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문에는 "불운한(starcrossed) 한 쌍의 연인이 목숨을 끊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불운한 연인은 로미오와 줄리엣인데, 희곡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 티볼트와 머큐쇼를 불운한 연인으로 재조명한 작품이 국내에 첫 선을 보인다. 바로 연극 <스타크로스드>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티볼트는 줄리엣의 가문인 캐퓰렛 가의 충직한 일원이고, 머큐쇼는 로미오의 친구로 몬테규 가문과 가깝다. <스타크로스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개를 충실히 따르되, 티볼트와 머큐쇼의 예상치 못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연극 <스타크로스드> 공연사진
연극 <스타크로스드> 공연사진(주)엠피앤컴퍼니

사랑의 시작

티볼트는 캐퓰렛 가문의 무도회장에 들어온 몬테큐 가문의 로미오를 발견하고, 그를 뒤쫓는다. 이를 본 머큐쇼는 친구 로미오를 위해 티볼트를 따돌리고, 로미오가 발각될 것 같은 위기의 순간에 티볼트에게 입을 맞춘다. 이때 객석 곳곳에선 예상치 못한 키스에 "헉"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티볼트는 머큐쇼의 키스를 대수롭게 넘기려 했으나, 마음은 뒤숭숭하다. 머큐쇼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둘은 조심스레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때부터 연극 <스타크로스드>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랑엔 두려움이 뒤따른다. 티볼트는 가문 내에서 애매한 지위 탓에 늘 내일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문에서 인정받기 위해 언제나 충성을 다하고, 다른 집단에 적대적이다. 항상 내일을 이야기하는 티볼트는 사랑이 자신의 내일에 불확실성을 드리울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그래서 두려워한다.

티볼트와 달리 머큐쇼는 오늘을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이는 머큐쇼가 티볼트에 비해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머큐쇼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베로나 공국 군주의 친척으로, 도시 내에서도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머큐쇼는 두려워하는 티볼트에게 오늘의 사랑에 충실해도 된다고 설득한다.

이런 두 사람에게도 변화의 순간이 찾아온다. 자신이 처한 가문 내에서의 상황 탓에 사랑을 두려워했던 티볼트는 가문의 후계자로 인정받자 사랑을 다시 꿈꾼다. 내일만을 이야기했던 티볼트가 오늘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의 행복을 좇았던 머큐쇼가 내일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희망적인 사랑을 꿈꿨지만 둘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극에서 "놀이의 규칙", "우리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무대" 등의 대사로 현실의 벽이 거론된다. 이렇게 사랑을 두고 시시각각 교차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상징적이다.

 연극 <스타크로스드> 공연사진
연극 <스타크로스드> 공연사진(주)엠피앤컴퍼니

되살아나는 셰익스피어의 문제 의식

세상이라는 무대에서는 상황에 맞게 요구되는 대본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이 대본은 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처럼 티볼트와 머큐쇼도 가문과 얽혀있다. 또 티볼트와 머큐쇼는 동성애라는, 당대 사회에선 지금보다 더 강하게 배척되던 사랑을 나눴다.

세상에 가로막힌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연극 <스타크로스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 의식을 성실하게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스타크로스드>는 티볼트와 머큐쇼가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역설적 방법을 그려낸다.

바로 사랑을 숨기고 각자에게 요구되는 연기를 수행함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두 인물은 광장에서 검투를 벌이기로 한다. 이후 이런저런 사건을 거쳐 둘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처럼 비극으로 귀결되는데, 이는 세상의 규칙이 얼마나 강고한지 보여준다.

동시에 세상의 규칙이라는 게 때로 터무니없는 것일 수 있다는 점 또한 보여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처럼 티볼트와 머큐쇼의 사랑도 가문에 가로막혔고, 또 동성애라는 이유로 사랑을 숨겨야만 했다.

한편 사랑의 비극을 직접 이야기하는 티볼트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도 신의 축복을 빌어준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들"은 세상의 규칙을 만든 사람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혹은 규칙을 직접 만들진 않았더라도 이 규칙을 착실히 따름으로써 규칙을 공고화하는 사람들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티볼트와 머큐쇼의 비극적 사랑에는 분명 우리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6세기로부터 500년이나 지났음에도 차별과 혐오, 배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형태만 조금씩 달라지거나, 아니면 형태조차 달라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동성애는 여전히 사회에서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 가문은 오늘날 국적이나 인종의 문제와 연결해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가문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시하던 그때와 국적, 인종이 다르다고 적대시하는 오늘이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극중 티볼트의 기도가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500년 후에 태어날 아이들은 우리가 느끼는 공포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하게 걸어 다니기를 기도한다."

 연극 <스타크로스드> 공연사진
연극 <스타크로스드> 공연사진(주)엠피앤컴퍼니

한편 연극 <스타크로스드>는 3월 2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 티볼트 역에 정동화·박정복·양지원, 머큐쇼 역에 김경수·김찬호·신주협, 다양한 배역을 연기하는 플레이어 역에 정상윤·조성윤이 출연한다.
공연 연극 스타크로스드 예스24스테이지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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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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