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영화는 윤제균 감독의 <영웅>(2022)과 비교된다. 같은 시대와 인물을 다루지만 톤과 장르가 확연히 다르며 애국심 고취는 없다. 외모뿐만 아니라 캐릭터 묘사도 우리가 아는 안중근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실패를 거듭하고, 자책하고, 눈물을 보이며 흔들리는 모습이 거듭된다.
<하얼빈>은 스펙터클한 액션과 선악이 강렬한 스토리 전개는 거두고 심리 드라마의 강점을 살렸다. 위대한 영웅의 카리스마나 거사 이후 재판받는 올곧은 안중근은 없다. 거사를 치르기 전 먼저 간 동지들의 목숨 빚 때문에 슬픔과 부채감에 시달리는 군인, 불안하고 피폐한 마음에 갇힌나약한 인간이다.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살아가는 불운한 상황이 더해져 그의 막연한 소망이 더욱 쓰라리고 간절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문법을 택한 <하얼빈>의 전체적인 틀은 심리 스릴러지만 비장함을 품은 로드 무비, 누아르, 첩보, 추리물의 성격을 조금씩 넣어 장르성을 더했다. 거액의 제작비가 든 상업영화인데도 예술영화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유다.
우민호 감독이 <내부자들>(2015), <마약왕>(2018),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 범죄자의 욕망을 다룰 때 보여준 피카레스크 연출과도 다르다. 처음으로 선인을 담은 영화답게 자극적인 연출을 거두고 마치 한 편의 명화를 감상하듯 정적이고 시적인 결로 승부한다. 그의 전작 스타일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부분이 많겠다.
그래서일까. 회화적인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준다. 인물화와 풍경화가 거듭 교차된다. 독립군이 볕 한 줌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거사를 논하는 장면, 하얀 눈 덮인 신아산의 치열한 전투와 이전투구의 진흙밭, 말을 타고 폭약을 구하러 가는 먼 여정, 칼바람이 느껴지는 얼음강 위를 걷는 더딘 발걸음 등. 조명을 최소한으로 한, 빛과 어둠의 대비는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서른한 살 청년을 움직인 동력