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주)마인드마크

태어났고 숨이 붙어 있으니 어떻게든 살고 있지만, 괜찮은 사람으로, 무탈하게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이성적인 사고로 옳은 판단과 가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그러나 최근 12.3 내란 사태와 덧붙여 내전 중인 타국을 생각하면 뚜렷한 차이점을 찾아내기 어렵다.

단순히 '나라면 어땠을까'란 상상이 아니다. 불이 켜지고 비로소 극장 문을 나서며 안도하는 '허구'라는 단순 명료한 안도감이 찾아오지 않는 영화다. 경고와 각성의 메시지는 절묘하게 현 상황과 맞아떨어져 이질감 없이 느껴진다.

미국이 둘로 쪼개진 근 미래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주)마인드마크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미국 내전을 소재로 혐오와 차별의 시대에 일어날지 모를 디스토피아 근미래를 다룬다. 시빌 워(Civil War)란 내전을 뜻하며 미국 남북 전쟁(1861~1865년)에서 따왔다. 내전의 발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 불친절하고 건조하다. 정황상 화폐가치가 폭락한 지 오래이며, 두려움에 떤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숨어 들어갔다는 것 정도다.

초반부터 영화의 톤 앤드 매너를 알려준다. 독재로 쌓아온 3번의 임기를 지날 때까지 이어온 저항의 목소리가 터졌다.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를 주축으로 한 서부군(Western Forces, WF)과 나머지 19개 주의 연합 플로리다 동맹(Florida Alliance, FA)의 분리독립 갈등은 현실이 되었다. 대통령은 "승전이 코앞이다"라는 TV 성명문 발표에만 몰두하나, 패배를 직감한 마지막 발언이다.

내전을 일으키고도 14개월 동안 침묵한 대통령(닉 오퍼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베테랑 사진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와 취재 기자 조엘(와그너 모라), 신입 기자 지망생 제시(케일리 스패니), 선임 기자 새미 (스티븐 헨더슨)는 위험을 무릅쓰고 워싱턴 D.C로 진격한다.

그 과정에서 전쟁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폭격에 집을 잃고 길거리에 즐비한 텐트, 아군과 적군을 잊고 서로 죽이려고 안달이 난 청년들, 폭군 행세를 하며 전쟁광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절박함을 만난다.

기록하는 자, 카파이즘 정신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주)마인드마크

영화는 각기 다른 포지션의 기자를 내세워 분열의 시대를 마주한 관찰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워싱턴으로 향하는 도중 전쟁을 애써 무시하는 평온한 마을을 마주하고 '리'와 '새미'는 의견이 엇갈린다. 리는 '잃어버린 세계'라고 표현하고 새미는 '내가 기억하는 세계'라고 답한다.

또한 '리'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사진이 일종의 경고장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진실을 외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자 포기하고 직업적 본능에만 몰두한다.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신입 기자 '제시'는 죽음 앞에 얼어버려 사진을 찍지 못하는 순간을 맞을까 전전긍긍한다. 이번은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다음번에도 생존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일까. '로버트 카파'가 생각났다. 로버트 카파는 종군 기자이자 매그넘 포토스의 설립자 겸 사진 저널리즘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20세기 가장 치열했던 전쟁 속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스페인 내전을 찍은 '어느 병사의 죽음', '노르망디 상륙 작전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사진들은 흐릿하게 찍혀 기록하는 기자의 태도와 요동치는 마음이 떨리는 손으로 표현된 카피로 유명하다.

수많은 전쟁을 거쳐 온 '리'와 이제 막 종군기자로 첫발을 내딛는 '제시'를 통해 '카파이즘'의 여러 버전을 논한다. 둘은 전쟁의 진실을 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어느 쪽에도 개입하지 않는 거리 두기다. 중립적인 태도로 기록하는 사람의 직업정신을 지키려고 한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대상화한다. 이와 같은 기자 정신은 마지막 백악관 포위 작전 후 대통령의 인터뷰까지도 지속된다.

믿고 보는 A24, 최고 제작비 영화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스틸컷(주)마인드마크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철저히 관객을 전쟁 속으로 내몰고야 만다. 빗발치는 총성과 폭탄 터지는 소리는 스크린을 뚫고 전해진다. 기자의 눈으로 보는 로드무비이자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향한 차별과 혐오의 묵시록이다.

가상의 미국이 배경이지만 둘로 나뉘어 분열된 모습은 현실을 뚫고 나와 생생함을 전한다. 전쟁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기록하려 발버둥 치는 종군기자와 한 몸이 되어 누비는 현장감이 크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우리도 미국인이다'라는 말에 '어느 쪽 미국인이냐'를 묻는 대목이다. 출신을 묻는자(제시 플레멘스)도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무지와 무관심은 인간을 지옥도 한복판으로 안내한다. 이미 수많은 시체가 담긴 트럭과 구덩이에 쌓인 시체가 증명한다.

영화는 대형 스크린과 사운드가 좋은 포맷으로 봐야 전달하려는 의도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다. 미국의 독립영화 제작사 중 가장 영향력 있는 A24가 최대 제작비를 투입해 제작했다. < 28일 후 > 각본가 출신인 알렉스 가랜드 감독 작품이다.

덧붙여 감독의 작품을 꾸준히 봐왔다면 전작들을 함께 한 배우를 찾는 재미도 빠질 수 없겠다. <파친코>로 얼굴을 알린 진 하, <엑스 마키나>의 소노야 미즈노, 드라마 <데브스>의 닉 오퍼먼, 스티븐 헨더슨, 칼 글루스먼 등이 주인공이다.

2024년 마지막 날 개봉한다.

시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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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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