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단편선
음악가 단편선단편선

"개인적으로 음악은 시각과 청각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아티스트 각자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감동도 주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이고요. 그런데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이 모든 걸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발표였어죠. 시민으로서, 음악가로서 누려야 하는 모든 자유를 한 번에 앗아갈 수 있다고 협박한 거니까요."

음악가이자 기획가 단편선은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처음 듣고 '비현실'을 떠올렸다고 했다. 30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지탱해 온 최소한의 세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도 했다.

단편선은 2012년 첫 앨범 <백년>을 발표한 이후 그간 한국 대중음악 생태계에서 인디 신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다. 현실과 음악가의 접점을 마련하며 고민해 오던 그에게 비상계엄은 상상하지 못한 폭력이었다.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그 사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가 무산됐다.

그러자 지난 9일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보자고 의견을 던졌고, 그 날 밤 단편선을 비롯해 몇몇 지인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가수, 연주자, 프로듀서, 전공자, 평론가 등 음악인 2645명의 시국선언을 처음 준비한 날이었다.

일주일 만에 모인 2645명

 지난 18일 '2024 음악인 선언'을 발표한 음악인 선언준비모임. 여기에는 가수, 연주자, 프로듀서, 전공자, 평론가 등 음악인 2645명이 참여했다.
지난 18일 '2024 음악인 선언'을 발표한 음악인 선언준비모임. 여기에는 가수, 연주자, 프로듀서, 전공자, 평론가 등 음악인 2645명이 참여했다.음악인 선언준비모임

단편선은 "사실 음악가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자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생각이나 의견이 일치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런데 윤석열 탄핵·파면 그리고 국민의힘 파산에는 모두 동의한 것"이라고 '음악인 선언준비모임'의 시국선언 의의를 설명했다.

록, 힙합, 펑크, 재즈, 포크, 헤비메탈, 인디, 민중음악을 비롯한 전 장르의 음악인들을 비롯해 연주자, 기획자, 비평가, 레이블 대표들은 그렇게 선언에 참여했다. 역대 유례없는 규모의 참여였다.

2600여 명의 인원이 모였지만, 선언문 작성과 공유, 연명을 받는 건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처음 모여 논의한 12명이 선언문 작성·디자인·보도자료 작성·데이터베이스 관리·연명 준비 등을 나눠서 했다. 하루 만에 대부분의 역할이 정리돼 선언문이 완성됐고 이를 기반으로 일주일 동안 음악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공유해 연명을 받았다.

"개인 카톡방, 그룹 채팅방, 개인 SNS 등에 공유하며 우리의 선언문을 빠르게 확산하려고 했어요. 물론 저를 포함해 여러 음악인이 개인적으로 집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또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냈을 거예요. 동시에 온라인에서는 업계 종사자들에게 우리가 작성한 선언문을 빠르게 많이 알리고 동의를 받으려고 했죠."

그렇게 18일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해야 할 대통령이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즉시 구속 수감돼야 할 범죄자가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음악인 선언준비모임의 시국선언이 발표됐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엄호하는 국민의힘에 파산을 선언한다"며 여당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은 내란 동조 세력이죠. 탄핵 투표 자체에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국민의힘은 더 이상 국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정치 주체로서 시민들의 파트너로 완전히 실격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는 역할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국민의힘 파산도 시국선언에 포함했습니다."

음악가의 역할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퇴진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퇴진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남소연

집회는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광화문 그리고 헌법재판소 앞 등에서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음악인·영화인을 비롯해 예술가들이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집회에 동참하거나 탄핵을 찬성하는 등 일부 목소리를 낸 가수를 향한 역풍도 불었다.

가수 이승환의 경북 구미시 공연 취소가 대표적이다. 이승환의 구미 공연이 취소되자 음악인연대준비모임도 이를 비판하며 지난 24일 긴급 성명을 냈다. 이들은 "예술가의 정치적 견해와 무관하게 예술 행위 자체는 보호받아야 할 기본권"이라며 "구미시의 이번 결정은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 두고 단편선은 "비상계엄 선포가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앗아가겠다고 발표한 건데, 구미시의 공연 취소도 같은 맥락이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이승환은 김장호 구미시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데 이어 지난 29일 '서약서' 강요가 위헌임을 확인하기 위한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

단편선은 "케이팝이 등장하고 응원봉을 든 사람들이 많아지는 등 집회의 모습은 바뀌고 있는데 정치인들만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후퇴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세대별로 문화적 차이도 있고, 이 점이 시대에 따라 열리는 집회에도 반영되잖아요. 지금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등장한 건 그만큼 다양한 세대, 다양한 문화적 기반이 모이는 거로 생각해요. 여기에는 서로가 서로를 향한 '관용'의 태도가 있는 거고요.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런 신뢰가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자유, 정의, 평등 등 보편적 가치를 함께 일궜고 이를 지켜가고 있었는데, 이것이 한 번에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거잖아요. 시민들은 또 이렇게 각성하고 행동하는데, 국회는 어떤가요. 정치인들은 어떤가요."

음악인 선언준비모임이 또 다른 시국선언 혹은 긴급 성명을 낼지는 미지수다. 단편선은 "일단 이 시국에 빠르게 음악가들의 목소리를 내자는 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600여 명의 사람들이 한 조직에 모인 게 아니라 개인의 이름으로 이 시국에 목소리를 내는 데 동의한 것이기에 이후 활동과 관련해서는 정해진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모국어로 노래하고 자신의 창작세계를 지켜나가며 음악 혹은 음악과 관련된 일을 계속하려는 사람들"이라면서 "앞으로 좋든 싫든 이른바 '정치의 시간'이 계속될 텐데, 음악인들 역시 이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음악인선언 음악인선언준비모임 단편선 윤석열 국민의힘
댓글1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