은 무척 다르긴 하다. 하지만 데미안이 전우이기도 한 형과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처분을 놓고 대립할 때 견지한 원칙적 입장과 빌이 평생 믿고 따르던 가톨릭교회의 위선에 직면했을 때 위험을 감수한 결단은 한 핏줄처럼 닮은꼴이다. 고리대금업자가 투쟁에 자금지원을 한다 해서 그가 동포를 대상으로 자행하는 악덕을 눈감아줄 것인가 질문은 반세기가 넘게 흐른 뒤에도 아일랜드 사회의 보수성을 대변하는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못 본 척할 지로 통한다. 킬리언 머피라는 아일랜드 배우의 출연만으로 그런 순환고리가 완성된다면 과도한 연상일까?
그날 새벽 성실한 석탄배달부는 무엇을 보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