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가족계획> 자료사진쿠팡플레이
이렇게 가깝지만 까다로운 가족을 새롭게 해석하는 드라마 콘텐츠가 최근 나왔다. 쿠팡플레이에서 <가족계획>이라는 참신한 이야기의 드라마를 선보였다. <소년시대>의 빅히트 이후 OTT 시장에서 한발 물러선 듯 보였던 쿠팡플레이의 연말 선물 같은 수작이다. 다소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연출에 두 눈 가늘게 뜨게 되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지만, 독립영화계에서 기초를 단단히 다진 쌍둥이 감독 김곡·김선의 연출과 <허쉬>, <슈츠>등 여러 작품활동으로 이야기를 잘 뽑아낸 김정민 작가 각본의 힘은 주목할 만하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 부부 철희(류승범)-영수(배두나)와 특이함을 넘어 사이코패스 같은 쌍둥이 아들 지훈(로몬)과 딸 지우(이수현), 그리고 까칠함 속에 다정함을 숨긴 할아버지 강성(백윤식)은 묘한 가족이다. 어느 날 이 가족들이 야반도주하듯 경기 금수에 이사 오면서 예기치 못한 기묘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사춘기 반항을 넘어선 지우의 엄마에 대한 반감과 고3 부모라기엔 젊다 못해 어려 보이는 가족 관계에 주변에서 의문을 갖는다. 이런 의심의 날들 중 쌍둥이들은 학교 내의 폭력 생태계의 표적이 되고, 난감한 일들이 벌어지자 결국 엄마 영수가 나타나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소동이 일어난다.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드물지 않아 보이는 이 가족에겐 나름의 비밀이 있다. 가족의 속 사연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가족이라는 관계를 다시 생각할 물음표를 던져준다. 그들의 신묘한 재주와 능력의 현실성을 따져보기도 전에 가족이라는 관계의 정의를 다시 떠올리게 해 준다.
요즘 세상에서 혈연이 아니더라도 가족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흔하다. 결혼 관계가 재정립되고 입양이나 입적 등이 양성화됐으며, 친인척 관계가 아니더라도 준거의 이유로 가족이라 부른다. 그런 확장성이 스며든 인식에도 영수와 철희의 가족구성은 특별하다.
당연하게 관계를 짓고 유지해야 하는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가족은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다.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조립식 가족>의 면면을 보더라도 확연히 설명된다. 서로 책임과 온정으로 강하게 연대하는 궁극적 울타리가 가족이라는 새로운 정의는 생소한 신개념이 아니다.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가족의 정의는 물론 그 구성과 역할도 포스트모더닉하게 해체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개념의 연장에서 <가족계획>의 가족 구성은 낯설지만 거북하진 않게 다가온다.
가족계획이라는 중의적 의미
드라마 제목 <가족계획>에 대한 설명은 일차적으로 극 중 대화로 표현된다. 특교대장이 이들을 탈출하게 둬 가족이라는 단위로 침투시켰다는 계획설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할아버지 강성이 바라고 희망하는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자리 잡기 위한 노력과 계획을 말한다.
'가족계획'이라는 말은 중년 이상 세대에게 낯선 말이 아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로 대변되는 '산아제한 정책'의 다른 말이 바로 가족계획이었다. 지금 가장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생과 정반대의 문제를 품은 시절이었다. 이렇듯 시간이 흘러 가족계획이라는 말도 가족의 개념 변천과 함께 변용돼 다가왔다. 가족의 해체 이후 재구성하는 일. 이를 도모하기 위한 연대와 유대의 노력이 가족계획이 아닐까 싶다.
정신건강 상담자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방 이유가 가족에 있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그런 뉴스 끝에 공감되는 수긍도 있고, 남들의 이야기처럼 외면하는 부정도 있기 마련이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어려운 것은 그 관계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운 데 있다.
전통적인 가족형태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죽을 때까지 관계 유지하는 존재다. 혈연 가족은 나와 가장 닮은 존재들이고 그 닮음은 외모뿐 아니라 목소리 몸짓에 버릇, 유전자의 염기서열까지 유사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존재로 서로 도움 되고 아끼고 살펴줘야 하는 의무의 존재들이 된다. 이 관계의 절대적 당위설정이 사달이 나곤 한다.
가족신화에서 우화적 교훈으로 재정의
▲드라마 <가족계획> 자료사진쿠팡플레이
가족이라는 관계의 절대 당연화하는 것을 가족신화(Family Mith)라고 한다. 가족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허구의 믿음을 이야기한다. 어려서부터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 얼마만큼 많이 희생했는지, 형제들이 우애를 다지며 지내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세뇌에 가깝게 배우며 산다. 그래서 자녀는 어떠해야 하고 부모란 이러해야 하며 형제들은 자못 이런 관계여야 한다는 허구의 이상향이 형성된다.
사실 이것은 허상이다.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상황이 고려되지 않는 역기능적 가족이 늘어 나는 근본 이유가 된다. 그 근원적 원인은 관계의 설정 기본값이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가장 가깝기 때문'이라는 말은 다시 해서 '거기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AI가 널리 퍼져 모든 것을 바꾸는 날이 온다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우리는 모두 죽게 돼 있다는 것. 그리고 좋든 싫든 누구나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 등의 소재로 '가족'은 끊임없이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문학과 드라마는 인간의 삶과 일상에서 본질이 무엇인지, 불변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라는 종(種)의 근원적 조건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희극에 관심을 두기 마련이다. 일종의 운명을 다시 작화하는 것이 문학이고 드라마가 된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가족이 운명과도 같다면 그것은 안식처일까 수렁일까. 지금 나의 가족이라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가족계획>을 가족 시청으로 추천한다. 단 성인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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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T컴퍼니(IBM, NTT)에서 비즈니스 디벨로퍼로 퇴직 ; 바람들어 사랑하는 아내 여니와 잘 늙어 가는 백수를 꿈꾸는 영화와 야구 좋아라하는 아저씨의 끄적임. 정치.경제.사회 그리고 일상에 대한 글을 나눕니다. <원순씨를 부탁해>의 저자. 다수의 독립잡지에 영화, 드라마 리뷰, 비평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