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더쿱디스트리뷰션
흥미롭게도 <시빌 워>는 전쟁이 아닌 로드 트립에 나서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종군 기자인 네 주인공은 백악관으로 향한다. 내전 발발 이후 대통령과의 첫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그러나 서부군이 먼저 워싱턴 D.C.와 백악관에 당도한 나머지 그들은 계획한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한다. 이는 여정의 목적을 맥거핀으로 이용하고, 그 대신 여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로드 무비 작법에 정확히 들어맞는 전개다.
리, 새미, 조엘, 제시의 여정은 그 자체로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선 내전의 참혹함을 강조한다. 언제 어디서나 시체가 등장하고, 민병대와 군인이 전투를 펼치며, 무고한 시민 사이에서 폭탄이 터지는 불안정한 상황이 끊이지 않는다. 휴지조각이 돼 버린 미국 달러 대신 캐나다 달러로만 물건을 살 수 있고, 그저 고향이 홍콩이거나 피부색이 검은색이라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내전으로부터 거리를 두도록 유도한다. 제시는 베테랑 사진 기자이자 롤모델인 리로부터 전쟁 지역에서 취재하는 법을 배운다. 총격적인 중인 군인들과 동행하면서 가장 생생하고 정확한 현장의 순간을 포착하려 한다. 그런데 묘한 연출 때문에 이 과정은 내전이라는 맥락과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치열한 총격전에 우스꽝스러운 힙합 음악을 더해서 전투 중인 양 진영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 같은 블랙 코미디를 의도하지도 않는다. 마지막까지 주요 장면 대부분은 퓰리처상을 수상해야 할 것 같은 흑백 보도사진 구도로 구성된다. 진중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관객을 철저히 관찰자 시점에 머물게 한다. 강렬한 음향 효과 덕분에 살 떨리는 현장감이 강조되고, 갈수록 전쟁 분위기가 짙어지는 후반부에서야 주인공들에게 몰입할 여지가 생겨난다.
영화라는 사진전
그러다 보니 <시빌 워>를 보다 보면 질문 하나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왜 하필 사진 기자 시점에서 내전을 다룰까?'라는 의문이다. 애초에 내전이라는 스펙터클 속에 관객을 빠트리고자 했다면, 극 중 등장한 인물 중 더 적합해 보이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이나 각 진영에 속한 군인들만 내세워도 내전을 충분히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전투 현장을 구체적으로 묘사할수록 내전의 참혹함도 더 직관적으로 전해질 수 있다.
사진 기자의 본질을 따져 본다면 <시빌 워>의 독특한 구성과 형식, 연출과 편집은 비로소 하나의 의도를 보여준다. 사진 기자는 언제나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어떤 순간은 사진으로 남기고 어떤 순간은 흘려보낼지 필터링을 하는 게 그들의 업이다. 사건과 현장에 일부러 몰입도, 공감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누구보다 냉정하게 가치를 평가하고, 사진만으로 사건의 의미를 극대화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시빌 워>는 일종의 사진전 같다. 내전에 관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최소한의 설명만 붙는 보도 사진과 유사하다. 즉, 관객들이 미국의 두 번째 내전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즐기는 것은 애초에 목적이 아니다. 꼭 미국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내전으로 표출될 정도로 양극화된 사회적 갈등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면서 그 위험성을 곱씹게 만드는 게 본 의도인 셈이다.
이는 후반부 링컨 기념관 공방전, 워싱턴 D.C. 시가전, 백악관 공성전, 백악관 내부 전투를 <시카리오>나 <제로 다크 서티>처럼 영웅적 묘사 없이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내전이라는 혼란상을 장르 영화로서 영위하는 대신 가까운 미래에 대한 경고로 활용한다. 언제 내전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회적 갈등의 개인적, 공동체적 책임과 의무를 한 번쯤은 성찰하게 만드는 현실의 거울이나 다름없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더쿱디스트리뷰션
제시와 리의 관계성은 사진전이라는 의도를 한 번 더 강조한다. 제시는 이제 막 현장에 발을 내디딘 사진기자다. 그녀는 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정 하나를 앞세워 워싱턴 D.C.행 여정에 동행한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주유소 장면이 대표적이다. 주유소 주인은 피범벅이 된 남성 둘을 매달아 놓고 그들을 죽일지 말지 제시에게 묻는다. 예상 못한 상황에 제시는 그대로 주유소 주인 앞에서 얼어붙는다.
베테랑 사진기자 리는 다르다. 주유소 주인을 두 남자 사이에 세운 후 차분히 사진을 찍는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제시에게 냉정히 종군기자의 덕목을 일러준다. 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총알이 빗발치고 폭발이 난무한 전장이더라도 관찰자로서의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못하겠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안타깝게도 <시빌 워>는 영화 외적인 이슈로 인한 평가절하를 피할 수 없다. 우선 흥행을 고려한 선택이겠지만, 로드 무비를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로 포장한 포스터와 예고편이 아쉽다. 겉포장을 보고 커진 기대를 영화 본편이 충족하지 못하면 실망감은 배가되니까. 예고편과는 전혀 다른 전개와 결말 때문에 혹평을 피하지 못했던 <조커: 폴리 아 되>처럼. <시빌 워>가 그 다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더라도 놀랍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4월 개봉한 미국과 달리 12월을 선택한 국내 개봉일이 특히 불운하다. <시빌 워>는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의 폐해와 그로 인한 부정적인 미래를 묘사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내란이라는 모습으로 최악의 미래가 이미 현실에 당도해 버렸다. 경고문이 너무 늦게 도착한 셈이다. 그 결과 한 달 전이었으면 폐부를 찔렀을 메시지의 위력은, 진중하게 쌓아 올린 완성도가 무색하게도, 현실의 벽 앞에서 반감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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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