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합니다. 남녀관계의 사랑만을 대우하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대중문화를 향해 퀴어의 관점으로 질문을 던져 봅니다.[편집자말]
(* 이 글은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 2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조현주(박성훈 배우)'였다. 극 초반, 베일에 싸인 그녀의 진가는 게임을 진행할수록 드러난다.

현주는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실격 위기에 처한 한 참가자를 돕는다. 다친 참가자를 부축하기 위해 뛰어든 '성기훈(이정재 배우)'의 반대편에 그녀가 있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약자를 도와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은 앞으로의 전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게임도 현주는 기복이 없이 치른다. 처음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어느 팀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다가, 내성적으로 보이는 '영미'가 먼저 같이 하자고 제안한 후 노인, 무당 등 인기 없는 이들과 팀을 이룬다. 영미가 게임의 첫 관문인 딱지치기에서 고전하자 현주는 '뒤집어서 치면 잘 된다'라고 조언하면서 통과하게 돕고, 나머지 참가자들을 침착하게 격려한다. 그리고 최종 관문인 제기차기를 보란 듯이 성공하며 실질적 리더 역할을 수행한다.

트랜스젠더 현주

 ‘현주’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여성으로 정체화한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다. 우승상금으로 태국에서 성확정 수술을 마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게임에 참가했다.
‘현주’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여성으로 정체화한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다. 우승상금으로 태국에서 성확정 수술을 마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게임에 참가했다.넷플릭스

트랜스젠더 역할의 '현주'는 <오징어게임> 시즌2의 캐릭터 공개 때부터 이목을 끌었다. 1·2편을 통틀어 이렇게까지 복합적 캐릭터는 없었기에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가 특전사 중사 출신이라는 건 또 하나의 반전이었다. 단순히 총격전에 능숙한 트랜스젠더라는 캐릭터 설정이 극의 재미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우리나라만의 현실이 담겨있다. 그만큼 MTF 트랜스젠더(Male to Female·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경우)와 군대는 지극히 한국다운 설정이다.

한국은 징병제 국가이기에 남성이라면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 보통 20대 초반에 군 입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성 확정을 고민 중인 트랜스젠더라도 건강 상태에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입대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MTF 트랜스젠더 대부분은 군 입대와 제대를 거친 후에야 본격적인 '트랜지션'을 시작한다. 트랜지션은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게 외모를 바꾸거나, 때로는 호르몬 요법이나 외과 수술 등을 통해 신체 특징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트랜스젠더의 삶

트랜스젠더인 현주에게 <오징어게임> 시즌2의 단체 생활은 어땠을까. 작품 속 현주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모호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트랜스젠더는 겉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많지만, 극 중 현주는 성확정 수술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남녀로 구분된 화장실을 가는 것부터 쉽지 않다. 남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게임의 룰이 공개되기 전, 힘이 센 사람만 생존할 것으로 생각되는 분위기에서 번번이 소외당한다. 다만 <오징어게임> 시즌2 속 아이들의 놀이는 단순히 힘의 논리로만 경쟁하는 게임이 아니다. 무궁화 꽃피었습니다, 딱지치기, 공기놀이, 둥글게 둥글게 등 오히려 순발력과 디테일로 승부가 판가름 나는 게임들이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하는 게임일수록 때로 가장 중요한 자세는 이타심이다.

트랜스젠더 현주의 정체성은 게임 참가 목적에서도 남들과 다른 미묘함이 드러난다. 사업이나 투자 실패로 진 빚을 갚기 위해 게임에 참가하게 된 이들의 비율이 높지만, 현주는 그저 오직 자신이 바라는 자기 모습으로서 살기 위해서 성 확정 수술을 받을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감당할 수 없는 일확천금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돈을 가질 수 있게 됐을 때, 이 게임을 멈추는 데 투표한다.

현주가 반가운 이유

 배우 박성훈이 연기한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의 '조현주' 캐릭터 포스터
배우 박성훈이 연기한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의 '조현주' 캐릭터 포스터넷플릭스

사실 <오징어게임> 시즌 2의 트랜스젠더 캐릭터 등장이 알려진 이후 국내 시청자들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전재준'으로 스타덤에 오른 박성훈 배우가 과연 얼마나 트랜스젠더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트랜드젠더 역할을 꼭 시스젠더(의학적으로 지정된 성별과 성별정체성이 같은 사람) 남성 배우가 맡았어야 했는지 여러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징어게임> 시즌2에 트랜스젠더 역할이 있다는 게 반가웠다. 우리나라에서 퀴어 장르를 표방한 영화나 드라마를 제외한 장르에서 성소수자 캐릭터를 담아내는 건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오징어게임>은 시즌1에서도 탈북민 새벽(정호연)이와 외국인 노동자 알리(아누팜)을 등장시키며, 여러 소수자의 이야기를 녹여냈다. 우리 현실 속에 분명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드라마 등에 잘 등장하지 않은 인물을 그려내는 건 그 자체로도 뜻깊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세계적인 OTT 플랫폼인 만큼, 자체 제작하는 콘텐츠에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중요시해 왔다. 실제로 해외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는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오징어게임> 시즌2의 트랜스젠더 현주와 같은 역할이 시즌3에서도 또 다른 작품에서도 이어지길 바란다. 현실에서 수많은 성소수자가 존재하는 만큼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이들이 자연스레 등장하기를 희망한다. 차별과 편견의 시선이 아닌 다양한 성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할 때,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의 장벽도 서서히 무너지지 않을까.
오징어게임 박성훈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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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도시생활자를 위한 팟캐스트 <개인사정>을 진행하며, 에세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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