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너무 많은 생(生)을 짊어지게 한다. 새해로 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꼬박꼬박 앞으로 뜨는 태양이 원망스러울 만큼 2024년의 말미는 어두웠다.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해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광화문으로 향했고 이번에는 추모 리본과 함께였다. 그들은 무엇을 안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이끄는 존재가 있었다. 시대에 먼저 투항한 자들, 맞서 싸운 자들, 그렇게 떠나간 자들. 1909년, 한 사내가 기차역에서 총성으로 편지를 썼다. 떠나간 동지들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갔으니, 당신도 그렇게 하라고. 그래야만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막막한 현실에 자꾸만 주저앉게 되는 광화문의 우리에게 안중근이 편지를 보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영화 <하얼빈> 스틸컷
영화 <하얼빈> 스틸컷CJ ENM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게 된 과정을 내면적으로 풀어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는 영웅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끝없이 흔들리고, 삶의 유약함을 견디며 마침내 살갗이 벗겨지는 한 인간의 탈피를 느끼고 싶다면 영화 <하얼빈>은 그만한 안중근의 숨을 머금고 있다.

시작은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전쟁 포로까지 잡았지만, 안중근은 척결이 아닌 만국공법에 따라 풀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받치는 분노를 삼키는 동료들을 설득하며 일본군을 보내줬으나, 그들은 철저히 무장하고 다시 돌아와 독립군 일대를 처참히 몰살한다.

안중근은 왜 일본군을 풀어줬을까. 그는 핏발이 선 일본군의 눈에서 인간성을 발견했다.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하고, "군인으로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변명하는 일본 군인에게서 자신과 똑같은 사람임을 느낀 그는 "4천만 일본인을 다 죽인다고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그들을 돌려보낸다.

이 선택은 두고두고 안중근의 발목을 잡는다. 신의를 잃은 동료들은 그가 변절했다고 의심하고, 먼저 떠나간 동료들의 시체는 꿈속에서 아른거린다. 점점 조여오는 수사망에 이토 히로부미 암살 계획까지 흐트러지자, 그는 완전한 슬픔에 잠긴다. 그럼에도 "실패하더라도 저항하지 않는다면 떠나간 동지들의 삶이 사라지는 것"이라 단언하고, 그들을 떠올리며 하얼빈에서 총구를 겨눈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는 저항에 대한 초월성이다. 일제 치하 속에서 나라를 잃게 된 이들은 끈질기게 저항하며 의문을 품는다. 일본 군인 한 명을 죽이고, 나의 목숨 하나를 잃는다고 독립이 찾아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점처럼 끊어진 오늘의 투쟁이 독립의 도화선이 된다고 믿기에.

"앞서 나간 동지들의 삶이 계속돼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란 영화 대사처럼, 안중근과 그의 동료들은 거사마다 떠나간 '앞선 자'들을 기리고, 또 자신들의 외침을 듣고 투쟁할 '산 자'를 기다린다. 세상은 단번에 바뀌지 않고, 인간은 찰나를 산다. 기댈 수 있는 건 과거와 오늘, 미래의 찰나가 부딪혀 일으킨 공명에 세상이 바뀔 거라 믿는 마음. 그렇게 1909년 하얼빈에서 2025년으로 불어온 저항의 마음이다.

국회·남태령·광화문에서 만난 '고결한' 사람들

 영화 <하얼빈> 스틸컷
영화 <하얼빈> 스틸컷CJ ENM

영화 <하얼빈> 속 안중근이 보여준 인간성에는 저항 정신만이 깃든 것이 아니다. 극중에서 어느 일본군은 미친 듯이 안중근을 추적하는데, 사실 그는 안중근 덕분에 풀려난 전쟁 포로였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 둘째 치고, 집착에 가까운 그의 마음은 애국심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런 속내를 알아본 건 안중근의 동지였다.

"안중근의 고결함이 싫은 거냐. 너 같은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니"라는 말에 일본군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고결함, 인간성의 극치에 다다른 사람만이 감히 품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던가. 안중근처럼 자신을 보존하겠다는 생존 본능과 이기심을 누르고 나라와 세상을 위해 맞서 싸운 사람에겐 고결함이 있다. 그 티 없음이야말로 악에 물든 사람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감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하얼빈> 속 안중근의 고결함이 대단하지만, 낯설지 않았던 건 영화 밖 현실에서 이를 품어낸 사람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남태령에서, 광화문에서 함께 연대하며 추운 겨울에 투쟁을 이어간 시민들부터, 참사가 벌어지자 유가족들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내민 도움의 손길까지. 그들의 눈빛에서 내가 매번 읽어냈던 건, 거사를 앞둔 한 사내의 눈에서도 차오르던 푸르른 고결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조선이란 나라에는 권력과 국가를 맞바꿔 먹는 이들과 그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민초들이 있다. 그리고 을사조약을 맺은 1905년에서 120년이 흘러 2025년, 다시 을사년을 맞았다. 안중근의 저항과 고결함을 이어받은 우리들은 어떤 편지를 쓰게 될까. 부디 <하얼빈> 속 독립투사들처럼 한 편의 저항시를 쓸 수 있길 바란다.
하얼빈 안중근 현빈 박정민 조우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